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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연예

빽 없는 연예지망생 ‘성공시대’ 저무나

등록 :2011-06-17 19:57

TV 보는 여자
내겐 한때 연예인을 열렬히 지망했던 ‘어린 벗’이 한 명 있다. 기자 시절 교육 관련 취재를 하다 만났는데, 당시 16살(고1)이던 그 친구는 중학교 졸업 직후 받은 쌍꺼풀 수술 후유증으로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있었다.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라도, 요즘 중학생들은 졸업선물로 쌍꺼풀 수술을 가장 받고 싶어한다”는 말로 첫 만남부터 내게 문화적 충격을 선사한 그 친구는 코 성형을 목표로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었다. “나중에 유명해졌을 때를 대비해 성적도 중간쯤은 가야 하고, 연예기획사 쪽 돌아가는 사정도 파악해야 하고, 오디션을 위한 춤과 노래, 남다른 특기도 갖춰야 한다”고 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 쓰는 그 친구에게 연예인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반드시 거머쥐어야 할 빛나는 미래였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힘든 일을 감내해가며 연예인이 되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이른바 ‘불공정 계약서’를 쓰고 젊음과 재능을 착취당하는 아이돌 얘기 못 들어봤느냐고 겁주는 소리를 했더니 그 친구가 말했다. “기자 언니, 솔직히 말해보세요. 나처럼 돈 없고 ‘빽’ 없고 성적도 그저 그런 애가 그럭저럭 대학 가면 그다음엔 뭐 있어요? 지금은 좀 힘들어도, 기획사에만 들어가면 나한테는 진짜 ‘기회’가 오는 거잖아요. (기획사는) 뜰지 안 뜰지도 모르는 애들한테 가능성만 믿고 ‘투자’한 거잖아요.”

순간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주는 곳이 연예기획사밖에는 없다고 믿는 내 어린 벗에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계약서도 없이 일을 시키는 주유소 사장님, 그 친구가 다니는 각종 학원 원장님들,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챙기면서 졸업장을 찍어대는 대학들….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 오로지 아이들 자신과 그 부모의 몫으로만 짐 지워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최근, 평소 알고 지내던 방송사 피디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내 어린 벗이 ‘돈 없고 빽 없는 아이들에게도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곳’으로 여겼던 국내 연예기획사들이 요즘 부쩍 돈 있고 배경 있는 연예계 지망생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헝그리 정신 덕분에 빨리 성장하긴 하는데, 성공한 뒤에는 집안의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하기 때문에 계약서 관련 소송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논리라고 한다. “반면 있는 집 아이들은 돈 문제에 민감하지 않고 ‘강남 키드’ ‘엄친아’ 이미지에 힘입어 광고계에서도 각광받는다”고 했다. 아직은 별반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을 믿고 투자해줄 기획사를 꼭 찾아내겠다던 벗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생각나,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경/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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