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원 피학살자 163명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태풍 루사가 지나간 자리에 느닷없이 드러난 유해들은 묻어두었던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민중의 소리> 지역 기자였던 구자환 감독은 현장을 취재하러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좌익활동 전력이 있는 사람을 전향시킨다며 국민보도연맹을 만들고 많은 민간인들도 억지로 가입시켰는데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6월 말부터 9월까지 수만 명 이상의 국민보도연맹원이 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감독은 보도연맹 학살사건 피해유족들을 찾아나섰는데 일이 커져버렸다고 합니다. 경남 산청, 함양, 진주, 하동, 의령, 거제, 통영, 창녕, 밀양, 창원…. 감독이 사는 경남에서만도 피해지역이 고구마 넝쿨처럼 얽혀 나오는 바람에 취재는 길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침내 2013년 빨갱이 무덤이라는 뜻의 <레드 툼>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완성됐습니다. 감독 나이 36살에 시작해 46살에 영화가 만들어졌고, 48살인 지난 9일부터 극장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10년 넘게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송환>은 김동원 감독이 비전향장기수와 처음 만난 날부터 찍기 시작해 그들이 북으로 송환될 때까지를 담았습니다. 12년의 제작 기간, 500개의 테이프, 800시간의 촬영분량은 다큐멘터리가 멈춰버린 역사를 대신할 때의 상징처럼 이야기되곤 합니다. 이쯤되면 감독들은 자신을 영화감독이 아니라 무한한 인내를 가진 사관이나, 역사 기록자 정도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야 완성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시간과의 싸움이고 공력의 예술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2011)도 기획 단계에서 편집기간까지 12년이 걸려 만들어졌습니다. 한국과 인도를 오간 세월도 그만큼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는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됐을까요? <송환>은 극장에서 6주동안 상영됐습니다. <레드 툼>은 전국 16개관으로 시작해서 개봉 3주차인 지금 6개관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서울 인디스페이스, 인디플러스, 아리랑시네센터, 부산영화의전당 등 독립영화전용관이 대부분입니다. 감독은 경남에서 일어난 이 비극을 경남지역에서 상영하기를 바랬지만 경남엔 독립영화 전용관이 없습니다. 다큐멘터리가 기록자 노릇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관객과 사회의 몫입니다.
남은주 기자
잊혀질 기회조차 얻지 못한 ‘10년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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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2015-07-28 19:04
- 등록 2015-07-28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