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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주엔

우리 동네 ‘가시리’를 소개합니다

등록 :2018-05-09 15:24수정 :2018-05-09 16:10

[제주&] 가시리 갑마장 길을 걷다

“4월엔 유채꽃, 7~8월엔 해바라기
10월엔 억새, 12월 문화축제…”,
하루에도 수십 번 모습 바꾸는
오름과 오름 잇는 아름다운 숲길

갑마장 길 절반 규모 쫄븐 갑마장길
용암 흐름 볼 수 있는 숲속 가시천
큰 굼부리 안 굼부리 3개 따라비 오름

큰사슴이 오름의 일본군 진지 동굴
유채꽃 프라자의 게스트하우스
조랑말 체험공원서 승마 체험도
새것과 옛것이 함께하는 가시리에는 여유와 고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가시리 마을 풍경.  사진 서귀포/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새것과 옛것이 함께하는 가시리에는 여유와 고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가시리 마을 풍경. 사진 서귀포/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제주에는 올레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로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20여 개의 올레길 코스 외에도 오름과 오름을 잇는 아름다운 숲길이 곳곳에 숨어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그런 길섶에 숨은 보석 같은 마을이다. 가시리는 4월엔 유채꽃과 벚꽃으로, 10월엔 억새로 유명하다. 그러나 벚꽃은 지고 유채꽃도 시들어가는 4월 말에 찾은 가시리에서 뜻밖의 여유와 고적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가시리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더할 가(加) 때 시(時), 시간을 더해준다는 한자 이름처럼 한가롭고 여유롭다. 4·3이라는 역사의 아픔을 딛고 새로이 태어난, 사계절 ‘더 재미진 마을’ 가시리를 말한다.

글 서귀포/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한라산 고산지대와 해안을 잇는 곳에 있는 가시리는 그 옛날 활화산이던 한라산과 오름들이 뿜어낸 용암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다 멈추어 드넓은 평원을 이루어낸 중산간 지역에 있다. 표선면 전체 면적의 42%에 이르며, 넓은 평원과 초지대를 가지고 있어 600년 전부터 목축이 번성했다.

이 평원에는 조선시대 제주마를 길렀던 산마장 중 가장 큰 ‘녹산장’과 최상급의 갑마를 생산하는 ‘갑마장’이 설치됐고, 지금도 드넓은 마을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시리를 대표하는 갑마장길은 이 대평원을 에워싸고 있는 가시리 마을과 오름들, 그리고 목장길로 이어지는 20여㎞의 길이다. 쉬지 않고 걸어도 7~8시간이 걸리는 이 길이 부담스럽다면 핵심만 추려 절반 정도 규모인 10㎞ 구간으로 정리한 ‘쫄븐 갑마장길’(쫄븐은 ‘짧은’의 제주 사투리)을 걸어도 된다.

따라비 오름에서 내려다 본 잣성길 전경.                                                          사진/류우종 기자
따라비 오름에서 내려다 본 잣성길 전경. 사진/류우종 기자
3개의 굼부리를 가진 따라비 오름 갑마장길은 가시리사무소에서 표지판을 따라 시작된다. 쫄븐 갑마장길은 유채꽃과 벚꽃으로 이름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의 하나로 선정된 ‘녹산로’를 3㎞ 남짓 달리면 보이는 조랑말 체험공원 입구에서 시작한다. 녹산로는 녹산장과 갑마장 사이에 난 길로, 해마다 4월 초면 길가를 따라 유채꽃과 벚꽃이 흐드러져 장관을 이룬다.

녹산로를 찾은 지난 4월25일은 유채꽃이 절정을 지난 시기인데다 며칠 전 내린 폭우로 벚꽃마저 다 져버려 조금 아쉬웠지만, 이를 보상할 만한 호젓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3㎞쯤 되는 거리를 달려 조랑말 체험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친절한 안내판을 따라 쫄븐 갑마장길을 오른다. ‘가시천’을 지나 ‘따라비 오름’으로 가는 길과 유채꽃 광장을 지나 ‘큰사슴이 오름’으로 가는 길이 있다. 순환형 코스여서 어느 쪽으로 가도 다 통하는데 이번엔 따라비 오름 쪽을 택했다.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한 녹산로의 4월 초 풍경.     사진/김호일 작가 제공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한 녹산로의 4월 초 풍경. 사진/김호일 작가 제공
갑마장길 입구에는 코코넛 열매 껍질로 만든 푹신한 야자 매트가 깔려 발걸음을 도와준다. 따라비 오름 정상으로 오르다보면 가시천 상류와 만난다. 곶자왈 숲속으로 흐르는 조그만 시내는 이국적인 신비로움이 있다. 푸른 이끼가 깔린 바위들 사이로 다양한 난대성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시천은 화산활동 때 용암의 흐름을 원형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시천을 지나 조금 나아가면 목재 계단으로 잘 정비된 탐방로가 나오고 계단을 따라 300m쯤 올라가면 따라비 오름 능선이 나온다.

