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온세뉴’(온 세상이 뉴진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난 7월에 나온 미니 2집 ‘겟업’(Get Up)은 역대 케이팝 그룹 가운데 데뷔 이후 최단 기간 만에 ‘빌보드 200’ 1위에 올랐고, 타이틀곡 3곡이 동시에 ‘핫 100’에 진입했다. 일본에선 뉴진스에 열광하는 중년 남성을 일컫는 ‘뉴진스 아저씨’라는 말이 이슈로 떠올랐다. 데뷔 1년차 신인 그룹 뉴진스 ‘현상’을 대중음악평론가 임희윤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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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기도 뉴진스, 저기도 뉴진스다. 코카콜라 제로를 들더니 아이폰을 들고 이제 빼빼로까지 들었다. 뉴진스가 광고 모델로 활약하거나 협업 콘텐츠를 찍은 제품들이다. 국내 각종 음악 차트를 휩쓸더니 지난달에는 미국 시카고 롤러팔루자 페스티벌과 일본 지바현 서머소닉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2022년 7월22일 데뷔. 이제 겨우 ‘돌’이 좀 지난 신인 그룹이 한국 시장을 접수하고 세계 음악시장에서 포효하는 비결은 뭘까. 예쁜 외모, 힙한 패션, 중독성 있는 안무는 여기선 차치하자. 더더군다나 뉴진스 신드롬을 추동하는 핵심 엔진은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귀를 기울여야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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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부터 다르다. 굳이 장르 이름을 지어 설명을 돕자면 ‘레프트필드 하우스 팝’의 수작들이다. 기존의 하우스 뮤직에서 어딘지 엇나간(레프트필드) 지점들을 뉴진스는 가장 팝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저지 클럽, 유케이(UK) 개러지, 파벨라 펑크 같은 국외 서브컬처 장르의 클리셰가 곳곳에 엄존하지만 이를 다른 방식으로 다른 소재들과 섞었다. 이를테면 저지 클럽과 파벨라 펑크는 각각 미국 뉴저지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작은 클럽에서 발전한 장르로서 거칠고 공격적인 비트가 특징적이다. 하지만 뉴진스의 힘 빼고 부르는 귀여운 보컬과 이율배반적으로 합쳐지면 이상하고 아름다운 진풍경을 펼쳐낸다.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그간 케이(K)팝은 시각은 물론 청각과 메시지에서도 ‘마라맛’으로 승부했다. 뉴진스의 동시대 걸그룹인 (여자)아이들, 아이브, 에스파, 르세라핌, 블랙핑크 등만 돌아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거 봐, 내가 최고잖아, 너도 부럽잖아’ 같은 메시지를 밑도 끝도 없이 데뷔 초부터 들고 나왔다. 201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걸그룹에서 ‘큐트’나 ‘섹시’는 부차적 요소가 됐다. ‘걸크러시’야말로 4세대 케이팝 걸그룹의 핵심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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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뉴진스는 이 시점에 ‘마라맛’ 대신 ‘버터맛’을 내밀었다. 매우 수줍은 태도(‘슈퍼 샤이’), 뭔가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큰일 났어, 너 언제 와’(‘ETA’)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런 모호한 메시지는 몽롱한 악곡을 만나 묘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뉴진스 데뷔에 즈음해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정반합’ 이론을 이야기했는데 이제야 그 퍼즐이 음악적으로도 풀린다.

뉴진스의 음악에서는 메시지보다 바이브(분위기·느낌)가 더 긴요하다. 이를테면 ‘어느 깊은 밤 길을 잃어도/ 차라리 날아올라 그럼 네가/ 지나가는 대로 길이거든’(아이브 ‘아이 엠’) 하고 한수 가르치듯 전하는 벅찬 메시지는 뉴진스 음악에 없다. ‘혜진이가 엄청 혼났던 그날/ 지원이가 여친이랑 헤어진 그날’(‘ETA’) 같은 1인칭 일기식 ‘쇼트폼’ 감상이 있을 뿐이다. 10~20대의 성장·성공 욕망을 자극하는 대신 그저 내 친구가 내 일상 같은 이야기를 덤덤히 전달한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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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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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조차 맥없다.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클라이맥스는 없다. 그 대신 멜로디 라인은 한소절 한소절이 독창적이고 아름답다. 반복되는 선율의 매력이 가히 시적이다. 압축적 미감이다. 랩도 1990년대 댄스 가요풍 랩에 가깝다. 흐느적대는 듯하지만 은근히 잘 계산된 가창이 그 감성을 찰떡같이 표현한다.

이는 뉴진스가 구축한 ‘미드텐션’의 세계를 완성한다. 뉴진스는 케이팝의 특징으로 지목되던 ‘하이텐션’(고밀도·고긴장)의 세계를 뒤집는다. 초 단위의 고자극으로 시청각을 교란하는 쇼트폼 콘텐츠의 홍수에 피로감을 느낀 젊은 세대에게, 뉴진스의 나른한 음악은 댄스클럽의 ‘칠 아웃 룸’처럼 기능했다. 슬로 템포나 미디엄 템포의 몽환적인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쉴 수 있는 클럽 대기실 말이다.

보컬은 귀엽지만 비트는 사납다. 보컬은 간지럽게 속삭이듯 부드럽지만 비트는 몹시 사납게 꿈틀대는, 중간 지대의 음악이 뉴진스 뮤직의 핵심이다. 몽환성과 청량감의 이율배반이 곡마다 낯설고 신선하게 조합된다.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케이팝 세계는 그동안 영미권 팝의 안티테제(반)로 지구촌의 조명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어느새 케이팝적 특성은 또 다른 공식(정)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래서 뉴진스의 혁명(반)에 주목할 만하다. 케이팝이 정점을 찍은 직후에 시작됐기에 이 흐름은 더 의미심장하다. 혁명의 수단이 자극을 뛰어넘는 더한 고자극이나 극단이 아니라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무기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그러하다. 그들의 솜털 같은 강펀치에 케이팝계는 휘청댔다. 늘 자판 위에 있었지만 모두 잊고 있던 ‘새로고침’ 버튼을 뉴진스가 눌렀고 케이팝의 모든 페이지는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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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멤버 개개인의 음악적 역량이나 색깔이 덜 드러나는 부분은 아쉽다. 이들의 음악을 얘기할 때 멤버들보다 오히려 제작자 민희진, 또는 프로듀서 250의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된다. 아직 데뷔 초기이므로 이 부분은 차차 보완될 수 있으리라 본다.

뉴진스의 음악과 메시지는 다르다. 하지만 다른 그룹들이 가진 중독적인 안무, 예쁜 외모 같은 특징도 겸비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걸그룹과 공존하며 중장기적으로 계속해 성공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뉴진스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다름 아닌 ‘다름’, 그 자체이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