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영 아나운서는 최근 주목받는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 가운데 한 명입니다. 프로야구 스타를 인터뷰하다가 덩달아 축하의 물벼락을 맞고 당황하는 모습부터 방송에 입고 나온 옷, 심지어 여고 시절의 사진까지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 아나운서의 큰 키도 빠뜨릴 수 없는데요, 몸면 첫 회는 그의 키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특정인의 몸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는 몸면에 격주로 한 번씩 실릴 예정입니다.

20대 여자 평균신장 160.5㎝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168㎝까지 자란
정인영의 현재 키는 175.8㎝
큰 키로 대중들 주목받았지만
‘180㎝ 의혹’은 본인도 답답해
남자의 키는 권력의 상징이라
클수록 좋은 반면에
여자는 남자보다 작아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 고정관념 속에서
여성의 키는 유리하기보다
불리한 방향으로 언급돼와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여성 아나운서, 특히 프로야구·축구 시즌 개막과 함께 한껏 주목을 받고 있는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대개 말보다 몸으로 먼저 말한다. 각 종목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이있는 현장 취재, 매끄러운 진행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보다 빼어난 외모나 과감한 노출로 자신의 이름을 먼저 알린 아나운서가 많다. 많은 ‘야구여신’과 ‘축구여신’은 미디어와 시청자가 내면적 깊이를 포착하지도, 주목하지도 않는 흐름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여신’이라는 명명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의 몸은 이미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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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 아나운서가 <케이비에스엔>에서 스페인 프로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라리가 쇼>를 함께 진행하는 박찬하 해설위원과 키를 맞대보고 있다. 박 위원의 키는 183㎝이다. 화면 갈무리
정인영 아나운서가 <케이비에스엔>에서 스페인 프로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라리가 쇼>를 함께 진행하는 박찬하 해설위원과 키를 맞대보고 있다. 박 위원의 키는 183㎝이다. 화면 갈무리
“저는 여신이 아니라 장신입니다”

몸면 첫회의 주인공인 정인영(28) <케이비에스엔>(KBS N) 아나운서도 많은 미디어를 통해 ‘야구여신’, 때로는 ‘축구여신’으로 불리고 있다. 2011년 10월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인 케이비에스엔 아나운서로 입사한 그는 현재 스페인 프로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라리가 쇼>의 진행과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아이 러브 베이스볼>의 현장 인터뷰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여신의 지위에 오른 과정은 다른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와는 약간 달랐다. 그의 첫번째 대답이 열쇳말이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케이비에스미디어센터에서 <한겨레>와 만난 정 아나운서는 “야구여신이 맞나, 축구여신이 맞나”라는 물음에 “나는 여신이 아니라 그냥 장신”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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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 아나운서가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던 데에는 ‘큰 키’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정 아나운서 본인이 주장하는 정확한 키는 175.8㎝다. 근거는 다소 불분명하다. 그는 “2년 전 다른 방송사 입사시험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신체검사를 위해 병원에서 키를 잰 적이 있는데 175.2㎝로 나왔다. 그건 좀 작게 나온 것 같고, 대학교 2~3학년 때 쟀던 175.8㎝가 맞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성장은 대개 뼈의 길이 성장을 담당하는 성장판이 완전히 닫히는 18살(남성은 21살)에 끝난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정 아나운서의 경우 성장판이 늦게 닫혀 대학교 2~3학년 이후에도 좀더 자랐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는 “성장은 (그때 이후) 당연히 멈췄다. 곧 서른인데, 큰일 날 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정 아나운서의 ‘175.8㎝’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의 키는 여전히 크다.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이 2010년 발표한 ‘한국 남녀 평균 신체지수’를 보면, 20대 여성의 평균신장은 160.5㎝였다. 그는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적 여성보다 15.3㎝ 큰 키를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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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채널을 즐겨 보는 시청자 가운데 일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까지도 ‘정인영 180㎝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180㎝ 이상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정 아나운서 스스로 키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인증샷’은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진은 정 아나운서가 지난 4월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의 <출발 드림팀> ‘베트남 특집’에 출연했을 때, 동료 방송인과 나란히 선 모습이다. 여기서 정 아나운서는 키 171㎝로 알려진 박은지 아나운서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밖에도 프로농구 경기장에서 허재(188㎝), 이충희(182㎝) 감독 옆에 섰는데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모습,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 김상훈(180㎝) 선수를 인터뷰할 때 굽 없는 플랫슈즈를 신고서도 상체를 약간 굽혀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듣는 장면 등도 ‘180㎝ 의혹’ 제기의 근거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게시판에 ‘정인영 아나운서 키 180㎝ 인증 ㄷㄷㄷ’ 제목의 게시물을 올린 누리꾼(아이디 sensm****)은 앞서 말한 ‘증거 사진’ 등을 제시하며 “절대 저 키가 176㎝일 수는 없다. 저게 176㎝ 맞다면 앞으로 모든 남자 연예인은 정인영 아나운서 옆에서 키를 재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자보다 크면 배우자로 선택받기 어렵다?

정 아나운서는 이에 대해 싫지만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 말하고 싶었어요. <출발 드림팀> 출연 당시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에 가려서 잘 안 보이는데, 박은지·이수정씨 등 다른 분들은 (굽 없는) 플랫슈즈를, 저는 14㎝짜리 힐을 신고 있었어요. 저는 ‘아오자이를 입는다면, 옷태를 위해 다들 굽 높은 신발을 신겠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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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아나운서는 이밖에도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면 이처럼 틀린 이야기가 많은데, 다들 너무 진지하게 참여하고 있다”며 웃었다. 다만 그는 “다른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비교하며 ‘180㎝ 맞지 않냐’는 주장이 나오면, ‘일일이 해명해서 다른 분들 키를 줄이느니, 내가 그냥 커지고 말지’ 하는 생각에 가만히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정 아나운서의 트위터 프로필(인물 소개)에는 케이비에스엔 소속 아나운서라는 설명과 함께 ‘키 180㎝ 아임미다(아닙니다)’라는 해명이 박혀 있다.