따라비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가시리 풍경.                                   사진/박영률 기자
따라비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가시리 풍경. 사진/박영률 기자
따라비 오름 정상에는 느긋하게 앉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벤치가 몇 군데 있다. 제주의 속살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신다.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는 거대한 풍차와 태양광발전센터 위로 젖무덤처럼 솟아오른 오름들을 본다. 그 앞을 병풍처럼 둘러친 소나무 숲들과 뒤편에 우뚝 솟은 어머니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시름을 모두 잊을 듯하다.

따라비 오름은 둥근 큰 굼부리(분화구) 안에 3개의 굼부리를 갖고 있어 능선의 곡선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능선을 따라 걸으면 시시각각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도 따라비 오름의 매력이다. 제주의 오름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빛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 모습을 바꾸어 오를 때마다 새롭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세련된 등산복 차림의 한 젊은 부부가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있다. 쓰레기를 치우는가 했더니 “고사리를 캐고 있다”고 한다. 육지에서 제주로 잠시 살러 왔다는 이 부부 외에도 고사리를 캐는 이들이 눈에 여럿 띄었다.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능선 위에 외로이 누워 있는 무덤 하나를 만난다. 산담(무덤 주변에 울타리로 쌓은 돌담) 안에 무덤과 봉분과 동자석이 있는 전형적인 제주의 무덤 양식을 따랐다. 제주에서는 망자에 대한 배려에선지 무덤에 담을 둘렀던 풍습이 있다.

쫄븐 갑마장길 약도                                                      한겨레신문사
쫄븐 갑마장길 약도 한겨레신문사
큰사슴이 오름과 유채꽃 광장 따라비에서 내려오면 ‘큰사슴이 오름’(대록산)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큰사슴이 오름 쪽으로 방향을 틀면 그사이에 ‘잣성길’이 있다. 때로 표지판이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 잘 살펴서 걸어야 한다. 푸른 삼나무 군락과 나란히 서 있는 잣성길은 굳이 갑마장 도보여행이 아니더라도 거닐어볼 만한 산책 코스다. 에둘러 걸으면 2㎞ 남짓 되는데, 가시리에서 해마다 4월 유채꽃 축제를 할 때 트레킹 코스로 활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늑한 잣성길 옆으로는 갑마장 목장이 펼쳐지고 그 너머 멀리엔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이 잣성길은 조선시대 때 국마장(나라에서 경영하던 목장)이었던 10개의 소장과 국마 중에서도 최고의 말만 길러냈던 갑마장 사이에 검은 돌담을 쌓아 경계를 표시한 곳으로, 지금은 마을 공동목장으로 쓰인다. 잣성길을 따라 곧장 가면 큰사슴이 오름 동남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갑마장 길을 가려면 여기서 오름을 우회해 시멘트 길을 1㎞ 남짓 따라가면 된다.

이제부터는 완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왼편은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태양열 집진판이 설치된 친환경 발전단지다. 전기를 키우는 밭인 셈이다. 돈키호테가 달려들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이는 거대한 풍차가 위압적이다. 저음의 바람개비 돌아가는 소리도 절대 작지 않다.

큰사슴이 오름 정상에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광활한 녹산장과 산마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름 8부 능선쯤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들이 파놓았다는 ‘진지 동굴’도 있다. 저 멀리 대한항공이 만든 ‘정석항공관’도 내려다보인다. 큰사슴이 오름에서 내려서면 유채꽃 광장이 펼쳐진다. 해마다 4월 초면 유채꽃이 장관을 이루는 이곳에선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그 정상에는 유채꽃 프라자가 있다. 주민들이 2009년부터 실시해온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과 신문화공간 조성 사업의 하나로 설치된 시설이다. 7개의 객실과 통나무동 2동으로 된 숙소, 무인 카페와 세미나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공공 게스트하우스다. 여기엔 무인 카페가 있어 잠시 지친 발걸음을 쉬어갈 수도 있다. 원래 연수원 건물로 지은 것인데, 풍광과 시설이 수려하다.

