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포스터. 예술의전당 제공
‘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포스터. 예술의전당 제공

우리말로 부르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공연된다. 국내 최초다. 오는 5월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구자범이 지휘하는 ‘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이 곡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1824년 5월7일에 맞춰 공연 날짜를 정했다. 목소리가 들어간 최초의 교향곡인 이 곡은 내년이면 초연 200돌을 맞는다.

이 교향곡의 4악장에 삽입된 성악곡들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베토벤이 축약하고 각색해 재구성했다. 이번 공연에선 지휘자 구자범이 쉬운 우리 입말로 직접 번역했다. 구자범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한 특이한 이력의 지휘자다. 다름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상임지휘자로 활동했고, 국내에서 경기필과 광주시향 상임지휘자를 거쳤다. 그는 “단순히 시를 번역하는 수준이 아니라 음률에 맞게 다듬어야 했다”며 “‘환희의 송가’ 부분은 멜로디가 복잡하지 않아 우리말을 곡에 입히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곡엔 베토벤의 숭고한 정신이 녹아들어 있는데, 관객들이 그 맥락과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려면 우리말로 공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은 두꺼운 소책자 분량의 해설서를 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자범은 이 곡과 관련한 책도 집필 중이다.

지휘자 구자범. <한겨레> 자료사진
지휘자 구자범. <한겨레> 자료사진

이번 우리말 공연은 2020년 8월, 클래식 프로그램 <안디 무지크>(KBS)에서 했던 구자범의 강연이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고 싶어서 지휘자가 되었는데, 이 곡에 대한 경외심으로 아직까지 단 한번도 이 곡을 지휘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 교향곡에 깃든 정신과 의미를 제대로 풀어내려면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해 공연하는 게 필수”라고 했다. 현재 통용되는 번역이나 자막은 이 곡에 담긴 베토벤의 의도와 정신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구자범의 판단이다. 독일어가 아닌 ‘합창’ 교향곡 연주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명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1930년대에 영어로 번역해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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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향곡의 ‘우리말 가사’를 완성하는 게 끝이 아니었다. 2800마디가 넘는 이 곡에 쓰인 모든 악기의 악보를 일일이 다시 그려 한글 가사를 표기하는 등 연주자들이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이 교향곡 초연 200년이 되는 내년엔 국내 다른 오케스트라들도 우리말로 공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1년 앞서 공연을 준비한 것도 이런 취지에서라고 한다.

이번 공연을 맡은 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엔 국내 유수의 관현악단 수석 주자들이 연합해 구성한 90여명이 참여한다. 유럽의 바이로이트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본떴다. 국립합창단과 서울시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참콰이어가 함께한다. 독창자로는 소프라노 오미선,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김석철, 바리톤 공병우 등이 나선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