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초월, 기상천외. 탈북 미녀들이 밝히는 북한 최고의 민간요법!!”

‘이만갑’의 안내 자막은 과장이 아니었다. 티브이 화면 속 ‘탈북 미녀’는 저마다 자신이 북한에서 경험한 각종 민간요법을 경쟁하듯 소개했다. 피가 나면 오징어 뼛가루를 발랐다는 증언부터 아편이 만병통치약으로 통한다는 이야기, 손발이 텄을 때 오줌이 최고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제작진이 특히 강조해서 편집한 대목은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 머리를 ‘날로’ 먹었다는 ‘천상 여자’ 서연주씨의 증언이었다. 서씨의 충격 발언에 스튜디오는 진행자와 패널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웃겨서 웃는 건지, 웃어야 하기에 웃는 건지 몰라도 ‘탈북 미녀’도 따라 웃는다. 그들을 지켜보며 시청자도 웃는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땅의 현실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거리’가 된다. 지난 17일(일요일) 밤 10시50분에 방송된 이만갑의 한 장면이었다.

이만갑은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매주 일요일 밤 10시50분 방송)의 줄임말이다. 채널에이는 지난해 10월 광고주를 상대로 채널설명회를 열 때부터 ‘이산가족 감동 프로젝트’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가슴 저미는 이산의 아픔, 한국적 현실에서는 더이상 낯선 소재가 아니었기에 당시만 해도 이만갑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광고

잊고 있던 이만갑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건 최근. 티브이 마니아인 후배로부터 “채널에이에서 ‘미수다’의 탈북 미녀 버전을 한다”는 제보(?)가 날아들었다. 처음엔 다른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미수다란 <한국방송>(KBS) 2티브이가 2006년 1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내보냈던 예능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를 가리킨다.

이산가족 감동 프로젝트와 미수다의 조합은 이만갑을 ‘종편 프로의 갑’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3월25일 방송분을 ‘탈북 미녀 특집’ 형식으로 꾸며 ‘탈북 미녀’의 상품성을 처음 확인한 채널에이는 지난 4월22일 ‘그녀들이 돌아왔다, 탈북 미녀’ 편부터는 아예 탈북 미녀를 고정출연시키는 쪽으로 프로의 성격을 바꿨다. 4월 이전까지 채 1%를 넘지 못했던 시청률에도 미세하나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채널에이의 대주주인 <동아일보>의 최근 이만갑 소개 기사를 보면 이 프로 제작진은 “탈북 미녀들이 등장한 뒤 시청률이 오르고 세계 각국의 언론에서도 취재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광고
광고

문제는 탈북 미녀를 통해 듣는 북한의 현실과 남북의 문화적 차이, 남북간 긴장관계의 실상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만갑에서는 대개 이를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지만 당장 이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위근우 티브이평론가는 22일 “북한 관련 정보가 워낙 제한돼 있는 만큼 ‘탈북 미녀를 통해 듣는 북한 이야기’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다”면서도 “한국 사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다양하고, 각각의 관점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탈북 미녀의 사적 방담 형식을 빌려 북한 현실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최성진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