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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정치성 띤 축구경기도 ‘뷰티풀 게임’

등록 :2007-11-26 21:37

박현주/작가, 번역가
박현주/작가, 번역가
문화읽어주는여자
나는 한 번도 축구팬이었던 적이 없다. 어렸을 때 〈0번 골잡이〉 같은 만화를 재미있게 본 적도 있고, 최근에는 〈날아라 슛돌이〉에 나오는 어린이 선수를 귀여워했지만, 축구 경기 자체의 매력에는 눈뜨지 못하였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의 붉은 파도에 휩쓸려 흥분했고, 한-일전 때는 아파트 주민들과 동시에 탄성과 한숨을 맞춰가며 텔레비전 중계를 보기도 한다. 그러니 에이매치에만 반짝 관심을 가지는 관객, 오로지 우리나라라는 개념이 끼어들 때만 축구팬인 척하는 사람 정도일까.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공은 “모든 정치색을 거세해도 축구는 여전히 재미있으며, 그것이 진짜 축구다”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상영되고 있는 뮤지컬 〈뷰티풀 게임〉의 주인공 존 켈리라면 아마 이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으리라. 오로지 머릿속엔 축구밖에 들어 있지 않은 청년 존이 살고 있는 곳은 1970년대, 피의 일요일 사건을 전후한 시기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이다. 영국 신교도와의 갈등이 이어지는 시대, 존은 여자친구 메리를 따라 촛불시위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정치는 자신과 관련 없는 문제로 여긴다. 실상 〈뷰티풀 게임〉의 극 전체를 살리는 정점은 바로 축구가 댄스로 변하고, 경기장의 불빛이 무대 위에 재현되는 축구경기이다. 이 장면이 바로 이 작품을 다른 뮤지컬로부터 갈라내는 최대의 스펙터클이기도 하다. 그러나 축구의 생명력이 넘치는 1부 이후, 극은 정치역사극으로 서서히 변해간다. 2부에서 존은 정치범으로 몰리며 “축구도, 총도 바꾸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비극으로 빠져들고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서사구조를 구축한다.

이처럼 뮤지컬 〈뷰티풀 게임〉은 축구와 정치의 필연적 관계를 극화한 작품이다. 극 처음과 마지막의 합창에 등장하는 아일랜드 초록 깃발은 축구경기의 도구인 동시에 아일랜드인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러니, 이념에 무관한 삶을 살리라 주장했던 존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정치적인 전쟁터인 축구장에서 뛰며 아일랜드인과 가톨릭이라는 개념과 연대해서 싸운다. 이처럼 국가와 축구라는 필연적 연결은 경기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잉글랜드 팀보다는 아스널이 자신의 팀이라는 닉 혼비 같은 축구팬도 있지만, 홈클럽을 통해서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바르샤 서포터들도 있는 것이다.

국가간 운동경기가 모두 국제 경쟁의 축소판은 아니라며 세련된 자세를 취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나아가 춤과 노래, 소설과 영화에 국가대항전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이성적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나 문화에 있어서 탈정치화에 대한 권고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연대감에 대한 열망을 과하게 누르려 할 때 오히려 더 정치적이 된다. 축구가 역사적 비극의 배경으로 사용되고 런던발 뮤지컬에서 아일랜드공화군(IRA)이 등장하는 묘한 역설에는 쾌감과 불편함이 동시에 들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경기장과 무대는 그 바깥 세계의 구조를 재구성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열광의 대상이 된다. 모든 정치색을 거부해도 진짜 축구나 진짜 뮤지컬은 여전히 재미있겠지만, 어떤 경우는 정치색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하고 거기서 다른 층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축구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도 한국에서 공연되는 〈뷰티풀 게임〉이, 올림픽 예선이나 월드컵 경기가 놀랍고도 아름다운 게임이 될 수도 있는 이유이다.

박현주/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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