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홀. 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박혜상(36)이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에 아베마리아 가사를 붙인 노래와 우효원 작곡 ‘가시리’를 불렀다. 두 번째 정규 앨범 발매 기념 간담회였다. 2020년 데뷔 앨범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음반엔 ‘숨’(Breathe)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그에겐 ‘월클’(월드 클래스)이란 수식이 붙는데, 이력을 보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도이체그라모폰(DG)에 소속된 최초의 한국인 성악가가 그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맺은 성악가는 아시아권에서도 그가 유일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에서도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도이체 그라모폰 소속이란 데 대해 은근한 자부심이 있다”면서도 “그런 것들에 감정을 담다 보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 자꾸 선을 긋게 된다”고 했다.
앨범 제목 ‘숨’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숨’이다. “2021년 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순간에 잃는다는 무력감, 죽음에 대한 고통이 짓눌렀어요. 외로움과 불확실성, 의심과 분노 등 무수한 감정들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는 “팬데믹 기간에 느꼈던 극심한 두려움으로부터 비롯한 음반”이라며 “개인적으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었다”고 했다. 2022년엔 배낭 하나 둘러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 25일 동안 날마다 20~30㎞씩 걷고 또 걸었다.

앨범을 준비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인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접하게 됐다. 아내의 죽음을 기리는 내용의 비문에서 “살아 있는 동안은 빛나라/ 결코 슬퍼하지 말라”는 구절이 그의 가슴에 화살처럼 꽂혔다. 그는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가 이 문구”라고 말했다.
‘노마드’(유목민)를 자처하며 일정한 거처 없이 자유롭게 떠돌던 그가 얼마 전에 정착민으로 돌아섰다. 뉴욕과 베를린의 창고에 짐을 보관해 두고 가방 2개 싸 들고 영국과 독일, 미국과 한국을 오가던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에 살 곳을 마련한 것. “7년 동안의 노마드 생활을 끝냈어요. 집은 마음속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들였지요.” 그는 “비록 집에 머무는 기간이 1년에 3개월 정도에 불과하지만, 막상 집과 내 침대가 생기니 이렇게 편할 줄 몰랐다”며 웃었다.
앨범 수록곡들은 흔히 접하기 어려운 노래들이다. 그가 현대음악 작곡가 루크 하워드에게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넣어 의뢰한 편곡 작품이 첫 곡이다. 한국 작곡가 우효원의 아쟁 연주에 목소리를 얹은 레퀴엠(진혼곡) 형식의 한국 가곡 ‘어이 가리’도 실었다. 박혜상은 “한국 노래를 부르거나 한복을 입을 때 자연스러운 힘이 생기는 경험을 하곤 한다”며 “중구난방처럼 보일지 몰라도 세이킬로스의 비문에 담긴 메시지가 일관되게 흐르도록 앨범을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앨범 재킷은 그가 물 속에서 기도하듯 명상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 촬영을 위해 타이에서 프리다이빙까지 배웠다. 오는 13일엔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도 연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