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이토 다카시 글·사진, 안해룡·이은 옮김/알마·2만2000원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65)가 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먼저 충격을 받을 것이다. 가해자들이 추악한 과거사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도 들여다 보일 것이다. 원제가 ‘무궁화의 슬픔’인 이 책에 수록한 남북의 피해자 할머니 20명의 증언엔 피가 맺혀 있다. 지은이는 “취재 의욕을 잃어버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밝힌다. 그 ‘충격’은 별다른 수사 없이 짧고 담백한 문장들을 구사하는 이토의 글과 사진을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
10대 어린 나이에 끌려가 먼 이국 지방에 격리 배치돼 매일 전장의 병사들을 수십명씩 하루종일 상대하던 그들. 말 그대로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능멸 당하다 구타와 참수 등으로 수없이 죽어갔다. 일본 우익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강제성 없는 ‘자발적 매춘’이라 우기지만 누워서 침뱉기다. 생존자들 증언에 따르면, 다수가 납치 당했고 돈 벌게 해주겠다던 거짓말도, 격리공간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강요한 잔혹한 ‘위안’ 행위 또한 명백한 강제였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온 뒤에도 환영받지 못한 그들의 피눈물 나는 증언은 우리가 실은 그들을 얼마나 모르고 살아 왔는지 뒤통수를 후려치듯 깨닫게 한다. “취재 도중 테이프 녹음기를 집어 던지고”(황금주), “일본인과는 말하기 싫다”(박영심)며 몇 번이나 증언을 그만두려 했으며, “일본에 가서 일본인을 칼로 다 찔러버리고 싶다”(김영숙)고 부르짖은 할머니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괴로워하면서도 글과 사진과 동영상으로 수십년째 세상에 알려온 이토에게 오히려 부끄럽다.
이토는 애초 평범한 보통 일본인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1981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오가며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 피해를 취재하다가 무려 7만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피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한일의 피폭자들을 취재하기 시작했고, 강제노역 피해자들과 군수공장에 근로정신대 등으로 끌려갔다가 ‘위안부’로 동원당한 여성들을 만났다. 취재범위는 북한, 중국,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지로 확장됐고 그때마다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격한 분노”와 마주쳤다.
그가 만난 아시아태평양지역 피해자들만 800여명에 이른다. 그러던 1991년 8월14일 놀라운 사건을 접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중 처음으로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밝힌 것이다. 이로써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입다물고 있던 ‘침묵의 금기’가 깨졌고, 아시아 각지 수만명의 피해자들이 증언에 나섰다. “아시아 능멸 사상에 기반해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본질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이토는 썼다.
이토는 그 뒤 김학순 할머니를 포함해 한국을 시작으로 북한, 중국, 네덜란드인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 피해자들까지 모두 90여명의 할머니들을 만났다. 책에는 1990년대 초부터 그가 취재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가운데 남한 9명, 북한 11명 등 모두 20명의 할머니들 얘기를 담았다. 취재 당시 이미 80살 안팎이었던 이분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중 최고령(100살) 생존자였던 이순덕 할머니가 지난 4일 세상을 떠나 생존자는 이제 38명으로 줄었다.
일본도로 난자하고, 온몸에 낙서같은 문신을 새기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폭행하다 본보기로 목을 자르는 등 만행을 저지른 일본군의 이야기는 처절하다. 이들은 패전 무렵엔 증거인멸을 위해 수십명, 때로는 백 수십명씩 위안부들을 집단학살했다고 한다.
지은이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일본인들 다수는 ‘피해자 일본’은 알아도 ‘가해자 일본’은 잘 모르는 듯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인터넷상의 악의적인 댓글들도 자국이 저지른 추악한 과거사에 대해 무지한 탓이 아닐까.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고 제대로 돕지도 않았던 한반도 내부의 편협과 몰이해도 그들의 무지와 무시를 부추겼을 것이다. 가해자들의 세계관, 가치관과 닮아간 까닭일까.
“취재를 계속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본의 중대한 국가범죄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것이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은 과거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