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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팩스 해고’ 당한 한국 노동자에…일본 연대자가 외친 ‘이 말’

등록 :2022-08-05 19:00수정 :2022-08-06 01:24

[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첫사랑-1989, 수미다의 기억
한국 노동자·일본 연대자 삶을 바꾼 투쟁의 시간

1989년 일본 수미다 전기 자회사는 한국의 공장에 팩스 한 장을 보내 450명 해고를 통보한다. 이에 분노한 정현숙, 박성희, 정순례, 김순미 등 노동조합 간부 4명은 8개월에 걸친 일본 수미다 본사 앞 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열정적인 투쟁에 연대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일본인들이 있었다. <첫사랑-1989, 수미다의 기억>(박정숙, 2010)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일어났던 수미다 원정투쟁의 주인공들과 당시 연대했던 일본인들의 우정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20여년 만에 이루어진 수미다 투쟁을 기억하는 일본 모임으로 시작된다. 일본인 연대자들은 조금 어색한 발음이지만 “살인적인 집단해고 온몸으로 거부한다!”고 한국어 구호를 외치고 ‘아침이슬’을 부른다. 참석한 성희씨를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얼굴들에서 20년 전 시간의 끈끈함이 단숨에 연상된다.

원정투쟁단이 투쟁을 시작했을 때, 일본 자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회사는 이들의 비자 만료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었다. 교섭 현장에서도 분노에 찬 조합원들에게 ‘가와이’(귀엽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투쟁을 무시하거나 희화화했다. 결국 노조원들은 두차례에 걸친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들의 끈질긴 투쟁에 감화해 대학생, 지역사회 활동가, 노동계 인사들이 집회에 모였고, 종교계도 동조 단식을 했다. 한 통역자는 교섭 당시 현숙씨가 혼잣말로 내가 떨어져 죽어야 되는 거냐고 중얼거리자 혹시 모를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밤새 곁을 지킨다. 이렇게 든든한 일본 시민사회의 연대는 자회사의 사과를 이끌어내고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카메라는 일본 연대자들이 수미다 조합원들의 투쟁구호와 민중가요, 춤 등을 따라하거나 배우는 장면을 종종 보여준다. 노래와 춤은 이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였다. 노래와 춤이 있는 투쟁,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싸우는 한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다. 투쟁이 마무리되는 순간 이들은 수미다 노조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일본 자본주의를 성찰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세우고 있는 현재 한국의 약탈적 자본주의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투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조합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회사에 취직하기 어려웠던 탓에 또 다른 삶의 여정을 걷게 된다. 이들은 현재 노조 간부로, 다른 업계의 노동자로,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여전히 삶은 고군분투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우는 기준으로 작동했다. 연대자들은 오키나와 평화 행진에 참여하는 등 투쟁이 필요한 곳에 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감독은 투쟁에 참여했던 모두가 삶의 고비나 어려운 국면에서 그 시기를 단순히 추억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의 원천으로 삼고 있음을 조망한다. 그렇게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수미다 투쟁에 연대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납득된다. 그리고 영화는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연결 지점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연대자들의 헌신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도 역설한다. 영화의 울림을 지금 우리 현실에 대입하면,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의 단식투쟁 같은 현장에 연대의 움직임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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