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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한인-흑인 분쟁 뒤에서 백인우월주의는 웃는다

등록 :2021-05-12 18:07수정 :2021-05-13 02:32

92년 LA폭동 소재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재미동포 작가 스테프 차 이메일 인터뷰
한국계 미국 작가 스테프 차. 마리야 카넵스카야 제공
한국계 미국 작가 스테프 차. 마리야 카넵스카야 제공

한국계 미국 작가인 스테프 차(사진)는 1992년 엘에이(LA) 폭동을 소재로 한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한겨레> 2021년 4월30일 ‘책&생각’ 섹션 3면)로 지난해 엘에이타임스 도서상 미스터리·스릴러 부문을 수상했다. 1991년 3월 한국인 상점 주인 두순자가 흑인 소녀를 강도로 오인해 살해한 이 사건은 이듬해 4월 흑인들이 한국인 상점들을 집중 약탈·방화한 엘에이 폭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이른바 ‘두순자 사건’의 관련자들인 한국인 가족과 흑인 가족을 등장시켜 근 30년 전 사건이 드리운 그림자를 그리며, 백인 중심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공통점을 지니는 한국계와 흑인들 사이의 화해 가능성을 모색한 소설이다.

“흑인이 한국계 미국인들과 가까이 사는 곳에서는 이른바 한-흑 갈등이 계속될 것 같다. 특히 흑인들을 비난하기 위해 한국계를 모범적인 소수민족으로 찬양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흑인과 한국계 미국인 간에 연대의식이 강하다는 생각도 한다. 전부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스테프 차는 11일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국 사회 내 한-흑 갈등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의 결말에서는 두 인종 집단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이 잇따르는 폭력과 혼란 속에서도 “재생”과 “희망”을 찾고자 애를 쓰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시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희망과 재생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스테프 차는 ‘두순자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소설을 쓰는 데 대해 특별한 주저나 염려는 없었지만, 살해당한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의 가족에 대해서는 염려했다고 밝혔다.

“과거의 실제 사건을 다루는 게 조심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생각할 거리와 쓸 거리를 많이 준 사건이라고 하겠다.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를 존중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분명히 느꼈다. 두순자 가족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았지만, 라타샤 할린스 가족에 대해서는 염려했다. 현재의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이므로 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지만, 이 책이 나올 것이라고 미리 연락은 취했다.”

그는 책이 나온 뒤 사건 당사자나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며, 한국계 독자들과 흑인 독자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다고 전했다.

“흑인 독자와 한국계 독자의 반응은 매우 다양했지만 대체로 매우 상냥했다. 한국계 독자와의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이 한국인 인물에 익숙하지 못해 내 책과 그 주제에 좋은 반응을 보인 것 같다. 특히 사회 정의와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 내 반흑인 정서에 관심을 갖는 젊은 한국계 미국인 독자들이 그랬다.”

스테프 차는 한국계 작가로서 흑인 주인공 숀에 관해 쓰는 것이 이른바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로 비판받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숀의 시점을 채택하지 않고는 이 책을 쓸 수 없었고, 그걸 알고 난 뒤에는 그 인물을 존중하고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작가들이 작품에 자신이 하지 못한 경험을 넣고자 한다면, 대체로 자유롭게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작업을 잘해내려고 애썼고,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해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대단히 긍정적인 리뷰를 받기는 했다.”

한국계 미국 작가 스테프 차. 마리야 카넵스카야 제공
한국계 미국 작가 스테프 차. 마리야 카넵스카야 제공

그는 더 나아가 백인 작가가 아시아계나 흑인에 관해 쓰거나 남성 작가가 여성에 대해 쓰는 식의 ‘문화적 전유’와 관련해서도, 작가가 노력해서 제대로 쓰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런 점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가가 노력하면 잘될 수도 있다. 게으른 작업 때문에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을 때는 좋은 글을 써내는 데 더 큰 부담이 있다. 나는 제대로 못할까 두려웠고, 그 두려움은 유용했던 것 같다. 숀이라는 인물에 매우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며 접근했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해서 백인과 흑인을 가리지 않고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노골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출산한 스테프 차는 “1년 이상 집 밖에 나간 일이 별로 없다”며 직접 혐오나 폭력을 겪지는 않았다고 말했지만, <엘에이 타임스> 기고문에서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 배후에 미국 정부와 기존 시스템의 잘못이 있다며, 백인 지배 질서가 흑인을 차별하고 아시아계를 혐오하며 양자의 갈등을 조장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백인 우월주의는 단순히 극우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미국 기관의 기본 원리가 그것이다. 유색인 커뮤니티 사이의 분쟁 역시 우리를 분열시킴으로써 백인 우월주의에 도움을 준다.”

그는 이런 백인 우월주의에 맞서기 위한 흑인 사회와 아시아계 등의 대응 방식을 묻는 질문에 “투표, 조직, 활동, 저항”이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스테프 차는 “수전 최, 이창래, 이민진 등 한국계 미국 작가들은 지난 몇해 동안 대단한 활약을 했다. 그들은 모두 큰 사랑을 받았고 베스트셀러를 냈으며 여러 상을 수상했다”며 “지금이 한국계 미국 문학의 전성기”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문학 작품을 그다지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최근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읽었고 둘 다 마음에 들었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도 읽었다”며 한국문학에 대한 미국 독자들의 평가에 대한 답변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보통 미국 독자는 한국문학을 별로 접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지난 몇년 동안 한국 도서에 관한 리뷰가 더 많아지고 있다(특히 범죄소설이 그렇다!). 솔직히, 그것(한국문학에 대한 미국 시장과 평단의 태도)을 어떻게 바꿀지는 모르겠다. 출판은 알기 어려운 산업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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