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사이에 한복이 열풍이다. 한복 여행, 한복 나들이 등 한복을 패션이자 놀이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서울 북촌한옥마을, 서울 인사동 등에는 한복대여소가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한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한복여행가’ ‘한복입기 좋은 날’ ‘한복데이’ 등 한복 관련 커뮤니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신한복’ 디자이너 황선태·이혜미·조영기(왼쪽 둘째부터)씨가 지난달 31일 인사동의 전통찻집에 모였다. 한복 대중화를 위해 지난해 6월 문을 연 한복진흥센터의 최정철(맨왼쪽) 센터장도 함께 했다. 기존 개량한복이나 생활한복이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기성복 제품이라면 신한복은 디자이너가 직접 만드는 패션 브랜드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이들은 한복이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 아니라 다양하게 나를 표현하는 옷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먼저 ‘왜 한복이 젊은층 사이에 인기가 있는지’를 물었다. 황씨가 운을 뗐다. “요즘 젊은층은 나만의 표현을 하고 싶은 욕구가 높은데, 한복이 남과 다른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니까 인기를 모으는 거죠.”
조씨도 거들었다. “젊은이들은 한복을 입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죠.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요. 그들에게 한복은 ‘매력적인 패션’의 하나로 다가온 거예요. 그런데 정작 우리 디자이너들이 그걸 깨닫지 못했죠. 디자이너들에게 풀어야 할 과제를 남겨 준 셈이죠.”
최 센터장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한복은 특별한 날 입는 옷이라고 여겼는데, 젊은이들은 여행을 떠나거나 모임을 참석할 때도 한복을 입어요. 한복을 만드는 사람들조차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먼저 알아차린 겁니다.”
물론 여전히 일상에서 한복을 입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9월 한복진흥센터가 5000명을 대상으로 ‘한복 입기를 꺼려한 이유’를 조사한 결과, ‘관리와 세탁이 어렵다’(32.6%), ‘입는 방법이 까다롭다’(23.1%), ‘활동에 지장을 준다’(14.6%) 등이 꼽혔다.
조씨는 이런 불편함 역시 선입관이라고 말했다. “이전엔 한복 입기 방법부터 불편했죠. 저고리나 두루마기를 고정시키려면 끈으로 된 고름을 매야 했어요. 남자 바짓가랑이 끝을 묶는 대님도 불편했어요. 하지만 요즘엔 대부분 똑따기 단추로 처리해요. 바지에도 주머니가 있구요.”
이씨는 한복입기가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튀고 싶은 사람이 한복을 입습니다. 튀기 싫어하는 사람은 입지 않죠. 명절이 아닌 평상시에 한복을 입으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되잖아요. 그런 눈길에 익숙해져야 한복이 대중화되는 거겠죠.”
지난 5월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프랑스 샤넬의 패션쇼에서는 한복을 응용한 여러 작품이 선보였다. 샤넬표 한복이 전통한복을 재해석했다는 긍정 평가도 있었지만, 한복을 재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설픈 시도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황씨의 얘기다. “샤넬 디자이너가 한복을 모티브로 한국적인 패션을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한복의 아주 작은 디테일인 색동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한복의 정신을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없죠. 그래서 한복 느낌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은 거예요.”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옷은 사람의 몸에 부드러운 천으로 휘감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특징이에요.” 최 센터장이 받았다. “마치 도자기를 빚어 그 안에 사람을 집어넣는 그 느낌이죠.” 이씨가 답했다. “맞아요. 그런 느낌. 그런데 샤넬이 보여준 것은 옷을 자르고 재단한 이미지에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이 든 거죠.” 조씨도 거들었다. “한복을 패션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한복에는 우리만의 정체성,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디자이너들은 전통한복과 신한복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씨 얘기다. “전통한복은 당연히 지켜나가고 이어나가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 전통한복 격인 기모노와 신한복격인 유가타를 완전히 다르게 여기 거든요. 전통한복과 신한복 역시 그렇게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이씨도 덧붙였다. “한복은 ‘유비쿼터스’가 돼야 한다고 봐요. 특별한 날, 특정한 장소에서만 입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입는 옷이 돼야 하는 거죠.”
최 센터장의 얘기다. “지난해 10월 열린 ‘한복의 날’ 행사엔 시민 5000여명이 참여해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올해는 행사를 고궁에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죠. 한류 연예인이 인기를 모으듯, 한복 역시 한류를 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조씨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일본에는 지자체 주최 축제에 많은 사람이 일본 전통옷을 입고 가죠. 우리도 한복을 뽐낼 수 있는 다양한 축제를 기획해보면 어떨까요? 서울광장에서 한복을 입는 축제를 벌인다면 일반 대중에게 더 친숙해질 수 있을 거예요.”
황씨가 끝을 맺었다. “젊은층들이 한복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동안 한복 디자이너들이 너무 안주한 게 아닌가라는 반성을 해봅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라고요. 많은 시도가 나와 가장 한국적인, 그러면서 세계적인 한복을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