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하얀 공간에서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는 제이. 그러다 갑자기 코피를 흘리는 제이. 제이의 주변 인물 5명은 각자 제이에게 코피를 흘리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각자 다른 장소, 다른 인물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지만 여전히 제이는 코피를 흘리고 결국 쓰러진다.
제이가 쓰러졌다 일어나면 각자 다른 장소에 있던 인물들이 잡지 커버를 촬영하고 있는 스튜디오 안에 모인다. 열심히 촬영을 진행하지만 아무도 제이를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 보인다.
[연출의도] 내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 아닌 사건에 대해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금방 잊어버리고, 결국 당사자만 남게 된다. 당사자도 자신의 일에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코피’라는 어떤 현상에 대해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제이를 위한 반응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 다른 장소에 각자 있던 인물이 합쳐지지만, 결국 제이에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심’에 대해 표현해보고 싶었다.
‘만인의 만인을 위한 건배’ 박미현감독 인터뷰-제목이 독특합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면 ‘보다 위대한 존재를 위해 건배’라는 구절과 ‘만인은 만인을 위해 일한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만인의 만인을 위한 건배’가 책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라서 제목으로 따왔습니다. 영어제목은 ‘멋진 신세계’의 영어 제목 그대로를 따서 만들었습니다.”
-그래픽 장면에서 배우가 오래 가만히 있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혹은 그 외에 촬영 중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배우가 오래 서있는 것도 그렇고, 진짜 코에서 코피가 흐르는 느낌을 원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원하는 타이밍에 코피가 떨어져야 하는데 카메라 이동 속도나 코피가 흐르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렸지요. 또한 겨울에 찍은 장면인데 얇은 옷 하나만 입고 몇 시간 동안 한자리에 서있었던 배우가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제작진과 배우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또 죄송합니다.”
-주제를 전달하는 코피라는 매개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주인공 J에게 ‘코피가 나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코피가 난 원인을 놓고 등장인물들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생각대로 J에게 원인과 해결방안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J에게 진심으로 다가오지 못하지요.
코피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코피가 나는 사건을 통해 타자의 ‘표피적인 관심’을 꼬집어보고자 하였습니다. 코피는 자신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이 원인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사사건건 표면적으로 간섭하는 다른 타인들의 말을 듣고 결국 우유부단한 J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이었던 코피를 해결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이 조금 난해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마지막 촬영장에 있는 이들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따로따로 나왔던 인물인데, 한 공간으로 모여들어 각자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앞에서 J에게 보였던 관심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J는 모델이라는 가장 관심을 받아야 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J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관심을 그렇게 연출한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모두 등장인물이 6명입니다. 그들에겐 각자의 성격에 맞춰 다른 색깔을 정해놓았습니다. J는 하얀색을 상징했지만 결국은 빨갛게 물들어 가죠. 이는 우유부단하고 주체적이지 못한 J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J처럼 자신이 6명의 유형 가운데 어디에 속할지, 영화 속 숨겨진 소품들의 의미를 파악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무관심 또는 표면적 관심이 팽배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자신의 일이 가장 중요한 요즘 세태에서 무관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니까’ 혹은 ‘나 하나쯤이야’ 등의 개인주의가 자신을 파멸시킬지도 모릅니다. 사회는 혼자 잘한다고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미래사회는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것처럼 부모도 모르고, 아주 개인적이고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작더라도 이웃에게 가지는 따뜻한 관심이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글·영상 인사이드피플(insidepeople.co.kr)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