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 제이케이필름 제공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 제이케이필름 제공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인가, “정치적 맥락을 삭제하고 오직 산업화 시대를 미화하는 데 골몰한 영화”인가. <국제시장>이 연일 뜨겁다. 개봉 초기 이례적일 정도로 보수언론 중심으로 앞다퉈 영화를 주목한 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을 역설하며 애국심을 강조하고, 앞다퉈 관람을 마친 정치인들도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흥행 돌풍 만큼이나 극장 밖 논란이 거세다. 영화는 개봉 21일 만에 8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1000만 클럽’ 가입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국제시장>을 만든 윤제균 감독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논란이 시작된 뒤 정식 인터뷰를 고사해온 윤 감독이 <한겨레>와 마주 앉았다. 지난 5일 강남 논현동 제이케이필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정말 ‘톡까놓고 다’ 물어봤다.

소통·화합 말하려 했는데 ‘분란’당황스러움 앞서 인터뷰 피했죠나는 일개 상업영화 감독일뿐정치인도 아니고 정치색도 없어변명이 아니고 부탁입니다가족영화로만 즐겨주세요논란 덕 흥행…지금은 감사하죠다음엔 덕수가족의 80~90년대민주화 시대 부자갈등이 되겠죠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 <국제시장>을 두고 대한민국 논객이라면 다 한마디씩 하는 듯하다. 다양한 논란을 지켜보니 어떤 기분이 들었나?

“세대간·지역간 소통과 화합을 이야기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되레 분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시작된 뒤 인터뷰를 거절해왔던 건 그런 당황스러움 때문이었다. 논란을 지켜보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사회의 이념적·정치적 갈등이 크구나, 이런 쟁점에 예민하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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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도 덕수와 영자가 부부싸움을 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영화 장면을 언급하며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한 편에서는 이 장면을 당시 시대상을 꼬집는 블랙코미디라고 정 반대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같은 장면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건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일이다. 감독으로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그 시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애국이 당연한 도리였던 시절이다. 축구하다가 애국가 나올 때 골 넣으면 인정을 안 하던 시대다. 하하하. 요새 말로 표현하자면 ‘웃픈 느낌’(웃긴데 슬픈 느낌)이랄까? 그 시대 자체가 그런 (느낌을 주는) 시대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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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정권들이었다면 좀 반응이 다를 수도 있었을까. 지금이 박근혜 정부이기 때문에 논란이 더 거센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정권에 잘 보이려고 만든 영화라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코드 맞추기 아니다. 시나리오가 나온 것이 2012년 가을이다. 대선 전이다.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박빙이었던 시점이라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몰랐다. 나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개인사라는 미시적 시각에서 시작한 영화를 거시적 시각에서 바라보니 그런 오해가 생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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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급사가 씨제이인 점도 논란거리다. 이재현 회장이 재판 중인 상황을 고려해 개봉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 영화 대사 중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개봉 시점은 이미 2014년 초에 결정됐다. <명량>으로 여름을 공략하고 <국제시장>으로 겨울을 공략하자는 것이 씨제이의 전략이었다. 전혀 무관한 일들이 겹치자 억측이 많은 듯하다.”

- <국제시장>에 장년층이 많이 든다지만 20대 관객이 50대 이상 관객보다 많다. 젊은 관객들이 정치적 맥락을 모두 뺀채 취사선택된 영화 속 내용을 역사, 그 자체로 여길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우다. 우리 세대도 70~80년대에 아무리 위에서 가르친다고 그걸 다 진실이라 믿지 않았다. 하물며 똑똑한 요즘 젊은 이들이 그럴 리가 없다. <변호인>을 보고 시대의 불합리에 분노를 했다면 <국제시장>을 보고 열심히 살아온 세대에 대한 감사를 느끼면서 균형감을 갖출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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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은 우파’, ‘윤제균이 만드는 영화는 꼴보수 영화’라는 일부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은가?

“나는 그저 일개 상업영화 감독일 뿐,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색도 없다. 변명 아닌 부탁을 하고 싶다.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 그저 열심히 힘들게 살아오신 아버지를 위한 영화일 뿐이다. 가족영화로 즐겨주시길 바란다.”

- 어쨌든 이런 논란이 영화의 흥행에는 긍정적 영향을 준 것 아닌가?

“맞다. 100% 인정한다. 첫날 스코어를 보고 난 1000만은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포기하고 겸허히 결과를 받아들이려 했는데, 논란이 되면서 관객 수가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논란조차 감사하다.”

-1000만 고지가 바로 눈앞이다. 이 정도 흥행을 예상했나?

“총제작비가 180억이다. 손익분기점이 600만으로 결코 작지 않은 숫자인데 이를 넘겨 다행스럽다. 사실 ‘손익분기점이야 넘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긴 했지만(웃음)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다.”

- 전작 <해운대>가 1145만을 동원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국제시장>을 만들며 부담스러웠을 법 하다.

“흥행에 대한 부담보다 사명감 때문에 어깨가 무거웠다.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신데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사명감, 젊은 세대들한테는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내 진심을 전달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동시에 다가오더라.”

- 그런데 하필 왜 국제시장인가? 고향인 부산에 대한 애착 때문인가?

“해운대에서 국제시장으로 왔으니 다음번엔 광안리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하하하. 국제시장은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부산 토박이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간으로 국제시장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는 국제시장의 상징성이다. 예전에는 부산의 중심지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사그라지는 공간이다. 우리네 인생과도 비슷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

- 이번에 산업화 시대 이야기를 했다. 민주화 시대 이야기를 할 계획도 있는가?

“희망사항이다. 덕수 가족의 60~70년대를 그리니 덕수 가족의 80~90년대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80년대 초까지 산업화가 화두였다면 그 이후부터 90년대까지는 민주화가 화두였다. 그 때쯤이면 덕수의 아들이 대학생 정도 됐을 것 같다. 보수주의자인 덕수와 진보주의자인 덕수 아들의 대립과 갈등, 그 안에서도 가족애를 그려내면 어떨까. 어찌됐든 나는 모두가 함께 보는 가족영화를 찍고 싶으니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