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천종호 지음/우리학교·1만5000원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복역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 쌓여가던 장발장을 새로운 길로 안내한 것은 미리엘 신부의 자비였다. 마들렌 시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절망에 빠진 이를 일으키고 살아가게 하는 건 따뜻한 손을 내미는 한 사람의 존재다. 관용은 때로 세상과 사람을 구원하고, 척박한 땅에 희망의 꽃을 피운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은 학교폭력 문제를 천착해 온 현직 판사이자 지은이의 오랜 고민이 담긴 책이다. ‘19살 미만’ 범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경감과 보호를 규정한 소년법의 존폐 논란은 지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특히 범죄행위의 폭력성이 두드러지는 사건에 대해선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목소리가 움츠러들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 문제를 지적하며, 법 감정이나 형평성을 이유로 드는 소년법 폐지론에 반대한다. 예컨대 중범죄를 저지른 보호소년을 법 감정에 합당한 수준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소년원의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이는 혐오도가 높은 교정시설을 지역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또 다른 사회적 진통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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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에게 미리엘 신부가 있었다면, 법정에 선 가해 소년들에게는 천 판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상대는 가해자들만이 아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며 특정 사건이 터졌을 때만 끓어오르는 냄비성 관심을 거두고 피해자의 아픔에 지속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런 손길의 온기가 널리 퍼질 때, 더 많은 장발장들이 탄생할 것이다.

심지연 기자 rjiye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