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복 소장
위진복 소장

화려한 쇼핑센터들이 들어선 서울 영등포역 부근. 큰길에서 불과 몇 미터 안 골목으로 들어서면 순식간에 1960~70년대로 되돌아간 듯한 허름한 골목이 펼쳐진다. 사람 한명 누우면 꽉 차는 ‘쪽방’들이 즐비한 낡디낡은 건물이 이어지는 골목 끝, 거대한 고가도로가 나타나면서 그 아래 갑자기 등장하는 공터에 최근 새롭고 묘한 구조물이 들어섰다. 노랑·파랑·빨강 삼원색을 화사하게 칠한 컨테이너를 3층 높이로 쌓아 만든 임시 숙소다. 정확한 이름은 ‘영등포 쪽방촌 임시거주시설’. 회색빛이 우중충한 골목 안에서 유일하게 다채로운 색으로 치장한 이 컨테이너 더미는 회색빛 동네에서 도드라지는 듯하면서도 주변과 제법 잘 어울리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 컨테이너 가건물, 건축상 받다 이 컨테이너 임시 숙소는 최근 발표된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에서 국토해양부장관상을 받았다. 국토해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가 주관하는 공공건축상은 그해 나온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하는 상으로,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주’에게 주는 상이다. 우수한 건물은 건축가 못잖게 건축주의 의식과 결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이 컨테이너 시설이 일정 기간 쓰기 위한 임시 건물이 아니라 정식 건물이었으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심사위원장 박길룡 국민대 명예교수는 “건물을 발주한 서울시의 마인드가 좋았던 것은 물론이고 작품으로서 디자인 완성도도 높았다고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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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촌 입주자 임시 거처컨테이너 17개로 36개 숙소 배치휴게실·샤워실 등 부대시설 따로골목길 조화·디자인 완성도 인정위진복 소장 “동선·미관 고민 컸다”

이 숙소는 서울시가 현재 영등포역 부근에 밀집한 쪽방촌 건물들을 개선하면서 그 딸림 시설로 마련했다. 서울시가 낡은 쪽방 건물들에 대한 리노베이션을 시작하면서, 쪽방에 입주하려는 이들이 공사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는 임시 숙소로 지은 것이다. 임시 건물을 정식으로 짓기 어려우므로 폐컨테이너를 활용했다. 쪽방 시설 개선 자체에 그치지 않고 입주자를 위한 임시 거주처를 마련한 점, 버려지는 컨테이너를 활용하면서 도시 재생적인 측면도 고려한 점, 그리고 임시 시설인데도 도심 내에서 그 기능과 미관을 충실히 실현하려 한 점 등에서 건축주의 자세가 좋았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설계자는 젊은 건축가 위진복(40) 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소장. 위 소장은 서울시와 영등포구 등 여러 사업 주체들과 40여 차례나 회의를 하며 이 시설을 디자인했다.

■ 컨테이너, 쌓기만 하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 위진복 소장이 이 프로젝트에 오랜 시간 매달린 것은 공익 사업이란 의미와 함께 ‘컨테이너 작업’이란 점에 흥미를 느껴서였다. 컨테이너는 이미 만들어진 구조를 활용하고 조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어 건축가들이 흥미로워하는 소재다. 하지만 굳이 일반 주거시설을 컨테이너로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특별한 상업 시설이거나 공공 작업이 아니면 시도해 볼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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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소장은 13년 이상 사용해 용도가 끝난 해상운송용 컨테이너 두 종류로 이 시설을 만들었다. 20피트(6m)짜리 컨테이너 17개를 각 3등분해서 2m×2.4m(1.45평가량)짜리 방 3개로 만들어 모두 36개 숙소를 배치했고, 40피트짜리 컨테이너 3개로는 휴게실과 샤워실, 조리실을 묶은 부대시설 건물을 만들어 숙소와 연결했다. 컨테이너를 3개층으로 쌓아 일종의 ‘작은 마을’을 만든 것으로, 컨테이너 더미 옆에 계단을 달고 컨테이너 사이에 공용 공간을 두어 골목 구실을 하게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이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이 작은 마을 안에서도 개별적인 복도와 공용 복도를 분리했고, 가장자리에는 작은 테라스 구실을 하는 개별 여유 공간까지 뒀다. 컨테이너를 붙이고 떼어 협소한 공간을 활용하면서도 다양한 외부 공간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인다.

위진복 소장은 “단순하게 컨테이너를 포개고 쌓으면 될 것 같지만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동선을 뽑아내야 하고, 쌓인 모습이 구조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아름다워야 하기 때문에 시안을 50여가지나 만들며 고민했을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