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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시의 르네상스’ 이끄는 시인들의 육성을 듣다

등록 :2016-08-18 19:24수정 :2016-08-19 11:37

계간 시전문지 ‘파란’ 시론 특집
언어냐 현실이냐 갈등 있지만
‘결핍’ 매개로 양자는 만난다
파란 2016년 여름호

허만하 외 지음/파란·1만5000원

“새로운 시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은 얼마 전 에스엔에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시인 유희경이 서울 신촌에 문을 연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의 트위트 글에 대한 반응 형식으로였다. 과연 그렇게 말할 법하다 싶다. 서울만이 아니라 대구에도 시 전문 서점 ‘시인보호구역’이 생겼다. 신문들마다 시를 소개하는 지면을 꾸리며, <한겨레> 토요판은 매주 2개 면을 온전히 시에 할애한다. 예전처럼 수십만부 내지 백만부가 나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집은 사라졌지만, 쇄를 거듭하는 시집들이 적지 않다.

‘시의 르네상스’라고까지 말해지는 이런 현상의 가장 큰 동력은 역시 시인들이다. 개성 있는 작풍으로 한국 시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 가는 시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시를 쓰는 것일까. 지난 봄호로 창간된 시 전문 계간지 <파란> 여름호는 ‘시론’을 특집으로 삼아 시인 28명의 글을 실었다. 500쪽 가까운 잡지에서 330여쪽을 이 특집에 할애할 정도로 파격적 편집이다. 1957년에 등단한 허만하 시인부터 2009년 문단에 나온 정영효 시인까지 반세기 남짓에 걸친 시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가 언어의 정제를 요체로 삼는 장르인 만큼 시인들의 시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언어에 대한 관심이다. “시는 제도로서의 언어의 두꺼운 포위를 탈출하는 능력”이라는 원로 허만하 시인의 정의부터가 언어와의 싸움을 시론의 제일원칙으로 삼는다. 후배 시인 이준규 역시 “시는 언어의 한계와 싸우려는 속성이 있다”는 말로 까마득한 선배에게 맞장구를 친다. 시는 당연히 언어를 질료로 삼지만 동시에 기존 언어 질서에 맞서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충동을 좇는다. 관습적인 표현을 거부하고 낯선 의미와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장석원이 “나는 한국어로 시를 쓰지 않는다” “나의 모국어는 시의 언어이다”라고 주장할 때 언어와의 대결 의식은 정점에 이른다.

상당수 시인이 언어의 탐구 및 언어와의 대결을 강조하는 데 비해 백무산 시인은 언어보다는 현실 쪽에 방점을 찍는다. 언어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강조를 그는 수상쩍거나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가 보기에는 “시를 ‘언어예술’이라고 강조하는 말도 동어반복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실로부터 분리시키려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그 역시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지만, “언어의 발생은 물질적”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하나의 극단에서 언어가 분절과 상징으로 파괴되더라도 다른 극단에서는 사물이 뿜어내는 고유한 운동성과 강력한 유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시의 일상성’을 강조하는 이하석, 그리고 “언어가 꾸는 꿈보다 언어가 꾸는 현실이 내가 뒹굴어야 할 시의 현장이고 사랑의 속세”라 말하는 박용하 역시 상대적으로 언어보다는 현실 쪽에 치우친 시론을 선보인다.

언어와 현실 사이의 이런 간극은 메우기 힘든 것일까. 언어에 대한 관심은 현실의 방기를 낳으며, 현실 강조는 언어를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다. 몇 시인이 시의 출발로 지목하는 ‘결핍’에 주목해 보자.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시 쓰기의 시작일 것이다.”(허수경) “누군가 시를 쓰게 된다는 것은 결핍과 부정이 우리 안을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이영주) “시적인 현실은 언제나 결핍을 통해서만 목격된다는 점에서 성애학이고, 그 결핍 역시 언어를 통해서만 구축된다는 의미에서 해석학이다.”(이현승) 특히 이현승의 시론은 현실의 결핍과 언어의 결핍이 만날 가능성 내지는 필연성을 알려준다. 결핍을 매개로 언어와 현실은 포개지는 것이다.

시인들의 시론을 읽고 나면 문득 눈앞이 환해지면서 그때까지 까다롭고 모호하게만 느껴졌던 시가 한결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고집 센 시인은 자신의 시가 쉽게 이해되고 독자에게 위안을 줄 가능성조차 한사코 거부한다. “‘a’가 아니라 ‘not a’를” 지향한다는 장석원의 선언을 들어 보라.

“시는 역사가 아니고, 현실이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비평의 대상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상품이 아니다. 시는 SNS가 아니고, 기쁨과 치유가 아니고,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누구나 읽어도 되는 쉽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고집이 ‘시의 르네상스’를 추동하는 동력이 아닐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파란 및 각 시인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허만하
허만하
이하석
이하석

이영주
이영주

백무산
백무산

허수경
허수경

장석원
장석원

이준규
이준규

이현승
이현승

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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