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1번지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2015년부터 선보인 세월호 기획 공연을 ‘안전 연극제’로 확장해 지난 18일 시작했다. 사진은 혜화동 1번지 8기 동인. 이성직(왼쪽부터)·박주영·조예은·박세련·허선혜 연출.
혜화동 1번지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2015년부터 선보인 세월호 기획 공연을 ‘안전 연극제’로 확장해 지난 18일 시작했다. 사진은 혜화동 1번지 8기 동인. 이성직(왼쪽부터)·박주영·조예은·박세련·허선혜 연출.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의 역설. 연극 ‘쉬는 시간’을 집필한 이양구 연출은 2014년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희생된 아이들 책상에는 추모 꽃다발이 놓여 있고, 구조된 아이들 책상은 비어 있는 광경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영감을 받아 ‘쉬는 시간’을 썼고 이듬해 무대에 올렸다. 매 교시 쉬는 시간으로 통제 시스템을 꼬집는 이 작품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연에서 이제 우리의 안전을 돌아보는 의미로 확장됐다. “학교는 세월호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삶이, 우리의 일상이 여전히 통제 구조 안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공간 같다”고 이 연출은 말했다.

혜화동 1번지의 열번째 세월호 이야기는 지난 18일 ‘쉬는 시간’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 안전망을 점검하는 ‘안전 연극제’로 돌아왔다. 혜화동 1번지는 연출 5명으로 구성된 동인 이름이자 이들이 운영하는 극장명으로, 2015년부터 매년 세월호 추모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는 세월호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재난이 이어지고 애도가 계속되는 현실을 초청작 2편과 동인 작품 5편 등 총 7편에 녹인다. 개막작 ‘쉬는 시간’(4월18~21일)과 ‘일상에서 살아남기’(5월2~5일), ‘뻐끔뻐끔’(5월8~12일),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5월16~19일), ‘가덕도를 아십니까?’(5월23~29일), ‘포비아 포비아’(6월2~9일) 그리고 초청극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속, 극’(6월14~16일)이다.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 박주영 연출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등 사건이 반복되며 일상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안전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담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이 ‘안전 연극제’를 준비하며 다녀온 세월호 추모 공간 마련을 위한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 역시 지난 10년 세월을 말해주듯 첫 삽도 뜨지 못하고 황폐한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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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1번지의 세월호 기획공연은 참사가 발생한 해에 활동하던 6기 동인이 ‘오늘의 4월16일, 2015.8’ ‘세상이 발칵’ 등 연극 8편과 단편영화 1편을 선보인 게 시작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많은 이들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때 대화의 장을 펼친 의미가 컸다. 죽음에 대한 애도에서 정부의 책임 회피를 비판하는 목소리, 나아진 게 없는 현실 등 매년 다각도로 세월호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2024년까지 계속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박주영 연출은 말했다. “세월호 공연이 계속된다는 건 어떤 것도 해결된 게 없다는 의미니까, 그게 참….”

10주기라는 가볍지 않은 숫자를 이어받은 지금의 8기 동인(박세련, 박주영, 이성직, 조예은, 허선혜)은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온 만큼 그들의 아픔이 단지 반복되고 소비되지 않도록 재연의 방법론, 창작 윤리 등을 특히 곱씹었다. ‘뻐끔뻐끔’ 조예은 연출은 “세월호 공연을 준비하면서 ‘대상화’는 가장 큰 화두였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왜 해야 하느냐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중요했다”고 했다. 진상 규명, 정부 책임 촉구를 넘어 우리는 기억하고 계속 말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가덕도를 아십니까’ 이성직 연출은 “부조리에, 피해에 목소리를 내는 이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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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쉬는 시간’. 혜화동 1번지 제공
개막작 ‘쉬는 시간’. 혜화동 1번지 제공
2015년 1회 ‘세월호’(왼쪽)와 2024년 ‘안전 연극제’ 포스터. 혜화동 1번지 제공
2015년 1회 ‘세월호’(왼쪽)와 2024년 ‘안전 연극제’ 포스터. 혜화동 1번지 제공

이들이 세월호를 지켜온 마음은 연극을 향한 마음과 맞닿아 있다. 혜화동 1번지는 연극의 희망찬 미래를 도모하며 1993년 시작해 30년간 지속하고 있는 흔치 않은 자발적·독립적 예술가 성장 프로젝트다. 극단 운영 등 각자 활동하는 연출가들이 혜화동 1번지를 거점으로 연대해 작품을 만들고 극장을 운영한다. 4년 주기로 직전 기수가 다음 기수를 지정하고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만큼, 쉽게 합류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지금껏 김광보, 박근형, 이성열, 이양구, 김재엽 등 연극판을 탄탄하고 올곧게 만든 이들이 거쳐 갔다. ‘일상에서 살아남기’ 박세련 연출은 “젊은 연극인들이 4년 동안은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하면서 실험과 경험을 통해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혜화동 1번지”라고 했다. 이성직 연출은 “극장을 직접 운영해보면 연출가로서 시각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8기 동인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모두 “‘제가요?’ 반문했다”고 한다. ‘포비아 포비아’ 허선혜 연출은 “하지만 누군가 내 작품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뻤다”고 했다. 모두 차세대 연출가로 주목받는 이들이다. 박세련 연출은 영상을 연극과 접목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허선혜·이성직 연출은 일상적인 문제에서 멀리 내다보는 뼈 때리는 메시지를 잘 전달한다. 조예은 연출은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박주영 연출은 지난 1월 60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했다. 8기 동인들은 “연습장처럼 작은 단위의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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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1번지도 시대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연극판이 힘들어지면서 8기 동인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고민과 함께 현실적인 수익에도 신경써야 한다. 혜화동 1번지 극장 보증금은 기수 대대로 이어지지만 월세는 해당 기수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관객도 줄어드는데 매년 축제 지원사업에 선정됐던 세월호 기획공연이 이번에는 뚜렷한 이유 없이 떨어지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더해졌다. ‘안전 연극제’는 사비를 털고 후원금을 받아서 열었다.

그러나 연극을 향한 마음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박세련 연출은 “연극으로 곳곳에 사랑을 전파하고 싶다”고 했고, 박주영 연출은 “희망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들이 어려움 속에서 지켜온 세월호 공연에서도, 30년 닦아온 연극 터전에서도 사랑과 희망은 꽃피고 있다.

‘안전 연극제’ 동인 제작 5편

■ 일상에서 살아남기(5월2~5일) 이동형 연극으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나의 살아남기를 모색한다.
■ 뻐끔뻐끔(5월8~12일) 좁은 어항 속 두마리 물고기를 보며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을 재고한다.
■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5월16~19일) 어쩌면 아무도 모를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 가덕도를 아십니까?(5월23~29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문제를 이야기하며 기후위기 시대 불안한 미래를 경고한다.
■ 포비아 포비아(6월2~9일) 공포증이 있는 존재를 통해 진실은 가려진 채로 사건이 반복되는 우리 사회 모습을 들여다본다.

​글∙사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