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문화일반

청와대 뒤엔 통일신라 석조불상이…반갑다, 문화유산!

등록 :2022-05-11 04:59수정 :2022-05-11 10:18

정자 ‘오운정’의 편액글씨 눈길
침류정·아름다운 녹지원도 반겨
조선 말기 수궁터엔 절병통 놓여
청와대 경내가 전면개방된 10일 오후 관저 위쪽의 작은 정자 안에 봉안된 통일신라 석조불상을 친견하러 온 불자들이 불상 앞에서 합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다가 1913년 조선 초대총독 테라우치가 수중에 넣어 경성(서울) 왜성대의 옛 총독부 관저로 가져왔고 1939년 지금의 청와대 관저가 건립될 때 함께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노형석 기자
청와대 경내가 전면개방된 10일 오후 관저 위쪽의 작은 정자 안에 봉안된 통일신라 석조불상을 친견하러 온 불자들이 불상 앞에서 합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다가 1913년 조선 초대총독 테라우치가 수중에 넣어 경성(서울) 왜성대의 옛 총독부 관저로 가져왔고 1939년 지금의 청와대 관저가 건립될 때 함께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노형석 기자

경주 석굴암 큰 불상을 닮았다고? 실제로 보니 훨씬 순박한 얼굴의 돌부처상이었다.

청와대가 전면 개방된 10일 관저 뒤쪽의 백악산 기슭 정자에 30년 이상 앉아있는 신라 불상을 처음 만났다. 그 불상은 서울 남산 아래 도심 거리에 온통 눈길을 쏟고 있었다. 부처의 눈 아래로 멀리 관악산의 화기 넘치는 산세를 배경으로 야트막한 남산과 세종로·태평로 도심 거리와 빌딩 숲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경복궁 광화문과 흥례문, 근정전 전각이 하나의 직선 축으로 연속되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그 풍경을 부처상 바로 밑 지점에서 갈무리하는 정점이 바로 청와대 관저의 넓고 푸른 지붕이었다. 과연 청와대 이름에 걸맞은 푸른 기와의 집이었다.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는 불상의 뒷모습. 노형석 기자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는 불상의 뒷모습. 노형석 기자

청와대 정문이 활짝 열린 10일 낮 본관 건물을 지나 경내 북동쪽에 자리한 관저 위쪽으로 올라갔다. 백악산 기슭 작은 정자에 봉안된 통일신라 석조불상을 우선 친견하는 길이다. 관객들이 불상 앞에서 합장하며 인사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최고 권부의 위쪽에 통일신라 불상이 있어 신기하고 신비스럽다”는 반응이다. 60~70도의 가파른 경사길이 서너번 굽이치는 코스라 숨이 찰 정도로 힘들었다.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다가 1913년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가 수중에 넣어 경성(서울) 왜성대의 옛 총독부 관저로 가져왔고 1939년 경무대(청와대) 관저가 건립될 때 다시 옮겨진 뒤 80년대 말 지금 전각 자리에 안치됐다. 9세기께의 이 불상은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인 살진 얼굴과 양쪽의 눈사위를 약간 추켜올린 것이 특징적인데, 학계에선 ‘미남불'로 부르는 이도 있으나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다. 높이 108㎝, 어깨너비 54.5㎝로 당당하면서 위압적이지 않은 풍모다. 불상 전각을 보러 올라가는 길 어귀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는 정자 ‘오운정’의 교교한 편액 글씨가 눈길을 붙잡는다. 내려온 관저 부근 암벽에는 ‘天下第一福地(천하제일복지)’라는 새김글씨가 남아있어 이곳 일대가 풍수적인 명당이나 길지로 여겨졌음을 일러주었다.

