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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블로그] 성과 파시즘 / 마광수

등록 :2009-01-14 14:08

머리 좋기로 이름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를 지도자로 떠받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히틀러의 파시즘적 독재에는 왜 그토록 열광했던 것일까. 히틀러는 쿠데타나 폭력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인물이 아니다. 권력장악의 수단이 여론조작이었든, 감언이설이었든, 어쨌든 그는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로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한다.1차 세계대전 후 패배감과 무력감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가 민족적 긍지를 심어주고, 경제발전을 위한 긍정적 대안을 어느 정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맞는 말이다. 영웅적 카리스마로 백성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는 언제나 난세에 출현하기 마련인 법.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아무튼 히틀러는 1차대전 후의 만성적 인플레와 바이마르정부의 무기력한 통치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을 등에 업고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독재자의 출현을 단순히 사회적 혼란과 결부시키는 것은 어딘지 부족하다. 독재를 은밀하게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집단적 정서가 존재해야만 비로소 독재자는 힘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 히틀러의 집권 배경을 설명하려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에리히 프롬의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 독일의 파시즘을 가능했던 것은 히틀러가 ‘권위’를 가진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당대의 독일 국민들이 대체로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이란 사도-마조히스틱(sado-masochistic)한 심리, 다시 말해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절대적으로 복종함으로써 마조히즘적 피학(被虐)의 쾌감을 얻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가혹한 잔인성을 발휘함으로써 사디스틱한 가학(加虐)의 쾌감을 얻는 심리를 지칭한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버지의 품을 평생동안 떠나지 못하는 심약한 자식처럼 그는 ‘홀로서기’를 도모하기보다 가부장적 보호자를 요청한다. 종교적 가부장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국가, 성적 억압이 심하고 관념 우월주의가 강하게 자리잡은 국가의 국민들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기 쉽다.

나치즘이 출현하던 당시의 독일이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집권 후 히틀러가 단행한 조치들 가운데 성을 소재나 주제로 다룬 서적들에 대한 ‘분서’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따라서 그리 신기해할 만한 일은 못된다. 관념 우월주의는 극기주의나 금욕주의와 상통한다. 채식주의자 히틀러의 식성에서 이러한 금욕적 권위주의의 징후를 발견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흥미롭다.

히틀러가 숭배한 것은 국가와 민족이었다. 그러한 숭배행위는 그에게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선사했고,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그의 카리스마적 통치스타일은 역으로 사디스트적인 쾌감을 제공했다. 유사한 섬김과 가학의 구도는 그를 숭배한 국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관철되었다. 독일인들은 히틀러에 복종함으로써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유태인들을 학대하면서 사디스틱한 쾌감을 얻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이면에 자리 잡은 것은 관료주의다. 윗사람에겐 약하고 아랫사람에게 강한 것이 관료주의적 성격으로, 개성은 없지만 야심 많은 출세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다. 주체적 자아가 없는 그들은 오직 지위에 의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을 수 있는 존재들로, 이들에게 출세에 이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보스에 대한 절대 충성’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처럼 권위주의가 만연한 나라도 없다. 수구적 봉건윤리가 뿌리 깊게 잔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아무리 사회의 명시적 가치로 부상해도, 권위주의는 쉽게 사라질 줄 모른다. 예전에는 ‘군사독재’라는 명백하고 가시적인 권위주의 체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수월했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외형이 사라진 지금, 권위주의 문화를 타개할 수 있는 뾰족한 처방이란 눈에 띠지 않는다. 그저 ‘도덕성 회복’이니 ‘의식개혁’이니 하는 식의 막연한 처방만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금욕주의적 봉건윤리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강력한 아버지’의 관념에 속박된 정신편향의 봉건윤리는 자아의 상실과 성적 (性的) 억압에 따른 ‘화풀이 문화’를 가져오기 쉽다. 파시즘을 지배하는 것은 이러한 집단적 가학충동으로서의 ‘화풀이 문화’다. 파시즘과 관련하여 성의 문제는 특히 중요하다. ‘성의 해방’, ‘성에 대한 표현의 해방’은 권위적 엄숙주의의 기반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파시즘의 도래를 막는 안전판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빌헬름 라이히 역시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자연스런 성에 대한 도덕적 금지는 각 개인을 막연한 공포감에 시달리게 하면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 복종심을 길러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필자 역시 ‘성욕의 대리배설’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파시즘적 폭력에 대한 동경’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성적 사디즘과 성적 마조히즘을 대리배설시킬 수 있는 장치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약육강식의 장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심리현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학이나 가학의 정도가 지나쳐 자신이나 타인을 완전히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버리는 데 있다. 자학과 가학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적절한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는 안정되고 건강한 사회다. 이러한 차원에서 예술작품 등을 통한 ‘문화적 대리배설’을 중요한 것이다.

성과 전쟁은 서로 비슷하다. 성이나 전쟁이나, 힘 또는 폭력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투입하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자웅이 다른 두 개체가 만나 서로 엉겨붙어 상대를 탐색하고 압살하는 행위, 서로의 존재가 죽음에 의해 완전히 소멸해 버리지 않을 정도까지 지속되는 치열한 전투, 그것이 바로 성이다. 인류가 발명해 낸 극단의 스포츠인 전쟁은 따라서 성과 너무나 닮아 있다. 철저하게 동물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에서, 이데올로기나 정신의 결합 등을 명분으로 각자의 은밀한 욕정을 충족시키려드는 행위가 전쟁이요, 성인 것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생명의 원동력이 관능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조금씩 소진되어갈 때 인간의 희열을 맛본다. 그리고 그러한 전투행위 후 관능적 상상력이 환상과는 다른 밋밋한 형상으로 본 모습을 드러낼 때, 패배감과 짙은 허무감을 경험하곤 한다. 이 역시 전쟁과 성의 공통적인 속성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성은 결국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삶의 본능인 에로스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성을 통해 죽음의 본능을 대리충족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성 또는 성의 대리배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인간은 가학 본능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충족시킬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자살이나 타살, 또는 파시즘적 폭력을 바라는 집단적 소망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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