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병 든 한 남학생이 침대에 누워 있다. 여자 친구는 모형 비행기를 손으로 날리며 이게 뭐냐고 묻는다. “2차대전 때 프랑스가 급하게 만들었지만, 한 번도 날지 못했던, 전투기. 라팔 K.” 그때 피자가 배달되고, 피자 박스 안에는 피자가 아닌 사람의 귀가 들어 있다. 남학생은 먹지 않겠다며 돌아서는데….
[기획의도] 사람의 귀는 참 예쁘게도 생겼다. 도시의 굴곡이 모두 소리로 닿을 듯 참 화려하게도 생겼다. 오늘은 시상식에 나갔다. 조그만 귀를 파우치처럼 잡아들었고, 귀는 빨간 카펫을 깔고 나직이 신음했다. 어디선가 탱크의 울음소리가 나고 나는 불독처럼 귀를 오므리게 되었다.
온갖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그것은 꼭 강도의 마스크처럼 귀를 꼭 닫았다.
‘라팔K’ 박건호 감독 인터뷰
-독특한 표현의 실험영화인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사조로 보면 표현주의에 가깝지만, 기본적으로는 시나리오가 어떻게 영상에 구현되는지 즐기는 데 있습니다. 일단 ‘아, 이 정도면 관객이 알 거야’라는 굉장히 ‘루즈한 생각’이 들면 그 범위 내에선 제 마음대로 찍는 것이 제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일 거예요. 그리고 ‘라팔 K’를 촬영한 촬영감독도 ‘마음대로 찍을 거야’라고 하셔서, ‘마음대로 찍으세요’ 라고 했습니다. 정말 기본적인 콘티를 제외하곤 조명이나 그런 건 마음대로 찍으셨는데, 그게 영화와 시너지효과가 나서, 영화가 완성된 후 꽤 즐거웠습니다. 영상의 스타일 같은 경우 자극적인 비주얼을 선호합니다. 요즘은 영화의 분위기와 함께 관객들에게 조용히 스며들 수 있는 자극적인 비주얼을 연구 중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귀’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귀는 학생들에게 딜레마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소통의 부재와 현실의 타협. 첫째는 말 그대로 학생들에 대한 소통의 상징입니다. 체벌이 금지됐다 뿐이지 정작 학생들이 마음 놓고 소통할 수 있다거나 그런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거든요. 그건 현재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폭력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서 막다른 길에 학생을 몰아넣고, 그 막다른 길에 갇혀 있는 학생의 비명을 아무도 듣지 않는 그런 시대랄까요. 더 큰 문제는 학생들 대부분이 ‘뭐가 힘든지도 몰라서 힘들기만 하고 비명도 못 지른다’는 것에 있기도 하지만요.
또 하나는 ‘현실과의 타협’입니다. 많은 학생이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학생들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종의 아웃사이더들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피자박스 속의 귀를 거부하고, 길거리의 ‘귀 상인’에게 두려움을 느끼지요.
-제도권 교육에 있는 학생들에 대한 오브제가 날지 못한 전투기 ‘라팔K’라면 학생들이 결국 날지 못할 것이라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생들은 굉장히 전투적으로 길러지지만 날지 못합니다. ‘아니 그럴 거면 전투적으로 기르질 말든가’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점은 다소 진부한 얘기지만 경쟁사회에 있다고 봐야겠죠. 적어도 학생들은 정찰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시기에 많은 직간접 경험을 하고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서 그것으로 삶을 이해하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냥 ‘넌 전투기야’라고 최면을 거니까 학생들은 적(敵)도 없는데 계속해서 적을 만들어냅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그것에 도태된 인물인가요? 남자 캐릭터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네, 도태된 인물 맞습니다. 너무 도태되어서 죽어버린 캐릭터입니다. 남자 캐릭터는 그런 전투적인 삶에 지쳐, 현실과의 타협이나 소통을 바라지도 못하는 그런 캐릭터입니다. 사실 남자 캐릭터가 현재 가장 흔한 학생의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의 학생들은 대부분 죽어있으니까요. 근데 제가 연기해서 그런지 설명 드리기가 조금 이상하네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제작비가 없어서….”
-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된 캐릭터였나요?
“저는 고등학교를 안 나와서, 사실 이 캐릭터의 심정은 잘은 모르겠습니다. 죽기 전에 도망을 나온 심정까지는 알지만요. 그런데요, 1월이었는데, 아침에 거리의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았어요. 눈 오는 날 조용히 보충수업을 받으러 가는 아이들을 보니까 다 어딘지 전투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시체 같기도 했어요. 음, 간접경험이 투영이 된 캐릭터군요.”
-영화 속 여학생의 마지막 대사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br>“우리랑 대화해, 제도적으로든 뭐든 좋으니까. 자꾸 타협만 하라고 하지 말고, 대화를 해줘. 우리 얘길 들어줘.” 글 영상/ 인사이드피플(insidepeople.co.kr)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