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문학동네·1만6000원

전쟁과 전쟁할 것. 이 재앙에 대한 옳은 의견은 저 하나뿐이다. 전쟁에 관해 다른 ‘주장’은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반전의 ‘근거’뿐. 이것은 전쟁의 호승지심이 머리 들 틈조차 없을 만큼 쉼없이 쏟아져야 한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바로 그 일에 전력했다.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년 출간)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성 200여명의 실화를 담고 있다. 작가 자신은 낮은 음성에 말수가 적다. 그러니까 웅변이나 주장이 목적이 아니다. 많은 것은 따옴표다. 기자 출신인 그가 인터뷰한 참전 여성들의 목소리가 재구성 없이 생짜로 있다. 기록자는 자기 볼륨을 키우지 않는다. 크게 들리는 건 전쟁을 증언하는 목소리뿐. 다큐멘터리와 소설이 거울상으로 서로를 비추는 ‘목소리 소설’이란 새로운 장르다. 작가는 ‘소설-코러스’라고도 부른다. “합창(코러스) 소리가 울린다. 웅장한 합창. 때론 노래는 없고 울음소리만 가득한” 반전을 떠받치는 근거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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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지은이는 여성이 겪은 전쟁을 들려줌으로써 전쟁에 입체를 부여한다. 나아가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사건의 구조가 아니라 “사건의 영혼, 감정”이 진짜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승패만 알린 채 입을 다물고 있던 전쟁이란 사건은, 여성들이 입을 열자 짜고 비린 해감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첫 생리를 한 날 총을 맞아 다리를 잃은 소녀병이 있다. 전쟁터에서 그만 백발이 된 소녀도. 남편은 징집됐고 전쟁은 끝이 안 보인다. 아이를 지우고 빨치산이 된 여성이 있다. 그녀들은 꽃을 잘 못 본다. 꽃은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만 꺾었다. 운전병, 통신병, 의사, 간호병, 정비사, 저격병, 비행사, 암호수 역할부터 빨래, 요리, 말 돌보기, 관 짜기, 군화에 밑창을 대는 일까지 전쟁터는 여성의 “산더미” 같은 노동으로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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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아이들의 목소리도 여성에게 녹음돼 있다. “내가 불에 타면 뭐가 남는 거예요? 덧신만 남아요?” 인간이 하는 전쟁으로 동물이 받는 고통도 여성에게 새겨졌다. 물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부상당한 병사를 구했는데, 뭍에서 보니 상처 입은 흰철갑상어였다는 증언. 죽어가던 군인들의 마지막 표정과 말도 빠짐없이 기억한다고 여성들은 진술한다.

67살인 지은이는 전쟁, 핵폭발 등 거대한 바위에 부딪힌 인간성은 본성, 곧 “진실”로 역류한다고 보고 그 길을 따라왔다. 전쟁 승리를 “무섭고 끔찍”하게 다뤘다고 판단한 소련은 이 ‘고통의 책’의 출간을 2년간 막았다. “너무나도 뜨겁기에 어떠한 거짓도 녹여버리는 고통”만이 진실을 남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