유채꽃 광장에서 관광객들이 봄을 즐기고 있다.   사진/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유채꽃 광장에서 관광객들이 봄을 즐기고 있다. 사진/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행기머체와 조랑말 체험공원 유채꽃 광장에서 내려와 1.6㎞ 남짓, 녹산로 옆 걷기 좋은 숲길을 따라 걸으면 행기머체가 나온다. ‘머체’란 돌무더기를 말하는 제주 사투리인데 용암 덩어리 위에 흙과 나무, 풀과 꽃 등이 덮여 독특한 모습을 나타낸다. 머체 위에 행기물(놋그릇에 담긴 물)이 있었다고 해 ‘행기머체’라 하는 이 용암 덩어리는 제주 탄생의 지질적 기록을 가진 증인인 셈이다.

쫄븐 갑마장길 입구이자 출구에 도착했다. 허기가 진다. 시장기도 달랠 겸 길 건너 식당과 카페가 있는 조랑말 체험공원으로 향한다. 갑마장이 있던 가시리 공동목장 자리에 들어선 ‘조랑말 체험공원’은 제주 목축 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리립 박물관인 ‘조랑말 박물관’, 조랑말을 직접 타고 체험해볼 수 있는 ‘조랑말 승마장’이 있다. 경기도 안양에서 와, 이곳에서 말에 오른 초등학생 아들을 대견하게 지켜보던 차지연씨는 “가시리가 숨은 보석 같은 관광지라고 해서 와 봤는데, 생각보다 더 볼거리가 많고 한적하고 여유로워 매우 만족스럽다”며 “사람들이 붐비는 축제 기간보다 지금이 더 여행하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꽃 축제의 주행사장이기도 한 조랑말 체험공원은 유채꽃밭과 거대한 풍차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오향금 가시리 농어촌체험휴양마을 사무장은 “4월엔 유채꽃 축제, 7~8엔 해바라기밭을 만들고, 10월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며, 12월엔 마을 주민들의 문화축제를 열어 이곳에 4계절 내내 볼거리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시10경 사진/김호일 작가 제공

1. 녹산유채: 녹산장의 봄꽃 유채    사진 김호일 작가
1. 녹산유채: 녹산장의 봄꽃 유채 사진 김호일 작가
2. 지조추로: 따라비 오름의 가을 억새       사진 김호일 작가
2. 지조추로: 따라비 오름의 가을 억새 사진 김호일 작가

3. 대록전경: 큰사슴이 오름에서 보는 대평원             사진 김호일 작가
3. 대록전경: 큰사슴이 오름에서 보는 대평원 사진 김호일 작가

4. 녹조정원: 큰사슴이 오름과 따라비 오름 사이의 잣성길     사진 김호일 작가
4. 녹조정원: 큰사슴이 오름과 따라비 오름 사이의 잣성길 사진 김호일 작가

5. 춘귤화향: 5월 감귤의 꽃향기                                  사진 김호일 작가
5. 춘귤화향: 5월 감귤의 꽃향기 사진 김호일 작가

6. 봉귀청담: 방곳오름에서 보는 오름               사진 김호일 작가
6. 봉귀청담: 방곳오름에서 보는 오름 사진 김호일 작가

7. 가시춘궐: 4월 가시리의 고사리       사진 김호일 작가
7. 가시춘궐: 4월 가시리의 고사리 사진 김호일 작가

8. 서을천선: 설 오름 정상에서 보는 하늘의 선     사진 김호일 작가
8. 서을천선: 설 오름 정상에서 보는 하늘의 선 사진 김호일 작가

9. 행기머체: 제주 탄생의 지질적 흔적                사진 김호일 작가
9. 행기머체: 제주 탄생의 지질적 흔적 사진 김호일 작가

10. 청선장천: 푸른 이끼 융단으로 덮인 가시천               사진 김호일 작가
10. 청선장천: 푸른 이끼 융단으로 덮인 가시천 사진 김호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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