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책&생각

당신에겐 또 다른 곳이 필요해요

등록 :2019-08-02 06:01수정 :2019-08-02 21:00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행복해지는 곳
회사도 집도 아닌 ‘공간 복원 프로젝트’
더 나은 사람·사회 만드는 ‘제3의 장소’
제3의 장소
레이 올든버그 지음, 김보영 옮김/풀빛·2만6000원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인들은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틀어박히고 싶었다. 때마침 시작된 도시계획으로 교외에 넓은 주거단지들이 생겨났는데, 공급자의 수익성을 최대한 고려해 도로망을 중심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이곳엔 오로지 집뿐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상점도 공공시설도 없었기에 가족 수만큼 자동차를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인들은 “안락하고 풍족한 가정, 거추장스러운 상호작용과 시민의 의무로부터의 해방을 원했고, 이루었다.”

도시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 웨스트플로리다 대학 교수는 빠른 속도로 공동체가 붕괴하고 ‘교외국가’로 변모하는 것을 현대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미국사회에서 위험의 징후를 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실 같은 가정의 품과 직장의 극심한 무한경쟁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고, 이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를 마사지나, 명상, 조깅 등으로 ‘혼자’ 해결한다. 결국 미국인들은 “물질적인 소유, 편안함, 즐거움을 추구하는 가운데 지루함과 외로움, 소외감, 가격표로 가득한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올든버그 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공간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여겼다. 이 공간을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나 학교에 이은 ‘제3의 장소’로 명명하고, 10년간 관련 연구에 몰두했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선 주인공 친구들이 모이는 ‘센트럴 퍼크’가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무대가 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선 주인공 친구들이 모이는 ‘센트럴 퍼크’가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무대가 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는 알고 있었다. ‘공동체 복원’이라는 말이 특히 젊은 세대에겐 철 지난 타령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 동네 카페나 술집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친교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막연히 예찬해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고 현장연구를 수행하는 한편 토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연구 목적이 제3의 장소를 활성화하는 데 있었으므로, 연구 결과는 학자들이 아닌 대중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렇게 집필한 책이 1989년에 펴낸 <제3의 장소>(원제 The Great Good Place)다.

책은 그해 <뉴욕타임스 북 리뷰>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도시사회학의 중요한 저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여러 학자가 관련 연구에 뛰어들고 기업인, 도시계획가, 행정 전문가와 관료 들이 거주민의 삶과 공간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번역된 책은 1999년에 나온 개정판이다.

저자는 1840년 이후 대규모로 이주한 독일계 미국인들이 운영하던 ‘라거 비어 가든’과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 소도시 비공식적 공공생활의 중심이었던 ‘메인 스트리트’, 영국의 ‘펍’, 프랑스인들의 ‘비스트로(카페)’, 미국의 선술집 ‘태번’과 1650년대부터 약 200년간 융성했던 ‘커피 하우스’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제3의 장소가 가진 특징과 기능을 분석한다.

제3의 장소가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은 ‘통합’이다.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소식을 주고받는다. “모두가 서로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잘 알고 모두와 편하게 지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새로 이주한 사람을 환대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동화’의 기능도 담당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을 관심사 중심으로 ‘분류’하거나 집단적 성취를 도모하는 ‘본부’의 역할도 한다.

레이 올든버그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 소도시 비공식적 공공생활의 중심이었던 ‘메인 스트리트’, 1650년대부터 약 200년간 융성했던 ‘커피 하우스’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제3의 장소가 가진 특징과 기능을 분석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레이 올든버그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 소도시 비공식적 공공생활의 중심이었던 ‘메인 스트리트’, 1650년대부터 약 200년간 융성했던 ‘커피 하우스’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제3의 장소가 가진 특징과 기능을 분석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제3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활동은 대화이며, 대화는 인품이나 개성을 드러내고 이해하는 주요 수단이다.”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고 즐거운 화제를 주도하는 사람은 주목받지만, 노인과 아이들을 배제하거나 분노와 혐오를 쉽게 드러내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가짜뉴스가 걸러지고 정제된 의견이 신뢰받는다. 제3의 장소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북돋고 때론 채찍질한다.

전화통화조차 어색해 문자로 용건을 주고받고, 에스엔에스가 막강한 공론의 장으로 떠오른 오늘 한국에서 친밀한 대면접촉을 강조하는 노학자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올든버그 교수는 “누구나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늘 선택권이 있었지만, 공공생활을 갈망하고 동네 거리에서 어울리던 삶을 그리워하는 나머지 사람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두 번째 개정판을 현재 집필 중이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박찬욱이 숨겨놓은 것들…‘헤어질 결심’ N차 관람 부른다 1.

박찬욱이 숨겨놓은 것들…‘헤어질 결심’ N차 관람 부른다

하루 새 1만 구독자 증발…박막례 할머니 유튜브에 무슨 일이? 2.

하루 새 1만 구독자 증발…박막례 할머니 유튜브에 무슨 일이?

한국 예술고 탈락→24살에 독일 ‘종신 수석’ 이승민의 반전 3.

한국 예술고 탈락→24살에 독일 ‘종신 수석’ 이승민의 반전

임윤찬 “유튜브 지웠어요”…350만뷰 휩쓴 18살 장인의 강단 4.

임윤찬 “유튜브 지웠어요”…350만뷰 휩쓴 18살 장인의 강단

넷플릭스 살릴까 했던 ‘종이의 집’…한국 현지화 실패한 이유 5.

넷플릭스 살릴까 했던 ‘종이의 집’…한국 현지화 실패한 이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Weconomy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더나은사회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