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자 감독
강미자 감독

 고태정 감독
고태정 감독
이경미·고태정 감독등…“이례적인 현상”해운대 오픈 카페서 관객들 만나 대화도‘미쓰 홍당무’ ‘그녀들의 방’ 섬세함 돋보여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여성 감독의 약진이다. 이상용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한국 영화의 오늘’ 부문에 여성 감독의 작품이 모두 여섯 편이나 진출했다”며 “이는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소개했다.

6편 가운데 올 상반기 개봉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임순례 감독)을 빼면 모두 미개봉작이다. 오는 16일 극장 개봉하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그녀들의 방>의 고태정 감독,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부지영 감독, <푸른 강은 흘러라>의 강미자 감독 등 4명이 첫 장편을 찍은 신인 감독이다. 김소영 감독의 <민둥산>은 두 번째 장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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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가운데 김소영 감독을 제외한 5명이 지난 4일 해운대 백사장에 마련된 피프 빌리지 오픈 카페에서 ‘아주담담-한국의 여성 감독들’이라는 주제로 관객들을 만났다. 주제는 아무래도 여성으로서 영화감독을 한다는 것이었다. 고태정 감독은 “영화학교나 단편영화계에서는 여성 감독들이 많이 있지만, 정작 장편을 발표하는 감독들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고, 임순례 감독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네트워킹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부지영 감독은 “액션이나 스릴러 등 규모 있는 영화를 연출하는 여성 감독들이 나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들의 공통된 특징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박찬욱 감독이 처음 제작자로 나서 눈길을 끈 <미쓰 홍당무>는 고등학교 시절 은사였다가 지금은 같은 학교 교사가 된 선생님(이종혁)을 짝사랑하는 양미숙(공효진)이 벌이는 소동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야한 성적 농담의 겉포장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왕따’들의 심리를 파고들어가는 뚝심과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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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방>은 고시원을 탈출해 나만의 방을 갖는 게 최대의 소원인 학습지 교사 언주(정유미)가 대저택의 소유자인 석희(예지원)를 만나 겪는 얘기다. 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골칫거리인 주거 문제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치밀한 내면 묘사로 단단하게 쌓아올린 플롯을 밀고 가는 연출의 힘은 올해 한국 영화의 값진 수확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공효진은 <미쓰 홍당무>에 이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도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뒤, 아버지가 다른 두 자매가 동생(신민아)의 아버지를 찾아 여행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 무비다. 대기업에 다니는 동생은 깔끔한 성격에 까칠하기까지 하지만,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언니(공효진)는 촌티 패션에 아무하고나 술 마시며 어울리기 좋아한다. 영화는 ‘아버지의 부재’를 열쇳말로 삼아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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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 감독들이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홍상수·김기덕·이창동·박찬욱 등 40~50대 남성 감독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들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 30대 여성 감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부산/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손홍주 <씨네21> 기자 lightson@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