1993년 헐린 옛 청와대 관저(조선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 원래는 경복궁 북문 신무문을 수비하던 병사들의 거처인 수궁이 있었다. 헐어낸 자리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 언덕처럼 만들고 옛 관저의 마지막 잔해인 지붕 위 꼭지장식인 절병통을 놓았다. 이 절병통은 현재 청와대 경내에서 유일한 근대 건축물의 흔적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1993년 헐린 옛 청와대 관저(조선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 원래는 경복궁 북문 신무문을 수비하던 병사들의 거처인 수궁이 있었다. 헐어낸 자리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 언덕처럼 만들고 옛 관저의 마지막 잔해인 지붕 위 꼭지장식인 절병통을 놓았다. 이 절병통은 현재 청와대 경내에서 유일한 근대 건축물의 흔적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불상 전각을 찾아 올라가는 난간길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 광경. 관저의 푸른 기와지붕 너머로 경복궁 근정전, 광화문 전각과 세종로 빌딩 숲이 한눈에 펼쳐진다. 노형석 기자
불상 전각을 찾아 올라가는 난간길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 광경. 관저의 푸른 기와지붕 너머로 경복궁 근정전, 광화문 전각과 세종로 빌딩 숲이 한눈에 펼쳐진다. 노형석 기자

청와대 문화유산 답사길은 관저 아래에서 서남 방향의 본관 쪽과 동남 방향의 춘추관 쪽으로 갈린다. 먼저 본관으로 가는 통로 사이에 봉긋한 언덕이 있다. 1939년 지어져 54년 만인 1993년 헐린 옛 청와대 관저(조선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다. 원래는 조선 말기 경복궁 북문 신무문을 지키던 병사들의 거처인 수궁이 있었다. 철거 뒤 헐어낸 자리에 흙을 두툼하게 덮어 언덕처럼 만들고 옛 관저의 마지막 잔해인 지붕 위 꼭지 장식인 절병통을 그 위에 놓았다. 이 절병통은 청와대 경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근대 건축물 흔적이다. 추정 나이 740살로 청와대 안 자연유산 중 최고 어른 격인 수궁터 주목도 살갑게 다가왔다. 13세기 고려 충렬왕 치세에 싹 틔워 700년 이상 생장해온 청와대 역사의 산증인이다.

관저 근처의 침류정. 1920년대 지은 한옥 건물로 추정된다.노형석 기자
관저 근처의 침류정. 1920년대 지은 한옥 건물로 추정된다.노형석 기자

춘추관 방향으로 내려가면 길 왼편에 1920년대 지은 한옥 건물로 추정할 뿐 구체적인 건립 내력을 모르는 침류정이 있다. 좀 더 내려가면 오른쪽에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공간이라는 녹지원과 1983년 청와대 최초로 지은 한옥 영빈관 상춘재가 있다. 두 장소 사이엔 19세기 말 과거를 보았던 장소인 융문당과 무인들이 활을 쏘고 무예를 닦았던 터인 융무당이 있었다. 현재는 잔디에 덮여 건물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두 전각 건물들은 타향살이 중이다. 1928년 뜯겨 서울 용산 일본 사찰에 이건됐다가 해방 직후인 1946년 사찰을 인수한 원불교단이 전남 영광으로 다시 옮겨 기념관 등으로 쓰고 있다.

춘추관에 내려와 절감했다. 불상과 절병통, 새김글씨 등을 빼면 뚜렷하게 느낌이 오는 문화유산의 실체적 흔적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오운정, 침류각 같은 전각들은 지난 1989년 관저 신축 당시 해체·이전돼 고유한 장소성을 잃었다. 11세기 고려 왕조의 문종이 남경 이궁을 설치하면서 유래한 청와대 권역의 과거 실상을 발굴 조사와 정비로 새로이 드러내고 정비해야 할 역사적 당위성은 더욱 커졌다. 관리 기관으로 위임된 문화재청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진실을 후원해주세요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기사를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거둡니다.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깐느 박’찬욱 “송강호와 따로 온 덕분에 같이 상 받았다” 1.

‘깐느 박’찬욱 “송강호와 따로 온 덕분에 같이 상 받았다”

영화인생 정점 맞은 송강호…한국영화 르네상스 이끈 주인공 2.

영화인생 정점 맞은 송강호…한국영화 르네상스 이끈 주인공

“산포 사는 아줌마 데려온 것 같다는 말 듣고 싶었다” [이경성 인터뷰] 3.

“산포 사는 아줌마 데려온 것 같다는 말 듣고 싶었다” [이경성 인터뷰]

강동원 “이래서 ‘칸’ 하는구나!” 끊이지 않았던 박수 4.

강동원 “이래서 ‘칸’ 하는구나!” 끊이지 않았던 박수

여성·남자 중 양자택일? 인터섹스 그대로도 괜찮아 5.

여성·남자 중 양자택일? 인터섹스 그대로도 괜찮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Weconomy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더나은사회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