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l 일제강점기 군사시설물 여수 수상비행장에 가다
73년전 지은 신월동 수상비행장
해안가로 뻗은 폭 200m 활주로
도로로 절단된 채 공장으로 연결 반원형의 콘크리트 격납고 4동에
남은 탄약고·공장 굴뚝 거의 온전
전문가 “문화재 지정 보호가치 커”
전남 여수시 신월동. 구글 위성지도로 보면 여수의 명산 구봉산(해발 388m)이 남서쪽으로 흐르다 바다와 만나는 즈음에 자리잡은 지역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해안으로는 구항과 신항을 잇는 신월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새 도로를 위해 바다를 매립하고 일직선으로 방파제를 쌓았다. 그런데 신월로가 한화케미칼 여수공장 앞을 지나는 즈음 방파제에서 바다 쪽으로 고양이 혓바닥처럼 튀어나온 구조물이 보인다. 이게 뭐지?
문화재청 의뢰로 일제강점기 군사시설물을 조사하는 연세대 신주백 교수팀과 함께 지난달 30일 현장에 갔다. 평범한 해안은 아니다. 5×5m 규격의 시멘트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바다쪽에 촘촘하게 깔려 있다. 폭은 자그마치 200m. 하지만 길이를 특정할 수 없다. 바닷물 속으로 구조물들이 연장돼 있는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드러나는 길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루떡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다 쪽의 것이 갈라져 있을 뿐 육지 쪽의 것은 온전했다. 충격 또는 열에 의한 균열이 널리 퍼지는 것을 막으려 일정한 간격으로 완충재를 넣은 게 분명하다. 바닷물이 밀고 썰며 세월에 부닥쳐 완충 부분이 쩍쩍 갈라진 것이다. 갈라진 틈으로 드러난 콘크리트 판 두께는 20~30㎝. 어른 머리 크기의 깬돌로 바닥을 고르고 그 위에 둥근자갈을 섞은 콘크리트를 비벼넣었다. 이 정체 모를 구조물은 ‘여수 수상비행장 활주로’다.
1940년, 일본 군부는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미군 상륙에 대비해 한반도 남부에 대규모 군사방어시설을 설치한다. 방어선은 부산, 진해, 여수, 목포로 이어지는데, 여수에는 1941년 여수요새부대와 여수중포병연대가 주둔한다.
여수 수상비행장은 당시 ‘최후 항전’을 위한 군사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수상비행장은 군사적으로 비행장이 필요한데 넓은 활주로를 만들기 어려운 지형 탓에 바다 위에 인공으로 비행장을 만든 것이다. 2500㎡ 터에 수상비행기 5대가 이착륙할 수 있는 210m 길이 활주로와 격납고, 정비고 등이 만들어졌다. 지금 그 자리에는 지금 한화케미칼 여수공장이 들어섰다. 현재 남아 있는 비행장 시설은 격납고 4동, 지상 탄약고(추정) 2동, 지하 탄약고 1곳, 지하 무기고(추정) 1곳, 굴뚝 1개. 격납고는 반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길이는 15~20m. 여느 격납고와 달리 맨 뒤쪽에 둥글게 파인 홀이 있어 여수비행장만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40~50m 높이의 굴뚝은 군부대 안에 공장시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데 기록에는 군사시설을 포함해 44개동의 공장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공장 경비실 바깥에 위치한 지하 무기고는 대피소 간판이 붙어 있을 뿐 사용하지 않고 잠가놓은 상태다. 내부는 들어가보니 거의 완전하게 보존돼 있었다. 산을 수평으로 파고들어가 가장 깊숙한 곳에 4~5m 높이의 거대한 홀을 만들고 출입구 네곳을 두어 이중문을 달았다. 현장을 둘러본 군사전문가 신효승씨는 “무기고 또는 정비고로 활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수상비행장은 해방 뒤 한국군 14연대가 주둔한다. 바로 여순사건의 진원지다. 제주 4·3항쟁 진압을 위한 파병에 반대해 김지회를 중심으로 군인봉기가 일어나고, ‘3일 천하’로 패퇴한 반란군은 지리산으로 입산하게 된다.
그동안 그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비행장은 최근 들어 문화재청이 일제의 군사 시설들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면서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근대 건축 전문가인 배재대 건축학부 김종헌 교수는 “유적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곳이란 점에서 여수 수상비행장은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여수/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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