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다 1·2-흠영 선집
유만주 지음, 김하라 옮김
돌베개·각 권 1만1000원

“듣자니 근자에 부잣집 자식이 인명을 해치고도 곧바로 2만 금을 뇌물로 써서 살아났다고 한다. 천금을 가진 집안의 자식은 저자에서 사형을 당하지 않는다던 옛말이 아마도 이를 두고 하는 것이리라.”(1786년 6월16일)

조선 후기 선비 유만주(1755~1788)가 권력과 금력이 판치던 당시 세태를 담은 일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모순이 오늘을 보는 듯하다. 영·정조 연간에 서른네해 짧은 생을 살다 간 그가 남긴 일기 <흠영>(欽英)이 규장각 속 230년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고 세상에 나왔다. 흠영 연구를 해온 김하라 규장각 선임연구원이 <흠영> 24권 가운데 이 시대에 의미있는 부분을 모아 한글로 옮기고 해설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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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대문 근방에 살았던 남산골 샌님 유만주는 군위 현감, 익산 군수, 해주목 판관 등을 지낸 당대 문장가 유한준의 큰아들로 태어났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평생을 거자(擧子·과거 응시생)로 살았다. 그의 자호이기도 한 흠영은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 그는 1775년 1월1일(음력)부터 1788년 1월 세상 떠나기 직전까지 1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흠영에 매달렸다. 독서광이던 그가 마치 ‘소설가 구보씨’처럼 사대문 안팎을 거닐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18세기 서울의 풍경이 흥미롭게 담겼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