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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신랑과 나…딱 90분, 화투를 치며 서로를 돌보다

등록 :2021-09-25 14:13수정 :2021-09-27 16:54

[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39. 당신은 돌보는 사람입니까?

내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그가 느끼는 ‘돌봄’이란 뭘까
안부 문자, 겁에 질린 얼굴 말고
두 사람 위한 확실한 돌봄 방식
그림 박조건형
그림 박조건형

나는 신랑의 아침밥을 챙기지 않는다. 그의 출근시간은 일곱시 십오분. 나는 요즘 부쩍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깨는데, 문밖에서 신랑이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어나 나가진 않는다. 내가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신랑을 돌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피로를 많이 느끼는 내 허약한 몸을 위해 아침에는 잠의 끄트머리까지 풀어지도록 충분히 누워 있는 편이고, 출근 인사는 전날 자기 전에 끝낸다. 같이 산 첫날부터 각방 생활을 했으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내일도 출근 잘 하라고, 운전 조심해야 한다고, 서두르지 말라고 지루한 잔소리를 하며 입을 맞추고는 ‘각자의’ 잠자리에 든다.

_______
거리를 둔 채 사랑하며 살기

새로운 직장에 다닌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 잘 적응한 건지 걱정되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신랑에게 묻는 일은 간략하게 끝낸다. 내 걱정과 염려를 핑계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상대를 위한 걱정일 수도 염려일 수도 없다. 다행히 신랑은 얼굴에 감정이 오롯이 드러나는 사람. 나는 나의 ‘하지 않아도 될’ 질문들이 그를 불편하게 하는 순간을 이제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것인가 미루어 헤아리며 물러날 때를 아는 일도, 사랑의 일. 우리는 서로를 위한 거리감을 이제 알고 있고, 거리를 둔 채 사랑하며 산다.

가족으로 그와 같이 살며 이따금 나 혼자만 저 사람을 걱정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한다며 서로를 괴롭히는 이율배반적 사랑의 방식이 쓸모없단 걸 알게 되었다. 사랑도 사람도 배우려는 의지로 알아야 하는 걸 테니 학습의 효과일 테다.

꼼꼼하고 잘 챙기는 사람이 될 수 없는 나지만, 그래도 나름 밑천이 드러난 꼼꼼함이라도 그를 향하려고 애쓴다. 비빌 언덕 없는 누군가에게는 털털함이나 게으름마저 가당치 않은 일, 그러니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온 힘을 다한다. 정말 그를 위하는 게 무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가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그가 느낄 수 있는 ‘돌봄’이 무얼까 고민한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화물차 사고 소식을 들을 때면, 그에게 걱정 문자라도 보내려다가 그만둔다. 어느 날 밤엔 자정 넘어 갑자기 그가 현관문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몹쓸 짓을 벌일까 덜컥 겁이 나면서도 동동거리지 않고 가만히 기다린다. 마침내 현관문을 들어선 그를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제일 멍청한 얼굴을 준비한다.

내 기준에는 문자를 보내는 일도, 겁에 질린 얼굴을 보이는 것도, 그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문자를 보내지 않고 개그맨처럼 웃기는 얼굴을 보이는 것이, 그를 위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와 나를 위한 것이라고,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아마도 나를 향한 신랑의 ‘돌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지난달 부산 생활예술모임 ‘문학의 곳간’에서 같이 읽은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신랑은 귓속말로 혹시라도 자신에게 인지 상태에 문제가 생기고 제 뒤처리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엔 더 이상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을 거라고 나에게 속삭였다. 그 얼굴 표정이 너무도 비장해 나는 조금 웃음이 났는데,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나도 그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되어버린 당신을 내가 더 이상 돌볼 수 없겠다 느끼면 나도 포기하겠다고. 대신 똥오줌 받아내는 건 어렸을 때 아버지를 돌보며 이미 했던 일이니 그건 걱정 말라고 나는 웃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평생 서로 제일 가까운 곁을 지키며 산 값이 보통 일인가? 그 정도는 해야지. 그를 돌보겠다는 나의 다짐은 그 정도까지다. 우리 사랑의 영원을 말하고 파뿌리가 될 때까지 지켜야 한다는 군내 나는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그 정도까지는 지켜내야 한다 다짐한다.

성소수자의 사랑이나 관계를 말할 때 함부로 후려치는 이유는, 이 사회가 성소수자의 사랑이나 돌봄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족주의가 지켜온 스물네시간의 돌봄이라는 것이 한 사람에게만 유독 희생을 강요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같은 성별의 두 사람이 어떻게 그 짐을 나누어 갖느냐는 몰이해에 가닿고 만다. 즉 한쪽이 다른 쪽을 ‘뒷받침(이라고 쓰고 당연히 희생)’하지 못하는 관계로밖에 상상할 수 없으니, 동성 가족이나 아이 없는 가족의 삶을 불안정한 것으로만 환기한다.

돌봄이란 가족 구성원 모두의 몫이고 당연한 노동인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습성’이나 ‘성격’을 들어 그 노동에 마땅한 성별이 따로 있다고 규정한다. 여자의 돌봄과 남자의 돌봄이 따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는,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 않을까? 성소수자들의 성별을 넘어선 돌봄의 방식으로부터 오히려 이 사회는 ‘비성별적 돌봄’을 배울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마땅히 치러야 하는 첫번째 학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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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가 주는 인생의 가르침

신랑의 우울증을 위해, 아니 나와 신랑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우린 또 한가지 돌봄의 방식을 채택했다. 분명히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화투다. 일상이 힘들고 우울해질 때면, 우린 딱 90분 동안 바닥에 모포를 깔고 화투를 친다. 처음에는 신랑이나 나나 화투를 친 적 없어 인터넷에서 규칙을 찾고, 영상을 찾아보며 더듬더듬 화투를 쳤다. 그러다 보니 환호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웃기도 하고, 두 사람뿐인 집 안이 시끌벅적하다. 신랑은 책을 읽고 나는 책을 쓰니 고요함뿐이었는데, 화투를 친 날은 저녁 시간 내내 깔깔거리며 옥신각신이다.

1점에 50원, 상한선은 1만원이다. 아무리 점수가 많이 나도 한판에 1만원 이상은 가져가지 못한다. 딱 90분, 어떤 날은 신랑이 기껏해야 2만원을 가져가고, 또 어떤 날은 내가 2만원을 가져간다. 오락가락 본전인 날들도 여럿이다. 낡고 낡은 그림이 그려진 화투장이 가져다주는 우연과 반전의 시간들은, 어쩐지 인생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별것 아닌 사소함들은, 그토록 선명한 위안이 된다.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엉뚱한 것들로, 나는 오늘도 우리 두 사람의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건 무얼까 생각한다. 나를 지키고 저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건 무얼까, 우리의 사랑이 늙고 병들면 우리의 돌봄은 또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걱정하진 않는다. 우린 또 서로를 위해 나설 테니 말이다.

소설가.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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