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운전석 옆에 하얀 부처님과 바쳐진 하얀 꽃. 창문에 부두 사르나이. 기도와 인사가 일상인 사람들. 사진 권혁란
시내버스 운전석 옆에 하얀 부처님과 바쳐진 하얀 꽃. 창문에 부두 사르나이. 기도와 인사가 일상인 사람들. 사진 권혁란

덜컥, 덩치가 나보다 더 큰 학생들이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은 타일을 깔지 않고 마루도 들이지 않은 빨간 시멘트 벽돌로 마감된, 그리 깨끗하지 않은 곳.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 뒤 머리를 서 있는 내 발쪽으로 굽혔다. 양발에 양손을 가볍게 올려 예를 표하고 일어나면서 손을 모았다. 합장을 풀지 않은 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서야 인사가 끝났다. 스물댓 명의 학생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차례로 줄을 서서 첫 수업을 마친 한국 선생에게 그야말로 ‘큰절’을 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좀 당황스럽고 황송했는데 스리랑카식 ‘군사부일체’ 인사법이라 할 수 있겠다. 임금과 스승, 부모는 한가지로 은혜와 공경, 감사의 정도가 같다는 것. 임금 부분은 현재 이 나라에선 부처님으로 바꾸어도 될 것이다. 스님이어도 마찬가지다. 스리랑카에서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스님은 부처님이나 대통령만큼 존경을 표해야 하는 귀한 존재다. 여기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집을 나갈 때 부모에게, 학교에 와서 수업하고 갈 때 선생에게, 절에서 스님을 만날 때 저토록 지극한 몸짓으로 예를 표한다. 다른 반 여학생들도 가끔 절을 할 때는 치마 입은 맨무릎이 땅에 닿은 소리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수줍기 한량없는 표정으로 긴 머리를 걷어 올리며 합장을 하면 이거, 영화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그런 인사를 매일 받았다. 또 하나의 인사는 ‘부두 사르나이’(Budu Saranai)라는 말이었다.

부두는 부처님. 사르나이는 ‘행운을 빕니다’ ‘건강하세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세요’ ‘당신의 좋은 삶을 기도합니다’ ‘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는 일마다 잘하세요’ 같은 여러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정확하게는 ‘나쁜 일이 오지 않기를 부처님께 기도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수십 번을 물어본 후에야 우리말로 옮기면 ‘부처님의 가피를 바랍니다’나 ‘성불하세요’ 정도로 번역해도 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70% 넘는 사람들이 ‘내추럴 본’ 불교도인 나라의 인사답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인사를 담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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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떠 수두. 하얀 꽃이란 의미. 떨어진 꽃은 절대 쓰지 않고 두번 쓰지도 않는다. 가장 새롭게 핀 새 꽃만을 바친다. 사진 권혁란
와떠 수두. 하얀 꽃이란 의미. 떨어진 꽃은 절대 쓰지 않고 두번 쓰지도 않는다. 가장 새롭게 핀 새 꽃만을 바친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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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발을 딛고 첫 싱할라어 수업 시간에 배운 이 다정하고 친절하고 불심 깊은 사람들의 부두 사르나이라는 인사는, 그러나 쓰임이 남달랐다. ‘당신에게 부디, 나쁜 일은 일어나지 말고, 항상 하고자 하는 일이 무사히 잘되기를 부처님께 바랍니다!’라는 속 깊은 기도의 말은 실로 광범위하게 쓰였다. 집집마다 대문에 집주인 명패보다 높은 자리에 부두 사르나이라는 글씨가 동글동글 싱할라어로 쓰여 있었고 공사하는 현장에도, 이삿짐을 나르는 차에도, 거리를 달리는 버스 창에도, 큰 행사를 벌이는 입구에도 어김없이 부두 사르나이를 작품처럼 쓴 글씨를 볼 수 있었다. 그뿐인가. 전화를 끊을 때도 마지막 말은 부두 사르나이였고 큰 슈퍼에 가서 고기 조금이나 생선을 살 때는 카운터 직원도 고기와 나를 위해 그 말을 해주었다. 헤어질 때도, 잘 자라는 말 대신 어김없이 부처님의 가피를 바란다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의 페이스북을 보노라면 한국에 가는 친구들에게,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도 영문으로 쓴 ‘Budu Saranai’가 끝없이 이어졌다. 하도 듣다 보니 학생들이 절을 할 때 머리 위에 손을 대고 나도 그 말을 했다. 여행 중에 낯선 이의 친절을 받을 때도 우리말 ‘안녕’이나, ‘굿 럭’보다 먼저 그 말이 나왔다. 내가 가진 모든 선한 마음을 다 담은, 타인을 향한 다정과 기원을 넘치게 담아 넣은 그 말 한마디, 부두 사르나이의 드넓은 세계에 어느덧 녹아들었다. (내 학생들이 100% 불교도라 이랬을 뿐, 기독교인들은 부두 사르나이와 거의 같은 의미로 ‘예수 피히타이’(예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라는 말로 인사했다.)

매일 아침 부처님께 따다 바치는 꽃
매일 아침 부처님께 따다 바치는 꽃

또 하나의 고운 기도의 풍경은 매일 아침 8시 학교에서 만났다. 하루를 시작하는 ‘푸자’(Puja). 꽃, 물, 향을 부처님 앞에 바치는 기도이자 예불인 푸자는 전공 학생들이 돌아가며 진행했다. 교내에 있는 꽃나무 중에서 하얀 꽃(와떠 수두)을 한 송이씩 따서 접시에 담아 두 손에 받쳐 들고 향을 피운 학생의 뒤를 따라 교문 앞 부처님 전각으로 걸어갔다. 꽃과 향을 올리고 나란히 선 남녀 학생들은 입을 모아 경을 외웠다. 부땀 샤라남 갓차미, 담맘 샤라남 갓차미. 샹함 샤라남 갓차미. 한국 절에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매일 아침 이슬 걷고 피어난 하얀 꽃만을 따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니, 어찌 마음자리가 사나울 수가 있을까. 두세 살 첫 입을 떼어 배운 말이 부두 사르나이, 그 기도의 말일 테니 도리 없이 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연말, 많은 당신들에게 부두 사르나이.

권혁란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코이카 스리랑카 한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