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지브이(CGV)의 콘솔 플레이 대관 플랫폼 ‘아지트엑스’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 씨지브이 제공
씨지브이(CGV)의 콘솔 플레이 대관 플랫폼 ‘아지트엑스’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 씨지브이 제공

지난 2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씨지브이(CGV) 용산아이파크몰 18관. 126석 규모의 상영관에 있는 관객은 단 두명. 한명은 일어서 있고, 다른 한명은 앉아 있다. 둘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고, 가끔 함성을 지른다. 영화관에서 이래도 되나? 자세히 보니 둘 다 손에 뭔가를 쥐고 있다. 그건 바로 게임 컨트롤러(조이스틱). 그러고 보니 스크린의 영상도 보통의 영화와 다르다.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은 이들 손의 움직임에 따라 달리고 뛰어오르고 칼을 휘두른다. 그렇다. 이들은 영화관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스크린에 빵빵한 사운드로 게임을 하니 꼭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마치 내가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몰입감이 높아져서 집에서 할 때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흥분되네요.” 조규리(25)씨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어디 놀러 가기도 힘든데, 여기 와보니 진짜 재밌네요. 극장도 한 1년 만에 온 것 같아요.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영화관을 빌려 게임을 해보겠어요? 대관료 10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임유진(20)씨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기본 2시간30분에 무료 이벤트로 받은 추가 1시간까지 꽉 채워 게임을 즐긴 이들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스위치 등 가져온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 게임을 끝까지 다 깨고 엔딩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극장에서 영화 보는 기분으로 감상하는 게 목표였는데,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흥분한 탓인지 못 깼어요. 내일 또 와서 재도전할까 해요.”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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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지브이의 콘솔 플레이 대관 플랫폼 ‘아지트엑스’ 포스터. 씨지브이 제공
씨지브이의 콘솔 플레이 대관 플랫폼 ‘아지트엑스’ 포스터. 씨지브이 제공

이들이 이날 이용한 건 씨지브이의 콘솔 플레이 대관 플랫폼 ‘아지트엑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매달 역대 최저 관객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영화관이 살아남고자 고육책으로 짜낸 방책 중 하나다. 지난 13일부터 시험 삼아 경기도 부천과 고양 지역 4개관에서 운영한 결과, 모든 회차가 매진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16일 전국 34개관으로 확대해 서비스를 정식 론칭했다. 가격은 4인 기준 2시간30분 이용 시 오후 6시 이전 회차는 10만원, 이후 회차는 15만원이다. 수도권 지역은 대부분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한승우 씨지브이 부장은 “콘솔 게임 애호가로서 영화관처럼 큰 화면으로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코로나19로 타격이 큰 극장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런 로망을 현실화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설명했다. 한 부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친구들끼리는 1인칭 슈팅 게임이나 축구·야구 등 스포츠 게임을 많이 하고, 가족·연인들은 ‘동물의 숲’ ‘마리오’ 시리즈처럼 귀엽고 아기자기한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는 “고해상도 영상과 5.1 채널 사운드를 즐긴다는 점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이용자가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감상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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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최악의 보릿고개를 타개하기 위한 문화예술계의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대책을 호소하며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문화 소비자들도 놀랄 만큼 ‘신박한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언택트 디너쇼를 표방하는 ‘빅4 효 디너콘서트’ 포스터. 지니그라운드 제공
언택트 디너쇼를 표방하는 ‘빅4 효 디너콘서트’ 포스터. 지니그라운드 제공