자신은 절대 180㎝가 아니라는 정인영 아나운서의 주장과, 이에 맞서 일부 누리꾼이 제기하는 정인영 180㎝ 의혹. 이는 키 큰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누리꾼 특유의 호기심과 정 아나운서에게 쏠리고 있는 스포츠 팬의 많은 관심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다. 이와 함께 여기에는 남성의 키와 여성의 키에 관한 차별적 시선과 오래된 고정관념도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은 “남녀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큰 조합을 떠올린다. 남자는 여자가 더 크면 ‘섹시하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심리적 불편함과 위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작아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볼 때 20대 남성의 평균 키 174㎝(2010년 기술표준원 ‘한국 남녀 평균 신체지수’ 기준)를 훌쩍 뛰어넘는 정 아나운서의 키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남성의 키가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와 갖는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다. 프랑스 사회학자 니콜라 에르팽의 책 <키는 권력이다>를 보면 키 큰 남자가 키 작은 남자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은 사회학적, 통계학적 연구를 통해 여러 차례 드러났다. 남성의 큰 키는 단순히 신체적 우월성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을 위한 자본으로 통한다는 것이 에르팽의 주장이다. 에르팽은 <키는 권력이다>에서 “영국 인구패널(NSDC)에 근거해 계산해본 결과, 직장 남성의 키와 보수는 비례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키가 2.54㎝(1인치) 커질 때마다 노동자의 연평균 임금은 789달러 올라갔다. 키가 182㎝인 현역 노동자는 165㎝의 노동자보다 연간 5525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의 키는 주로 상대적 평가를 받았다. 키가 작은 여성은 이로 인해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지만 남성보다 키가 큰 여성은 배우자로부터 선택받을 가능성도,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더 적게 부여받는 식이다. 2001년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가 실시한 ‘부부생활환경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30~50살 키 큰 여성은 작거나 중간 키의 여성보다 커플을 이루는 경우가 더 적었다. 남성이 자신보다 큰 여성을 거부한 탓이기도 하지만, 큰 여성이 자신보다 작은 남성을 외면한 결과이기도 하다. 에르팽은 이를 “여성들은 자신보다 키 작은 남자를 신랑감으로 맞게 될 경우 발생할 남녀의 지배구조 혹은 지위관계의 전복을 바라지 않는 무의식적 심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크니까 보기 좋네” 생각하도록 당당하게

키와 성별의 차이에 관한 고정관념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508개의 광고사진을 분석한 <성의 광고>(1979년)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크게 나오는 언론 사진이나 광고 이미지는 매우 드물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크게 나오는 때는 의도적으로 웃음을 유발하고자 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재임 당시 그가 영부인 세실리아와 함께 있는 사진을 언론에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늘 두 사람의 키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사진만 내보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그의 전부인 세실리아보다 한뼘 정도 키가 작았다.

조아라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원은 “키에 관한 학문적 논의의 전반적 흐름을 보면 남성의 키는 남성성이나 권력의 상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쪽이었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키는 유리하기보다 불리한 방향으로 많이 언급돼왔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나만 해도 키가 170㎝로 작은 편이 아닌데, 남자를 만날 때 늘 굽이 없는 신발을 신는다. 여자는 남자보다 커 보이면 상대 남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믿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키 큰 여성의 상당수가 평소 구부정한 자세를 보이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정인영 아나운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성인 여성의 평균키를 훌쩍 뛰어넘는 168㎝까지 자랐다. 그의 키는 중학교 2학년까지 계속 자라 지금의 175.8㎝가 됐다. 2차 성징이 일찍 나타나는 여자아이가 키가 눈에 띄게 크면, 그만큼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쉽다. 상처받을 기회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는 중학생 때 버스를 타면 “아가씨는 왜 중학생 요금을 내고 타냐”며 꾸짖는 버스 기사에게 중학생이라고 설명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냥 성인 요금을 내고 다녔다. “성격은 지금도 좀 낯을 가리는 편이에요. 키가 너무 크니까 친구들은 제게 말 걸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고 저도 덩달아 한걸음 물러섰던 거죠.”

정 아나운서가 만약 실제보다 더 커 보이는 이유가 있다면 자신의 큰 키를 움츠린 자세나 낮은 신발로 굳이 감추려 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그는 성인이 된 뒤 자신의 키를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았다. 현재의 지배적 미적 기준에 맞게 적절히 변형이 가능한 얼굴 등과 달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인 키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큰 키가 싫다고 움츠리고 다니거나 불평한다고 제 키가 작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자신감 없는 사람처럼 보일 텐데 그것보다는 스스로 좋은 점을 바라보려 하고 있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크니까 보기 좋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가 자신의 키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모델도 연예인도 아닌 ‘방송인’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한 아쉬움이다. “지금까지 1년 넘게 방송을 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던 때는 주로 입고 있는 옷이 조금 특별했거나 야구 선수가 동료에게 뿌린 물을 대신 맞아서 재미있을 때였어요. 언제나 순간을 정지시킨 한 장의 사진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곤 하는 게 저로서는 사실 속상했어요. 앞으로는 방송을 잘 알고, 제대로 할 줄 아는 방송인으로도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180㎝는 아닌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솔직히 대답했다. “굉장히 큰데요. 180㎝ 의혹이 과장이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만 인터뷰 당시 그는 높은 굽 구두를 신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