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은
대중문화팀 기자
“찌라시 아는 거 없어?” “그 소문 진짜야?” 방송연예 담당 기자라고 하면 으레 받는 질문들이다. 일반 사람들한테 방송연예 기자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는 직업 정도로 인식된 지 오래다. 심지어는 “요즘 기자들은 드라마 줄거리만 쓰더라”고도 한다. 방송가 흐름을 짚어주는 기획기사를 쓰고, 인권침해 등 생각없이 만든 프로그램을 비판하며 올바른 티브이 문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묻히고 만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러려고 공들여 기사를 썼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하긴 그들을 탓할 일만도 아니다. 포털이 연예 뉴스의 주요 창구가 되면서 기자들이 자초한 현상이다. 포털 특히 네이버 연예란에는 가십성 혹은 줄거리 나열 같은 ‘기사 아닌 기사’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 메인페이지에 올라온다. 많은 기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줄거리를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예능에서 출연자 간에 오간 이야기를 기사화한다. 보도자료를 그냥 ‘컨트롤+브이’ 하고 내보내는 일도 허다하다. 홍보 담당자들이 보내온 자화자찬 평가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기자 이름을 달고 내보낸다. 보도자료 의존 기자가 늘면서 요즘은 홍보 담당자들이 취재도 한다. 작가나 배우를 인터뷰해 보도자료로 뿌리면 관련 인터뷰 기사가 수십개 쏟아진다. 방송사에 등록된 연예 매체만 100개나 된다는데, 갈수록 발품은 줄고 받아쓰기만 해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기사들이 주로 포털 메인을 장식한다. 포털이 선호하는 기사가 있으니 매체들은 포털의 입맛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연예뉴스에서 포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신문도 그렇지만 특히 온라인 매체는 포털 메인에 뜨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한 온라인 매체 기자는 “우리도 줄거리 쓰기 싫은데 그런 기사가 자주 메인에 뜨니 어쩔 수 없다”고 푸념했다. 온라인 매체들은 포털 특히 네이버가 어떤 기사를 메인에 자주 띄우는지까지 분석한다. 요즘 단독 아닌 단독 기사가 쏟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단독이라고 붙이면 메인에 잘 뜨더라”는 것이다. 통신사인 연합뉴스도 ‘단독’ 문구를 쓰니 말 다 했다. 연예인 한명의 인터뷰를 굳이 ① ② ③으로 쪼개어 송출하는 것도 “긴 기사는 메인에 잘 안 걸리기 때문”이다. 과거 주말 당직 근무를 하다가 실험 삼아 온라인용으로 ‘<막영애> 포상휴가 간다’라는 기사를 썼다가, 종일 메인에 걸려 있어 허탈해한 적이 있다. 전날 공들여 쓴 기획기사는 검색해야 겨우 나왔다.
책상에 앉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내용의 관련 기사를 짜내고, 특정 누군가가 화제가 되면 그 사람의 수년 전 사생활까지 탈탈 터는 가십성 기사가 쏟아지는 것도 메인을 향한 몸부림이다. 포털 중심 시대에 매체들이 포털 환경에 맞춰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메인 등극 여부가 연예 매체의 권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정상일까. 오히려 연예·문화를 망가뜨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누리꾼들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기사 감별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를 비판한 <그것이 알고 싶다> 관련 내용이 메인에 뜨지 않자,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사인데 왜 메인에 내보내지 않느냐”는 항의의 댓글도 쓴다.
모바일로 연예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 뉴스는 더 가십화되고, 몰라도 되는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포털 뉴스로 정보를 접하고 글을 읽으며 자란 이들이 결국 문화를 형성하는 주체가 된다. 내가 쓴 기사가, 내가 선택한 기사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면 기자와 창구의 책임감은 갑절로 커져야 한다. 부끄럽지 않은 방송연예 담당 기자가 되겠노라고 오늘도 수십번 다짐해본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