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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아날로그 벽돌 디지털 미학을 표현하다

등록 2013-01-13 20:24

조민석 건축가의 ‘르베이지’. 김용관 건축사진가 제공
조민석 건축가의 ‘르베이지’. 김용관 건축사진가 제공
1970~80년대 김수근이 선봬
첨단재료에 밀리다 2010년대 부활
세련미 떨어지나 인간적인 맛 있어
일본에선 지을 수 없지만 한국에선 얼마든지 가능한 집이 있다. 바로 벽돌집이다. 지진 때문에 일본은 벽돌집을 짓지 못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벽돌은 별로 인기가 없는 건축 재료였다. 벽돌을 구울 흙이 적어 벽돌 건축이 발달하지 못했고, 현대로 넘어온 뒤로도 벽돌은 의외로 드문 소재였다. 1970~80년대 건축가 김수근이 서울 경동교회와 아르코미술관 등의 벽돌 건물을 선보였고, 이어 홍대앞과 평창동 일대에 붉은 벽돌을 쓴 고급 건축물들이 들어서면서 벽돌은 잠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벽돌 건축은 시들해졌고 옛날 재료로 치부되면서 잊혀졌다.

황두진 건축가의 ‘더 웨스트 빌리지’. 
 박영채 건축사진가 제공
황두진 건축가의 ‘더 웨스트 빌리지’. 박영채 건축사진가 제공
그랬던 벽돌이 2010년대 한국 건축의 주요한 소재로 부활했다. 특히 감각적인 디자인을 시도하는 건축가들이 벽돌에 다시 주목하면서 사무용 건물부터 단독주택까지 다양한 벽돌 건축을 선보이고 있다. 말끔하고 세련됐지만 인간적인 맛은 떨어지는 첨단 건축 재료에 질린 대중들과 건축가들이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벽돌로 다시 눈을 돌린 것이다. 예전처럼 벽돌 벽 자체가 집을 지탱하는 구조가 아니라 표면을 벽돌로 처리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21세기형 벽돌집’들이 속속 등장한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재료인 벽돌이 디지털 시대의 미학을 표현하는 재료로 변신한 것이다.

■ 벽돌 표면에 물결이 치네 최근 완공된 서울 한남동 르베이지 빌딩은 벽돌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효과를 다 보여주려는 듯한 건물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벽돌 벽 표면에 물결 모양 패턴이 들어간 점이다. 물결 무늬의 폭은 조금씩 좁아지거나 넓어져 리듬을 만들어내고, 그림자가 벽에 비치는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딱딱한 벽돌 벽이 마치 부드러운 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물결무늬 벽돌은 틀에 구운 것이 아니다. 고압 물줄기로 돌 같은 단단한 재료를 자르는 ‘워터젯’으로 특별 제작했다. 건물 표면의 물결 패턴을 컴퓨터로 미리 그린 뒤 그에 맞춰 물결 폭이 다른 9가지 벽돌 모양을 뽑아내고, 필요한 개수만큼 잘라 만들었다. 예전에는 이런 모양이 다른 벽돌을 만들려면 별도의 틀을 만들어 구워야 했고, 또 한꺼번에 많이 구워야만 제작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컴퓨터 작업이 가능해져 특별한 형태가 많아져도 가격차이가 크지 않게 됐다. 이렇게 잘라낸 벽돌을 철제 봉에 하나하나 순서대로 끼워서 벽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건물은 벽돌 값보다 벽돌 절단 비용이, 절단 비용보다 벽돌 쌓는 인건비가 더 많이 들었다.

설계자인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는 “친밀한 공간감과 규모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벽돌의 강점을 살리면서 새롭게 표면을 표현하는 가능성을 시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와이즈건축 ‘에이비시 사옥’. 진효숙 건축사진가 제공
와이즈건축 ‘에이비시 사옥’. 진효숙 건축사진가 제공
■ 벽돌 특유의 크기와 구멍, 한국 기후에 딱 맞아 황두진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종로구의 ‘더 웨스트 빌리지’는 반쯤 열리고 반쯤 가려진 벽돌 벽으로 한 면 전체를 처리해 멀리서 보면 망사를 씌운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벽돌 구멍 벽을 만든 것은 디자인 측면보다는 기능적인 필요 때문이었다고 한다. 남쪽 면이 앞 건물과 마주 보고 있어서 빛은 받아들이면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알맞게 가려야 했기 때문이다. 황두진 건축가는 이런 벽돌 구멍 벽이 한국 기후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벽돌 한 켜의 두께와 너비가 한여름 내리쬐는 햇빛은 막으면서 비스듬히 비치는 겨울 햇빛은 받아들이기에 딱 알맞은 사이즈”라는 것이다.

황 건축가는 이 건물 외에도 대학로의 ‘더 브릭스’ 등 꾸준히 벽돌 건축을 이어왔고, 현재 진행중인 15층짜리 빌딩도 표면을 벽돌로 구상중이다. 그는 “벽돌이 지닌 디지털적 특성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예전 벽돌 건축이 묵직한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건축이었다면, 작은 개체로서 벽돌이 지니는 ‘픽셀’(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최소 요소)의 측면을 디자인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벽돌 특유의 아날로그적 매력은 여전히 이어진다. “벽돌은 가장 나이를 곱게 먹는 재료라고 생각해요. 적당히 때가 타도 별로 티가 안 나고 세월의 흔적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기에 매력적입니다.”

이정훈 소장의 ‘곡선이 있는 집’. 남궁선 건축사진가 제공
이정훈 소장의 ‘곡선이 있는 집’. 남궁선 건축사진가 제공
■ 기념비 같은 벽돌 사옥, 초승달 같은 벽돌 주택 주목받는 소장파 건축사무소 중 하나인 와이즈건축(장영철·전숙희 소장)은 2012년 많은 화제를 모으며 여러 상을 받은 벽돌 건축 작품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이어 최근 서울 선릉 부근에 역시 검은색 전벽돌로 표면 전체를 처리한 ‘에이비시 사옥’을 선보였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건물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서 벽돌을 ‘기념비성’을 보여주는 재료로 썼다면, 이번 에이비시 사옥에서 벽돌은 ‘전통성’을 표현하는 소재로 선택했다. 선릉이라는 역사적 공간 옆에 있는 건물이어서 한국적인 전통을 은유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장영철 소장은 “벽돌은 요즘 그야말로 대세라고 생각한다”며 “벽돌이 평범한 재료라는 점에서 더욱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 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젊은건축가상을 받은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의 최신작 ‘곡선이 있는 집’은 벽돌 단독주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특이한 형태를 보여준다. 벽돌집이라면 수직 수평의 네모꼴 형태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집은 초승달처럼 커다란 곡선을 그리는 비정형 디자인이 파격적이다. 좁은 마당에서 승용차가 돌아나갈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곡선을 건물 디자인에 적용했고, 그 표면을 벽돌로 처리하면서 다양한 쌓기 방식을 썼다. 표면 코팅을 한 면과 하지 않은 면, 그리고 비스듬히 튀어나온 부분과 나오지 않은 부분을 대비시키면서 가장자리로 갈수록 튀어나온 각도를 다르게 해 햇빛 각도에 따라 표면 느낌이 수시로 변한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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