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 서적 부도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경기 파주시 송인 서적 창고 앞에 쌓인 책 무더기. 파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송인 서적 부도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경기 파주시 송인 서적 창고 앞에 쌓인 책 무더기. 파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응방법? 없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모토 아래 한창 활개를 펴던 출판계 기대주 북스피어가 책도매상 송인 서적 부도라는 뜻밖의 복병으로 낭패를 당했다. 김홍민(41) 대표는 “채권단에 모든 걸 위임”했지만, “그쪽인들 무슨 뾰족한 수 있겠냐”고 했다. 송인 부도와 관련해 걸린 돈은 1억80만원. 연간매출 6억 정도의 북스피어로서는 큰돈이다. 다른 도매상들에도 책을 공급해 왔지만 현금거래였고, 거래 비중이 더 컸던 송인 쪽은 어음결제.

“(지난해 8월에 낸) 김탁환의 <거짓말이다>가 9~12월에 많이 팔렸는데, 특히 송인 쪽에서 많이 가져갔다. 다 4개월짜리 어음을 받았다. 군 매점(PX) 등에서 추리소설류가 많이 나간다며 미야베 미유키 소설과 셜록 홈스 관련 책들도 많이 가져갔다. 홈스는 5천부를 새로 찍기까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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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에 남은 북스피어 책 잔고는 장부상 4천만원 정도. 그런데 채권단 실사로 확인된 실제 잔고는 530권, 400여만원밖에 안 된다. 나머진 다 어디로? 전혀 파악이 안 된다. 향후 파악 가능성도 거의 없다. 따라서 받을 길이 없다. 나머지 어음 부도액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하 출판진흥재단) 기금 2천만원을 신청했지만, 그것도 결국 빚이다. 지난해 하반기 성적이 괜찮았는데, 그게 다 날아가버렸다.” 하반기 성적이 좋았기에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본 셈. 매달 돌아올 1천만원씩의 어음을 북스피어가 “완전 생돈으로” 막아야 한다. 활달하고 낙천적인 김 대표도 “약간은 위기를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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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창사 이래 <부산을 맛보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처럼 지역성을 살린 도서 등 400여 종의 책을 내온 부산의 산지니. ‘지방출판사’의 가능성을 실증해 온 이 출판사가 송인 부도에 걸린 돈은 부도어음 4천만원에 책 잔고 8500만원. 연간매출 5억원의 지역출판사로서는 감당하기 버겁다. 다급해진 강수걸(50) 대표와 직원들은 지금 동분서주 중이다. 1월 초 채권단 실사 때 확인된 산지니 책 실제 잔고는 501권, 500만원 남짓. “1억2500만원 모두를 손실로 잡을 수밖에 없다”는 강 대표 역시 “대응방법이 없다”고 했다. 1.25% 저리에 1년 거치 2~3년 상환의 출판진흥재단 기금 2천만원 대출 신청이 지금으로선 거의 유일한 실질적 대책.

“출판사 시작 초기 다른 도매상들은 3~5종 이상의 책을 납본 조건처럼 달았으나 송인은 2권만 내도 받아주었다. 송인의 120일(4개월) 어음은 다른 도매상들보다 불리했으나 군소 출판사들에 비교적 후한 송인의 그런 조건 때문에 송인과의 거래비중이 커졌다.” 25개 정도 되는 부산지역 군소출판사들 다수가 송인 부도로 1천만~3천만원씩 날리게 생겼다. “송인 부도는 중소규모 출판사에는 재앙과도 같다. 특히 지역출판사들 고통은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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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유동성 확보에 도움이 되는 재고분 책 매입 등은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만 쳐다봐야 한다. 부산시는 서울시를 의식해선지 출판사 실태조사를 하는 듯하더니 아직 아무런 후속조처도 없단다.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1천만원 정도가 물린 통영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는 이번 사태로 더 커진 출판계의 심리적 압박감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송인과의 거래비중이 큰 더숲, 유유, 산지니, 어크로스, 북스피어 등 ‘남 걱정’부터 했다.

