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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신의 심판’ 빙자해 인간사회 지배…어디가 ‘지옥’인가

등록 :2021-11-26 19:45수정 :2021-11-26 21:38

황진미의 TV 새로고침_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부산행>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6부작이다. 웹툰 <지옥>(2019)이 원작인데, 연상호 감독의 스토리에 최규석 만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웹툰이 완결되기도 전에 드라마 제작이 결정될 만큼, 내용이 파격적이다. 누군가에게 지옥행이 예고되고, 거대한 저승사자들이 들이닥쳐 그를 때려죽이고 불태운다. 이 설정의 기원은 2003년으로 올라간다. 연상호 감독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10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 part01>이 원조다.

드라마는 이질적인 질감이 결합되어 있다. 신적 폭력이 자행되는 장면은 마블 영화의 그래픽처럼 판타스틱하다. 드라마는 이들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모른다’이며, 드라마는 ‘모름’에 직면한 인간 사회의 반응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사회는 급속히 혼돈에 빠져드는데, 이성이 마비된 인간들의 광기가 극의 포인트다.

재난의 공포에서 적대와 혐오에 빠져들고, 응축된 불안의 에너지가 선동에 의해 광신으로 쏠리는 사회학적 고찰을 담는다는 점에서, 영화 <미스트>가 떠오른다. <미스트>가 안개로 단절된 마트  안을 그린 압축 판본이라면, <지옥>은 동일한 문제의식을 확장된 시공간 속에 펼쳐낸 판본이라 할만하다.

<지옥>은 표면적으로 보면 황당한 설정에서 출발하는데다, 기시감 돋는 화면으로 신상털기와 홍위병이 설치는 사회를 풍자한 세태극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옥>의 플롯과 알레고리는 그리 얄팍하지 않다. 드라마는 몇개의 반전과 변곡점을 거치며 묵직한 신학적, 사회학적 주제 의식을 풀어놓는다.

무지막지한 현상에 관해 설명을 내놓은 유일한 인물이 정진수(유아인)다. 그는 10년 전부터 사례를 수집해오며, 그것은 죄인의 단죄를 통해 인간에게 정의롭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신의 ‘시연’이라 설명한다. 드라마는 초반에 정진수의 논리에 힘을 싣는다. 스펙터클한 ‘시연’ 장면과 죄를 짓고도 단죄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분노는 천벌의 논리를 믿고 싶게 만든다. ‘지옥이 두려워 선을 행한다면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은 없는 것인가?’ 라는 형사의 질문에 정진수는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인간을 선하게 만드느냐”며 반문한다. 그것은 공포 속에서 선하게 살았던 체험에서 나온 실존적 인간관이다. 정진수는 지옥행 ‘고지’와 죄가 무관하다는 것을 안다. 다만 ‘설명할 수 없음’이 초래할 혼돈과 공포로부터 인류를 구하고자,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이유를 인간들에게 주기 위해 혼동된 신의 메시지를 조작하고 은폐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하지만 그의 고뇌에 찬 ‘선의’는 새진리회와 화살촉을 거치면서 매우 다르게 작동한다. 죄인을 색출하고 회개를 강요한다. 본래 종교적인 죄(sin)와 사회적인 범죄(crime)는 다른 개념이지만, 새진리회는 이를 일치시키며 혼용한다. 기독교의 ‘원죄’나 ‘마음으로 짓는 죄’ 따위를 버리고, 누구나 동의할 만한 죄의 행위로 한정하며 이를 감시하고 응징한다. 작은 죄라도 낱낱이 공개되고 단죄되는 사회는 정의사회일까. 그렇지 않다. 한동안 법이 정의를 실현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자력구제를 비롯해 법 테두리 바깥에서 악인을 처단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상상을 담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힘을 얻고 극단화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드라마는 매우 잘 보여준다. 법 바깥의 정의를 갈구하면 ‘신의 이름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신정독재 국가’가 들어선다. 지옥의 향연이다.

드라마는 이 지옥도에서 벗어나려는 인간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일식이나 자연재해도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하며 죄인과 속죄의 제물을 찾아왔던 인류역사를 환기시킨다. 즉 일련의 사태는 일종의 재난이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의 심판’이라는 단 하나의 해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설령 그것이 신의 행위라 할지라도, 그 신은 인간을 위한 신이 아니라는 선언과 함께, 이들은 신학과 분리된 ‘인간의 윤리’를 찾는다.

신생아가 지옥행 고지를 받은 사건은 심판과 악행이 무관함을 밝히는 결정적 단초다.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신의 관점에서) 원죄 없이 태어난 예수의 탄생과 죽음 및 부활이 구약의 세계에서 신약의 세계로 건너오는 결정적 계기였듯이, (인간의 관점에서) 죄 없는 아기의 심판과 인간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건은 신학의 세계에서 인간 윤리의 세계로 건너오는 결정적인 계기다.

요컨대 아기의 생존은 인간의 윤리로 신의 심판을 이긴 증거다. 인간이 할 일은 신의 심판을 무기력하게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하고, 도망치는 이들을 돕는 것이다. 민혜진(김현주)이 아기를 안고 나가는 장면은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명장면만큼 성스럽다. <미스트>의 교훈이 ‘죽음의 공포로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마라’였듯이, <지옥>의 교훈은 ‘세계의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인간의 윤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희한한 방식으로 종말을 보여준다. 박정자의 시연 다음날 도로에 사람 하나 없는 광경은 어떤 아포칼립스 영화 속 장면보다 아찔하다. 물리적인 세계는 그대로이나,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이성 중심의 가치관이 붕괴된 ‘종말’을 맞은 것이다. 드라마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첫째는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해 ‘의도’에 방점을 찍으면서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이 해석을 독점하려 들고, ‘선한 영향력’이라는 도덕적 어휘를 특정 정치 세력이 전유하며, 법을 초월한 ‘착한 독재’의 출현을 앙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온갖 근본주의가 난무하는 탈근대의 시기를 차갑게 성찰하게 한다. 둘째는 신적 폭력은 응징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실은 ‘랜덤’이었다. 전염병과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면서, 재난은 악인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무차별한 폭력으로 들이닥칠 것을 명심해야 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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