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나의 해방일지>(JTBC)는 방영 내내 2%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6%대 시청률을 기록한 건 후반부터였다. 시작부터 끓어오른 드라마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내 소셜미디어는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추앙으로 가득했다. 소셜미디어란 그런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인 당신의 소셜미디어는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환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투표 결과가 나온 순간 당신은 깨달았을 것이다. 같은 정치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확증편향이 주는 안락한 거품 속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말이다. 슬프지만 어쩔 도리 없다. 세상은 원래 내 마음, 아니 내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처럼 굴러가는 게 아니다.

나는 <나의 해방일지>가 걸작이라고 추앙할 생각은 없다. 만약 당신이 박해영 작가의 오랜 팬이었다면 <나의 아저씨>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나도 안다. <나의 아저씨>는 충성스러운 팬만큼이나 보지도 않은 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드라마다. 그러나 문학가 파울루 코엘류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찬사를 나는 굳이 다시 한번 게으르게 인용할 참이다. “인간의 심리를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굉장한 각본, 판타스틱한 연출, 최고의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드라마 후반부에는 이지은만 나오면 눈물이 흘렀다”고 말하며 한국 영화 <브로커>에 이지은(아이유)을 캐스팅했다.

<나의 아저씨>에서 드러난 박해영 작가의 장기는 분명하다. 그는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박박 긁던 순간에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데 재능이 있다. 그건 코엘류나 히로카즈처럼 전혀 다른 문화적 대륙에 사는 예술가들이 동시에 감응할 수 있는 재능이다. 다들 로맨틱 코미디로 생각하며 봤던 <또 오해영>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그 드라마는 코미디와 미스터리와 멜로 등 온갖 장르가 얽힌 일종의 심리 성장물이었다. 그러니 <나의 해방일지>에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그 기대는 충족됐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 기대를 넘어섰는가? 나는 감히 그렇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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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는 뒤로 갈수록 당신의 예측과 엇나가기 시작한다. 박해영 작가는 서두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들이 빠르게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해 매회 치는 양념도 없다. <나의 아저씨>보다 더 천천히 우울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향하며 급전환된다. 특히 마지막 4화는 이야기의 소용돌이다. 구씨는 호스트바 선수 출신 클럽 운영자다. 변두리에 사는 삼남매의 외로움을 그리는 전원 멜로드라마에 세속적이고 장르적인 ‘조폭물’을 노골적으로 끼얹는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토록 급진적인 장르의 균열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재미있게도 박해영 작가는 균열을 전혀 부드럽게 봉합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나의 해방일지>의 불균질한 매력이 터져 나온다. <나의 아저씨> 역시 일종의 기업 스릴러 같은 데가 있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박해영 작가는 장르물을 해체해서 한국 드라마의 세계 속에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세요’라는 호기로운 태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를 충돌시켜버린다. 전혀 다른 드라마에서 기어 나온 것 같은 인물들이 한 드라마 속에서 부딪히며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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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나의 해방일지>는 익숙한 구원의 서사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주인공들은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완벽하게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을 통해 아주 조금 달라질 뿐이다. 이를테면 <나의 해방일지>에는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자잘한 일상의 적(敵)이 가득하다. 보통의 한국 드라마와는 달리 그들은 윤리적으로 처단받지 않는다. 회개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아마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똑같은 흠 많은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염씨네 가족과 구씨도 우리가 기대했던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갑자기 죽는다. 누군가는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누군가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직업을 꿈꾸기 시작한다. 거기서 드라마는 우리 삶에 완벽한 해피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홀연히 끝난다. 삶은 왕복 10차선 강남대로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굽이와 배가 터져 죽은 개구리 사체로 가득한 산포시의 시골길에 더 가깝다고 말하면서. 그러니까 당신은 이미 끝난 이 드라마를 굳이 챙겨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걸작이 아니다. 걸작이라는 단어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김도훈 작가 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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