2009년 창업 이래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등 청소년·교육 분야 책들 90여 종을 착실하게 내온 도서출판 우리학교도 송인 부도로 8천만원(어음부도 5천만원, 책 잔고 3천만원)을 날리게 생겼다. 홍지연(47) 대표는 매출의 12~13%를 송인과 거래해 왔는데, “학교도서관 납품 위주로 책이 판매되기에 송인 의존도가 높았다”고 했다. 송인 부도 여파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매출도 20% 넘게 떨어졌다며 “암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출판진흥재단 기금은 신청 지원금이 500만원 이상일 경우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포기했다.

작년 8월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 등 철학서를 포함한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고집스레 내온 6년차 1인출판사 알렙도 잔고 2천만원을 포함해 4천만원 정도의 피해를 봤다. 조영남 대표는 “결국 빚이라 언 발에 오줌 누기지만, 그래도 출판진흥재단 기금 대출을 받으면 어음부도 손실분은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송인 사태 이후 일원화가 풀리니 여기저기서 책을 달라는데 모두 공급가를 깎으려고만 한다”며 “공정한 공급률(정가 대비 도서매입가격 비율) 룰을 다소 강제로라도 확립해야 하며 거기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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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관계’인 이재민(52) 대표의 너머북스와 김상미(48) 대표의 너머학교가 입은 피해액도 어음부도액 4200만원, 책 잔고 3800만원 등 총 8천만원. 7억이 채 안 되는 ‘너머’의 연간매출에 견줘 역시 큰돈. 김기협의 <해방일기>, 이정철의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미야지마 히로시의 <나의 한국사 공부> 등을 낸 ‘너머’의 장부상 잔고액은 3800만원이지만 실제로 창고에 남아 있는 책은 300권도 채 안 됐다. 김 대표는 “서점에 나간 우리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그걸 우리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어음 부도 내역과 출판사별 책 잔고를 먼저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공급률·유통현대화 등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대형 출판사들이 입을 닫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핵심교훈은 공정성”이라고 했다.

학술도서 중심으로 매년 70여 종의 책을 출간해온, 연간매출 10억원 정도의 소명출판도 6~8개월짜리 어음 부도액 2천만원을 포함해서 총 8천만원 정도가 물렸다. 박성모(54) 대표는 “도서거래가 각기 모두 다 비밀이고 표준화된 매뉴얼이 하나도 없다”며 당장의 수습책도 필요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출판서점계의 강자들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이른바 ‘내부자 거래’ 같은 적폐 해소, 유통구조 혁신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부도 어음을 인수해 피해자들에 선지급을 하고 나중에 회수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도 촉구했다.

1억원이 걸린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도 공급률과 유통시스템 개선, 이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공적자금 100억원만 투입돼도 출판계 고질적인 문제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며 “그게 안 되는 건 정부가 출판물을 문화공공재가 아니라 그냥 장사꾼들 상품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그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조선업 구조조정 등에는 조 단위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출판엔 한 푼도 정부 돈을 투입할 수 없다는 논리에 대한 반박이다.

지역 동네서점들은 송인 부도로 책 공급자와 반품할 곳이 없어졌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충주에서 1992년부터 ‘책이있는글터’를 운영해온 이연호 대표는 송인 부도로 지역중소서점들 거래조건이 더 나빠져 다른 도매상으로 거래선을 돌리려 해도 더 불리한 계약조건을 감수해야 할 공산이 커졌다고 했다. 예전에 30여개를 헤아리던 충주지역 서점들은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이미 10여 곳으로 줄었고 학습참고서가 아닌 일반 단행본 서점은 서너곳에 지나지 않는다며, 송인 부도 이후 책 공급선이 끊어진 충주 동네서점들이 중형서점인 책이있는글터에서 책을 받아간단다. 서점연합회 유통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복 한길서적(서울 방배동) 대표도 “강자에게 유리한 출판계 내 거래의 공정성·도덕성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며 “표준 공급률, POS, 거점물류체제 도입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