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혹은 장난꾸러기!
대다수 한국인은 이 예술 거장을 그렇게 기억한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화면에 희한한 이미지들을 띄워놓아서 유명해진 작가로 떠올리기 일쑤다. 비디오 거장이란 헌사가 흔히 붙는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그의 역사적 진면목은 아직 국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세기 초 세계 현대미술사에 ‘내가 보는 것이 곧 예술이다’라며 미술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마르셀 뒤샹의 개념적 계승자를 자부했던 이가 그다. 그는 1960년대 티브이 아트를 선구적으로 내놓으면서 기술이 결합된 영상 미디어의 광활한 영역을 개척해 미술의 권능을 확장시켰다. 고국인 한국에서는 90년대 다문화예술을 처음 소개한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시회 개최, 한국 미술의 세계화 창구가 된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설 등을 주도하면서 서구 미술의 흐름과 직결되는 혈을 뚫어준 기획자이자 ‘전위적’ 행정가로도 활약했다.
지난해 11월 초 개막해 이제 후반부에 접어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기획전 ‘백남준 효과’는 그가 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인지를 인상적인 작품들로 이야기한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였던 90년대 그가 남긴 기념비적인 영상 설치작업들과 그가 한국 미술판에 펼친 기획에 동참하거나 그 시대를 공유하며 활동했던 여러 작가들의 평면 입체 작품 100여점이 거대한 1층 1·2 기획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전시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적 소재와 역사 위인들을 형상화한 백남준의 영상 조형물들이다. 파천황적인 상상력 못지않게 현실 감각도 명민했던 그는 1984년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세계에 펼친 것을 계기로 국내에 귀환하고, 그 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적인 조형물들을 내놓으며 한국 현대미술판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전시장 들머리에는 강렬한 네온 이미지 선들을 넣은 모니터들의 집적물로 칭기즈 칸 대왕의 자전거 탄 모습을 형상화한 1993년 작 <칭기즈 칸의 복권>이 디지털 인터넷 시대를 예고하는 상징물로 등장한다. 첨단 과학 문명과 15세기 과학기술자 장영실의 만남을 형상화한 1990년 작 영상 로봇 <장영실>도 나타난다. 좀 더 들어가면 신라 장군 김유신을 형상화한 1992년 작 <김유신>이 있고 안쪽으로 윤동천 작가가 태극기 색깔을 티셔츠 11장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고 스테인리스 봉에 내걸어 강퍅한 민족주의의 현실을 풍자한 작품 <펄럭>(1995)도 보인다.
직선 동선만 거의 200m에 달하는 큰 전시장. 이곳에서는 <파우스트> 연작, <운송교통> 조형물 등 산업화 정보화 시대의 산물들을 형상화한 그의 조형물들이 테크놀로지 미학과 세계화의 조류에 휩쓸리기 시작했던 당대 소장 작가들의 작품들과 뒤섞인 얼개로 펼쳐진다. 자가용 차 부품들이 차체 주위를 난무하는 구도로 만든 홍성도 작가의 1995년 작 <시간 여행―굿바이 소나타>는 포스트모던한 시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작이다. 1990년대 한국 미술판에 냉소적 개념미술 열풍을 일으켰던 박이소 작가의 1993년 작 <프라이드 시리즈>도 전시장 한쪽을 차지한다. 이 밖에도 이수경 작가의 자화상 시리즈, 고낙범 작가의 색채 인물 연작, 홍승혜 작가가 금형 틀로 작업한 초창기 도형 작업, 유리알에 비친 문주 작가의 아날로그적 영상 작업 등이 당대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실감 나게 전한다. 백남준이 휘트니 비엔날레 한국전 전시 유치를 막후에서 주도하면서 서구 미술 현장의 다채로운 트렌드와 파격적인 작업들을 소개해 200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기획자는 90년대 백남준의 영향으로 형성된 한국 미술계의 포스트모던 흐름을 담은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망라했는데, 백남준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판과 작가들에 대한 일종의 집단 회고전을 펼친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를 형성한 가까운 과거이자 2000년대 미술 성장세에 묻혀 기억이 희미해진 당대 중요 작업들을 엿볼 수 있는 자리지만, 전시 자체가 정교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출품된 90년대 작가들을 뭉뚱그려 ‘백남준 효과’라는 틀 속에 분류하듯 배치함으로써 당대 작가들의 다기한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묻어버리는 맹점도 드러낸 까닭이다. 26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