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활용한 의상을 입고 나온 블랙핑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활용한 의상을 입고 나온 블랙핑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검정 곤룡포를 두른 임금이 용상에 앉아 있다. 어디선가 서서히 울리는 태평소 소리. 이내 “‘명금일하대취타’ 하랍신다”(징을 한 번 치고 대취타를 시작하라)라는 호령에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가락이 울려 퍼진다. 대취타 가락에 맞춰 힙합 비트가 깔리고, 랩이 시작된다. “대취타, 대취타, 자 울려라, 대취타.”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가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으로 지난 5월 발표한 신곡 ‘대취타’의 뮤직비디오는 용상에 앉은 왕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전통음악인 대취타를 샘플링해 만들었는데, 태평소와 꽹과리 등 전통악기 소리가 반복적인 랩 가사와 함께 신명을 돋운다. 대취타는 조선시대 왕이 행차할 때나 군대가 행진할 때 주로 쓰인 군례악이다.

슈가 ‘대취타’ 뮤직비디오 갈무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슈가 ‘대취타’ 뮤직비디오 갈무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반응은 뜨겁다. 국악에 힙합을 입힌 ‘대취타’는 지난달 3일(미국 현지시각) 발표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서 76위에 올랐고, 이곡이 담긴 앨범 'D-2'는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1위를 기록했다. 한국 솔로 가수가 빌보드 양대 차트인 ‘핫 100’과 ‘빌보드 200’에 동시에 진입한 것은 슈가가 처음이다. 뮤직비디오도 40일 만에 유튜브 누적 조회수가 9700만건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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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꾼> 리틀빅피처스 제공
영화 <소리꾼> 리틀빅피처스 제공

바야흐로 신국악의 시대다. 앞서 신중현, 송창식, 조용필, 김민기, 정태춘에서 서태지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과 국악을 접목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국악에 대한 관심은 가요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가수 이선희도 최근 발표한 16집 앨범 <안부> 타이틀곡 ‘안부’에 북과 거문고 등을 사용했고, 지난 1일에는 판소리 뮤지컬 영화 <소리꾼>이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주연은 판소리를 전공한 진짜 소리꾼 이봉근이 맡았다.

국악 관련 드라마도 제작된다. 아이피박스미디어는 내년 하반기 방송을 목표로 조선판 가무 오디션극 <조선 팝스타>를 준비 중이다. “국악과 최신 음악이 섞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과 그에 맞는 춤으로 기존 퓨전 사극과 차별화를 꾀한다”는 것이 제작사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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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희문. 이희문컴퍼니 제공
소리꾼 이희문. 이희문컴퍼니 제공

공연계에서는 젊은 소리꾼의 활약이 눈에 띈다. 선두에는 ‘조선의 아이돌’ 이희문이 있다. 경기민요 전수자인 그는 지난달 19일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잡가에 재즈를 입힌 <한국남자> 2집을 발표하며 국악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인 이날치도 지난 5월 정규 1집 <수궁가>를 통해 댄스음악을 입힌 판소리를 선보였다. 서도민요를 전공한 추다혜는 추다혜차지스란 이름으로 지난 5월 정규 1집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를 냈다. 펑크와 무가(굿 음악)를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민요 록밴드 씽씽의 멤버였던 이희문, 장영규(이날치 멤버), 추다혜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국악의 진화를 이끄는 것이다.

국악밴드 고래야는 씽씽에 이어 미국 공영 라디오 엔피아르(NPR)의 간판인 <작은 책상 콘서트>에 지난달 출연해 세계적 이목을 끌고 있고, 소리꾼 이자람은 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1인극 <이방인의 노래>를 오는 5일까지 더줌아트센터에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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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인기와 더불어 한복도 주목받고 있다.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는 지난달 26일 첫 정규앨범 선공개 타이틀곡인 ‘하우 유 라이크 댓’을 공개하며 활동에 들어갔는데, 한복을 활용한 의상에 세계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전문가들은 국악 열풍의 이유로 ‘국악이 주는 새로움’을 꼽았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국악은 학교에서만 배우는 굉장히 낯선 콘텐츠”라며 “‘올드 벗 뉴’, 즉 오래됐지만 그래서 새로운 국악이 대중문화와 결합하면서 신선함을 주고, 특히 한국 전통문화가 낯선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색으로 환영받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도 “경계를 허물거나 이종 간 협업에 익숙한 ‘제트세대’에게 국악은 ‘올드’한 게 아니라 오히려 ‘힙’하게 받아들여진다”며 “국외에서도 ‘케이팝’이 열풍이다 보니, 그 뿌리인 국악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라고 짚었다.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문성 국악평론가는 “지금 대중음악에서 국악은 양념처럼 소비되고 있다”며 “국악에 대한 관심이 전통적인 국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고, 반짝 호기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김희선 실장은 “대중문화는 국악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을 국악의 미학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중물 구실을 한다”며 “여러 가수가 국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면 어느 순간 전통 국악도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악을 동시대의 삶과 문화에 녹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