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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가사노동에 임금 주면 ‘집에서 논다’ 조롱 사라질까

등록 :2022-05-14 18:02수정 :2022-05-14 21:44

[한겨레S]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가족의 삶을 유지하는 여성의 노동

‘네덜란드 집…’ 속 청소하는 하녀
경건하고 기품있게 그려지지만
산업화 이후 여성의 ‘공짜 일’ 이어
제3세계 여성에게 전가된 가사노동
피터르 얀선, <네덜란드 집의 내부>, 1668~1672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피터르 얀선, <네덜란드 집의 내부>, 1668~1672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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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런던, 해나 컬윅이라는 하녀가 있었다. 21살이던 1854년 어느 날, 컬윅은 중산층 변호사였던 아서 먼비를 우연히 만났고, 이후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둘의 관계는 좀 독특했다. 컬윅의 사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데, 사진 속 컬윅은 어떨 땐 남자로 분장한 굴뚝 청소부였고, 어떨 때는 목에 자물쇠를 건 노예였다. 다른 사진에서는 우아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숙녀였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머리를 깎고 넥타이를 맨 신사였다. 그러니까 컬윅과 먼비는 코스튬플레이(소설이나 영화 속 등장인물을 모방한 차림으로 자신을 연극적으로 연출하는 행위) 파트너이기도 했던 것이다. 체면도 상관없이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그들은, 하지만 바로 결혼하지는 않았다. 만난 지 19년이 지난 1873년에야 결혼했다. 계급 차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먼비가 컬윅에게 결혼하자고 요구했지만, 컬윅 쪽에서 단호히 거절했다. 보통의 하녀라면 부유한 변호사의 아내가 될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생명의 파수꾼이냐, 가사노예냐

여기, 컬윅이 했을 법한 일을 하는 여성이 있다. 피터르 얀선(1623~1682)의 그림 <네덜란드 집의 내부>에는 청소에 집중하는 하녀가 나온다. 창을 통해 들어온 무심한 햇빛 속에서 그녀는 등을 돌린 채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있다. 그녀의 손길은 사뭇 경건하고 진지해 보이는데, 마치 조명이 켜진 무대에서 배우가 담담히 그러나 기품 있게 자신의 역할을 펼치는 듯하다. 이 여성의 손끝에서 식구들 몸의 살과 피가 될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외부의 오염원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던 옷이 다시 깨끗해질 것이고, 몸이 머물 공간의 더러운 먼지와 잡동사니가 쓸려갈 것이다. 하녀가 하는 가사노동이 숭고하게까지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여성은 식구들의 삶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생명의 파수꾼’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실제 처지는 가사노예와 비슷했다. 잡다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동시에 육아도 해야 했고, 관례상 그릇을 깨트리거나 빨래를 하다 옷이나 시트 등을 손상하면 오히려 제 돈을 주고 변상해야 했다. 이런 열악한 처우에도 하녀는 적게나마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노동을 아내가 할 경우는 어떨까. 이마저도 받지 못한다. 컬윅이 먼비의 청혼을 거절한 건 이런 연유였다. 결혼하게 되면, 가사노동은 똑같이 하면서 돈은 못 받는 처지가 되리라는 걸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컬윅은 자신의 직업을 버리지 않고 일하면서 먼비로부터 지속적으로 임금을 받았고, 그 덕분에 자기 소유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결혼이란 ‘무보수 노동 계약’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피터르 얀선이 <네덜란드 집의 내부>를 그렸던 17세기부터 해나 컬윅이 살았던 19세기를 거쳐 우리가 사는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이다. 가사노동은 남성들의 임노동처럼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저평가된 노동’이다. 돌봄을 포함한 가사노동은 ‘여성의 본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당연히 여성 몫이 되었고, 본능의 발로에서 하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래서 하녀들은 최저수준의 임금을 받았으며, 이 일을 아내가 하면 아예 공짜 노동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여성들은 가정에 갇혀 ‘가사노동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오해와 달리, 애초에는 ‘남자들의 일’과 ‘여자들의 일’이 따로 있지 않았다. 밭에서, 상점에서, 그들의 가정에서 여자들은 늘 일했고,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일하느라 바빴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빵이나 정육점 운영은 전통적으로 여자의 직업이었다. 해당 직업을 가진 아내가 아기를 낳아 젖을 먹이게 되면 가정의 경제 상황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래서 남편은 자식을 아예 유모의 집에 보내버리곤 했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일꾼을 고용하는 것보다 유모를 고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최후의 식민지

그런데 19세기 산업화가 시작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독일 사회학자 마리아 미스의 책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남성과 여성을 갈라쳐 남성에게 가족임금을 벌어오는 노동자 역할을 맡기고, 여성에겐 혹사당한 남성 노동자를 입히고 먹이고 재워 멀쩡히 일터로 출근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노동력 재생산’의 역할을 맡겼다. 미스는 이를 ‘여성의 가정주부화’라고 부르며 여성의 이러한 ‘재생산 노동’은 무보수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력 재생산의 부담을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추가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그간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끈질기게 권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체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는 여성이 무료로 해주는 가사·돌봄 노동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해나 컬윅 같은 여성이 많다. 임금노동에 대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사회로 물밀듯 진출 중이다. 하지만 이때도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아내가 임금노동을 하면 가사노동을 덜 할 수 있을까? <아내 가뭄>의 저자 애너벨 크랩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현대의 일하는 엄마들 다수에게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한 군데가 아니라 두 군데에서 자신을 혹사시키는 영광을 부여받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9년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남편은 하루 평균 54분간 가사노동을 한 반면, 아내는 3시간7분이나 했다. 그렇다면 이런 2교대 중노동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흔히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재중동포 등 또 다른 여성에게 가사노동을 위탁한다. 자본가가 가정의 아내에게 ‘전가’한 일이, 제3세계의 가난한 여성들에게 다시 ‘전가’되는 셈이다. 그것도 최저수준의 임금을 주고 말이다. 이는 더욱더 가사노동이 평가절하되는 이유가 된다.

‘여성은 최후의 식민지’라는 말이 있다. 자국과 제3세계를 가리지 않고 여성의 가사·돌봄 능력을 값싸게 이용하는 자본주의 가부장 사회를 보면 저절로 이 말에 동의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사노동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이에 <혁명의 영점>의 저자 실비아 페데리치는 국가가 여성의 무상노동으로 생산비용을 크게 절감해왔던 자본에 세금을 거둬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불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전업주부에게 가해졌던 ‘집에서 놀면 뭐 하니’라는 악의적인 조롱만큼은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그림을 매개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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