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없는 말
필립 글래스 지음, 이석호 옮김/프란츠·2만8000원
젊은 예술가에게
기돈 크레머 지음, 홍은정·이석호 옮김/포노·1만4000원
‘작곡가가 쓴 자서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에 인색했던 작곡가들로 인해, 알고 싶다는 욕망은 더 커져 간다. 작곡가는 어떻게 작곡가가 되는가? 이 음악들은 대체 어떻게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탄생하는가?
현대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은 보기 드문 작곡가의 자서전이다. 2015년, 그의 나이 78살에 나온 자서전이지만 30~40년 전의 대화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담겨 있고, 모호한 대목이 하나 없을 정도로 쉽게 쓰였다. 그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이자 오페라, 연극, 영화음악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반복되면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음악이 당장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아름답고 의미심장하다. 영화 <쿤둔>, <트루먼쇼>, <디 아더스> 등 서른 편의 영화 음악을 만들었고, 최근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에도 피아노 듀엣곡을 만들어줬다.
미국 볼티모어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며 현대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에 귀가 트이게 된다. 최고의 교육을 시키고자 했던 어머니는 여덟살 때부터 플루트를 배우도록 했고, 열다섯살에 집을 떠나 시카고대학에 조기 입학하도록 허락해준다. 그는 신입생 시절 ‘음악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골똘하다가 ‘곡을 쓰면 답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작곡을 시작한다. 시카고대학에서 소규모 세미나에서 고전 필독서를 읽어나가고, 학교가 끝나면 대지휘자 프리츠 라이너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 존 콜트레인과 셀로니어스 몽크의 재즈 연주를 현장에서 듣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부러움을 넘어 질투심에 배가 아플 정도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그는 당시 1950년대 작곡가들이 양자택일해야 했던 쇤베르크의 무조음악과 조성음악 사이에서 조성음악을 택한다. 그는 훗날 “나는 극도로 거친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과하게 고상한 척하는 현대음악의 세계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았다. 서양과 동양의 전통에 바탕을 둔 테크닉을 습득한 것은, 더 이상 어떤 설명도 양해도 필요하지 않은 음악을 상상할 수 있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라고 말한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음악가들의 스승’으로 유명한 나디아 불랑제에게 2년간 혹독한 지도를 받으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연장통’을 손에 쥐게 된다. 파리에서 인도음악을 서양에 알린 라비 샹카르를 만나고, 넉달간 인도와 티베트에서 수행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의 음악은 서양이란 테두리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매일 선불교 명상을 해온 스티브 잡스가 미니멀리즘의 상징인 아이폰을 만든 것과 인도 요가, 티베트 대승불교, 도교의 태극권, 멕시코의 톨텍 전통에 따른 수행을 평생 해온 글래스가 미니멀리즘 음악을 추구한 것은 상통하는 데가 있다.
뉴욕으로 돌아온 29살의 글래스는 이삿짐센터, 배관일, 택시 운전을 했다(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손님으로 태운 적도 있었다). 그와중에도 연극 극단과 필립 글래스 앙상블을 창단해 활동하기도 했다. 육체노동은 12년간, 그의 나이 41살까지, 그가 음악을 맡은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프랑스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알린 후 2년이 지난 뒤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뉴욕이라는 도시의 창자에서 길어낸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는 “당신의 음악은 어떻게 들립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게는 뉴욕의 소리처럼 들립니다”라고 답한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작곡가는 어떻게 곡을 만드는가. 글래스는 곡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200kg짜리 바벨을 들어 올리는 역도선수처럼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데 사용하는 정신까지도 끌어와서 써야 한다. “나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마저 음악을 생각하는 집중력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작곡이라는 작업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다.” 그래야만 가까스로 창조력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실제 어떤 공간에 들어가듯 말이다. “거기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오선지에 정확하게 표기하는 것”이 바로 작곡이라는 것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인 기돈 크레머가 쓴 <젊은 예술가에게>는 가상의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곧 지나갈 유행이나 성공을 좇아가는 예술가들의 행태를 따르지 말고, 영원할 음악을 좇으며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나갈 것을 당부하는 편지글 등 4편의 글을 묶은 책이다. 랑랑이나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같은 동료 음악가들을 비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