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친은 지식인>의 주연 김문하
<내 여친은 지식인>의 주연 김문하

<내 여친은 지식인>의 한 장면. 사진 교육방송 제공
<내 여친은 지식인>의 한 장면. 사진 교육방송 제공

게임을 계속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롤랑 바르트를 떠올리며 화를 참는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이렇게 말했어. 성공적인 커플의 구조에는 어떤 유연성이 필요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면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해 내지른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댔어.” ‘뭐래’라는 남자의 표정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대체 뭐지 이 프로그램. 지난 27일 끝난 <교육방송>(EBS) 3부작 파일럿 드라마 <내 여친은 지식인>은 인문학과 연애물을 접목한 ‘지식 혼합형 드라마’로 눈길을 모았다. 문과대 여자 임채영(임채영)은 모든 상황을 인문학에 대입해 얘기하고, 공대생 남자 김문하(김문하)는 여친에게 걸맞은 수준이 되려고 인문학 동아리에 가입해 다양한 지식을 접한다. 연애 이야기를 인문학으로 풀어낸 시도가 참신하다.

어디서 이런 착상을 했을까? 25일 교육방송 사옥에서 만난 이대경 피디의 대답도 드라마만큼 참신했다. “지난해 만났던 여자친구와의 경험담이에요. 둘 다 인문학에 관심 많아서 그런 식으로 장난 섞인 대화를 했어요. 그때 이런 상황을 드라마로 풀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죠. 제목도 그때 떠올렸던 거예요. 아 근데 이 이야기 해도 되나? 하하하.” 동글동글 외모에 유머 가득한 성격이 연상했던 ‘인문학 드라마 피디’의 이미지와 다르다. 이런 선입견은 어떤 것에 대입해 해석할 수 있을까.

광고

<내 여친은 지식인>의 한 장면. 사진 교육방송 제공
<내 여친은 지식인>의 한 장면. 사진 교육방송 제공

광고
광고

사진 교육방송 제공
사진 교육방송 제공

광고

<내 여친은 지식인>에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롤랑 바르트의 ‘아토포스’ 같은 다양한 철학·사회학 개념이 등장한다. 이를 인문학 문외한인 남자의 시선에서 시청자한테 쉽게 풀이해주는 대목이 재미있다. ‘시뮐라시옹’은 일상의 소셜미디어(에스엔에스)와 연관시킨다. “불어로 시늉”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설명한 뒤 “우리가 찍은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리고, 이를 복제, 재생산하면서 복제가 현실을 대체하게 된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 피디는 “인문학 아이템을 먼저 선택한 다음에 관련 내용을 드라마로 썼다”고 말했다. “작가와 함께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을 재미있게 풀자고 생각해서, 공통적으로 관심 있는 학자들을 찾았어요. 그중에서 일상과 연관지어 풀기 적절한 아이템을 골랐습니다.” 드라마에서 중요한 부분을 그래픽을 이용해 재차 설명하는데, 이 피디가 내용을 직접 정리했다고 한다.

 임채영과 이대경 피디(가운데). 사진 교육방송 제공
임채영과 이대경 피디(가운데). 사진 교육방송 제공

1000 대 1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선발된 두 배우는 똘똘한 임채영과 어리바리한 김문하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임채영은 2014년 광고로 데뷔해 지난해 <파랑새의 집>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김문하는 지난해 연극으로 데뷔해 드라마는 처음이다. 인문학을 잘 몰랐던 두 사람은 처음에는 대본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단다. 임채영은 “촬영 전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샀다. 너무 어려웠는데, 읽다보니 재미있더라”라고 했다. 김문하는 “극중에서도 이해를 못하는 역할이라 실제로 그런 리얼한 표정연기가 나올 수 있었다”며 웃었다. 대사를 칠 때도 일반 드라마와는 달랐다. 이 피디는 “단어 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기에 ‘아비투스’나 ‘인간의 소외’ 같은 식의 단어들을 말할 때는 끊어 읽는 식으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도록 신경썼다”고 했다. 배우들은 이 부분이 특히 어려웠단다. 이 드라마로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시청자들처럼 배우들도 드라마가 끝난 뒤 변했다. “지금은 인문학에서 다루는 감정, 이런 것을 혼자 공부하고 있어요.”(임채영)

광고

교육방송이 성인 대상 드라마를 선보인 건 <명동백작> 이후 12년 만이다. 이 피디는 “교육적인 가치를 뮤지컬, 드라마, 쇼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하는 데 관심이 많다”며 “이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되면 마르크스 문장을 인용하는 등 사회 현안 같은 것도 담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