공연계에서도 색다른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온라인 비대면 언택트 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엔 비대면 디너콘서트까지 등장했다. 명절 즈음 호텔 등에서 저녁을 먹으며 공연을 즐기는 디너쇼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연기획사 지니그라운드는 2월6일 오후 6시 ‘빅4 효 디너콘서트’를 개최한다. 트로트 가수 남진·김연자·조항조·신유의 공연 무대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한편, 즉석조리식품을 미리 배달해 이용자들이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메뉴는 돼지갈비찜, 양념소갈비, 주꾸미볶음, 낙지볶음, 보리굴비, 애호박찌개, 우렁된장찌개 등 가격대별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가족이라도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 상황에서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자녀들이 부모님 선물로 티켓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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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공연을 즐기는 독특한 여행 상품도 나왔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24일 ‘하늘 위의 콘서트’ 상품을 판매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왕복 3시간 동안 일본 영공까지 한바퀴 돌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비행하는 동안 트로트 가수 진성, 박현빈, 김수찬, 나상도, 김용임 등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방역지침을 지키기 위해 비행기 안에서도 좌석 간 거리두기를 하며, 탑승객은 운행 내내 마스크를 한 상태로 취식도 금지된다. 노래하는 가수도 강한 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릴 때는 좌석에 앉도록 하는 등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탑승객은 공항에서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는데, 실제 외국 여행객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비행기 탑승구와 면세 이용 구역을 분리해 운영한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공연계, 여행업계, 항공사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의 상생을 위해 공연과 여행을 결합한 이색 상품을 마련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하늘 위의 콘서트’ 포스터. 롯데홈쇼핑 제공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하늘 위의 콘서트’ 포스터. 롯데홈쇼핑 제공

크리스마스이브, 핼러윈과 함께 ‘홍대 앞 3대 명절’로 일컬어지는 ‘경록절’도 올해는 온라인으로 치러진다. 경록절은 한국 인디 1세대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 한경록의 생일을 말한다. 매년 2월11일 즈음 작은 술집을 빌려 한경록과 동료들이 즉흥 공연을 하며 놀던 파티가 점점 커져 나중엔 큰 공연장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처럼 됐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모일 수도 없는데다, 지난해까지 경록절 행사를 했던 공연장 무브홀마저 운영난으로 폐업하고 말았다. 한경록은 “올해는 조용히 지나갈까도 했으나, 레이디 가가 등이 지난해 코로나19 대응 기금 마련을 위해 개최한 온라인 자선 콘서트 ‘원 월드: 투게더 앳 홈’을 보고 감명받아 ‘경록절 인 더 하우스’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2월11일 낮 12시부터 크라잉넛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15시간 이상 중계되는 이번 행사에는 70팀 넘는 출연진이 참가한다. 크라잉넛, 윤도현, 조동희, 노브레인, 잔나비, 선우정아, 브로콜리너마저 등 음악가는 물론 한경록의 오랜 친구인 배우 오정세, 개그맨 박성호 등도 참여한다. 힙합 뮤지션 허클베리피, 스월비를 비롯해 슬랙(미국), 스타킬러스(러시아), 소온지(일본) 등 외국 밴드도 출연해 다양성을 높인다. 각 팀은 집이나 연습실, 공연장 등에서 노래하는 영상을 유튜브로 선보인다. 한경록은 “음악가, 공연장, 라이브클럽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들에게 힘을 북돋고 대중에게도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고자 온라인 릴레이 축제를 기획했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시도를 아이돌과 메이저 기획사만이 아니라 인디 음악계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언택트 릴레이 페스티벌 ‘경록절 인 더 하우스’ 포스터. 캡틴락컴퍼니 제공
언택트 릴레이 페스티벌 ‘경록절 인 더 하우스’ 포스터. 캡틴락컴퍼니 제공

보수적인 미술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날로그 취향이 강했던 화랑가에서 코로나19 확산 탓에 잇따라 전시가 취소되고 고객을 만날 접점이 사라지자 온라인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 나우, 갤러리 세인 등은 최근 유튜브 공식 채널을 만들어 전시 작품과 작가 인터뷰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이순심 갤러리 나우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유튜브, 에스엔에스(SNS) 등 새로운 채널을 전문적으로 운영·관리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온라인으로 작품을 판매하는 쇼핑 콘텐츠도 만들려 한다. 외국의 유명 온라인 쇼핑몰처럼 미술 작품을 사고팔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한국화랑협회 차원에서 만들자고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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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스스로 살길을 찾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 문화인들은 지난 20일 ‘코로나피해대책마련 범 관람문화계 연대모임’ 이름으로 성명을 내어 정부의 지원과 대책을 촉구한 바 있다.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문화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자꾸 후순위로 미루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문화산업의 근간이 무너지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정부는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원책을 시급하게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