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재경(56)씨는 한국 건축사진계의 맏형으로 꼽힌다. 한국의 성공한 유명 건축가들 중 상당수가 그에게 자기 작품 건축사진을 맡긴다. 그는 뜻밖에도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않고 현상소에서 잔뼈가 굵었다. 1980년대 군 제대 뒤 누나 소개로 현상소에 취업해 꼬박 10년 동안 수동기사로 일했다. 주 고객은 서울 여의도에 몰려 있던 굵직한 대형 설계사무소들이었다.
“설계사무소들이 원하는 프레젠테이션 패널용 변형 사이즈 사진을 손작업으로 뽑아주면서 건축사진에 관심이 생겼어요.” 일본 건축잡지에서 요시오 후다카와의 사진을 보면서 독학을 하고, 쉬는 날은 틈틈이 근대 건축물 사진을 찍었다. 건축사진가로 본격 데뷔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아니, 지금 와서 보면 운명적인 건지 모른다.
“어느 날 설계사무소에서 빌려 쓰던 카메라를 분실하면서 결국 그 일로 현상소를 그만두게 됐어요. 그때 사무소 직원들에게 제가 찍은 사진을 선물했죠.”
그 사진을 본 한 건축잡지 편집장이 잡지사에 들어오라고 권했고, 이후 그는 건축전문 사진가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20여년 건축사진을 파고든 그는 자신의 건축사진론을 단 세 문장으로 압축했다.
“건축물은 너무 커서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닐 수 없잖아요. 그래서 휴대용으로 만든 게 설계도면, 조감도죠. 일종의 이미지인데, 사진이 발명되면서 같은 필요에 의해 사진건축이 등장합니다. 건축이 이미지로 소통되고 소비되는 점에서 건축사진은 사진건축이라고 할 수 있죠.” 건축사진은 설계도나 조감도를 대체하는 미디어라는 말에 사진이 가지는 왜곡 기능을 억제하고 건물의 본모습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지론이 숨겨져 있다.
“건축사진은 건축, 인테리어 잡지를 통해 가장 많이 유통됩니다. 잡지들은 경쟁관계여서 더 선정적이고 화려해지려는 경향이 있어요. 사진이 스스로 꼭두각시로 전락함은 물론 사진과 건축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죠.”
그의 건축사진은 왜곡이 거의 없다. 불가피한 때를 제외하면 광각렌즈를 쓰지 않는다. 구도 역시 설계도의 정면도나 측면도, 약간 비껴서 위에서 내려다본 조감도와 흡사하다. 또 주위의 다른 건물도 보여줌으로써 건물이 어떤 곳에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건물 앞을 지나가는 전깃줄도 후보정으로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둔다. 그 바탕에는 건물이 주변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사진은 근사한데 실제로 가보면 볼품없는 건축물이 있어요. 사진이 실제보다 부풀린 거죠. 저는 사진이 해당 건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가보고 싶게 만들고, 실제로 가보면 사진보다 더 좋다는 평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 사진이 꼭 그래요. 임팩트가 강하지 않지만 건물이 신산한 삶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에게 20년 넘게 작품 사진을 오랫동안 맡겨온 김영섭 성균관대 건축도시설계원 교수의 말이다. “2003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간된 <세계 100명의 마스터 건축가 전집>에 한국인 최초로 제 이름이 53번째로 소개된 데는 그의 공로가 컸어요.”
김재경은 한국 건축사진 1세대라 할 수 있다. 강운구, 주명덕, 배병우 등 전통 건축을 찍은 사진가가 있지만 이들의 시각은 건축보다 전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김재경이 등장하면서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건축물을 구조적으로 해석하여 사진을 찍는 건축사진이 시작됐다.
김씨와 단골인 건축가들은 작고한 고 정기용 건축가를 비롯해 조성룡, 이종호, 김영준, 장윤규, 김승회, 김영준, 이소진, 신혜원 등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이들이다. 건축의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건축가들이 주로 그를 찾는다. 정기용의 ‘기적의 도서관’, 조성룡의 ‘선유도 공원’, 김승회의 보건소 연작 등이 모두 그의 카메라를 통해 발표됐다.
정기용의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아파트 단지와 단독주택지 사이에 세 동으로 나뉘어 어슷하게 배치되어 있다. 김 작가는 아파트 고층에서 내려다보며 건넛마을과 함께 도서관 전경을 잡아냈다. 야트막하게 자리잡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도서관 지붕이 경사진 것이나 건물이 세 동으로 나뉜 것이 건너편 동네와 소통하기 위한 건축가의 의도라고 해석한 데 따른 것이다.
“그의 사진은 따뜻해요. 건물이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어울려 있는 존재임을 잘 드러내죠. 실내 사진도 공간과 공간의 관계에 주목하여 설계자와 다른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건축가 김승회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작품에 흰 실내 공간이 많은데, 김씨는 자칫 차가울 수 있는 색을 외부 빛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색온도로 구별해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번 방문으로는 알아내기 힘든 곳만 귀띔할 뿐 대부분 작가한테 촬영을 일임한다”며 “일을 맡기고 나면 사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사진가로는 드물게 순수 작품 사진가로도 활동하면서 자신의 외연을 넓혀갔다. 관심 주제도 건축에서 자연, 그리고 도시, 주거 문제로 확대됐다. 전통 건축을 찍은 <자연과 건축>, 서울 달동네를 찍은 <뮤트>, 건축사진 에세이집 <셧 클락 건축을 품다> 등의 책을 냈다. 지금 경기도 용인 지앤아트스페이스에서는 그의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개인전 ‘시간의 더께’(내년 1월12일까지)가 열린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