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닮고 싶은 삶 듣고 싶은 이야기
김선미 지음/달팽이출판·1만2000원

도저히 이렇게 살아선 안될 것 같은데, 아직 나 스스로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은데, 우리 사회의 갖가지 갈등은 갈수록 깊어가는데, 사람들은 탄식처럼 이렇게 입을 모은다. “어른이 없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되지 않는다. 껍데기 같았던 ‘멘토’ 열풍에서 보듯, 잘나고 말 잘하는 사람들의 ‘어른 노릇’을 지켜보는 것도 조마조마하다.

‘살림’을 제 일로 꼽는 작가 김선미씨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은 열네명의 어른들을 찾는 ‘사람 여행’을 떠났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이 만드는 잡지 <살림이야기>에 ‘길을 묻다 길을 가다’란 코너로 연재했던 인터뷰들을 책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그가 만난 사람들을 주욱 훑어보면, ‘걸어다니는 동학’ 표영삼, 무위당 장일순의 동생이자 ‘영원한 교장선생님’인 장화순, 충남 홍성에서 풀무학교를 일궈온 홍순명, 한살림운동을 열어온 박재일, ‘온생명’을 주창하는 물리학자 장회익, ‘그린디자인’ 영역을 개척한 윤호섭, 철학하는 농부 윤구병, 교회 없는 목사 이현주, 시골집에서 농사짓는 목사 임락경, 에너지자립 주택을 만드는 이대철, ‘길 위의 승려’ 도법, ‘길 위의 신부’ 문규현, 농민운동가 이병철, ‘나뭇잎편지’를 띄우는 판화가 이철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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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른’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생명과 평화, 밥과 공동체 그리고 대안적인 삶과 실천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지은이는 “어른들 모두 입을 맞춘 듯,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 수밖에 없다고, 희망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열쇳말을 굳이 꼽자면 ‘생명’ 또는 ‘살림’이다. 지은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굳건한 철학으로 이를 강조한다. 표영삼 선생은 20년 동안 부엌살림을 도맡아 하며 온천지의 사물과 생명체계를 모두 하늘님으로 섬기라는 동학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물리학자 장회익 선생은 생명의 신비가 생명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말한다. 낱낱의 생명체(‘낱생명’)는 밖에서 그것을 돕는 ‘보생명’과 결합해야 ‘온생명’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삶은 한결같이 ‘더불어 함께’로 나아갔다. 홍순명 선생이 일군 풀무학교나 윤구병 선생이 꾸려온 변산공동체, 박재일 선생이 애쓴 한살림 등에서도 보듯 이들은 늘 ‘공동체’와 함께했다. 또 이들의 공동체는 결코 고정된 어느 한 곳이 아니었다. 일요일마다 서울 인사동에서 티셔츠 위에 환경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 무료로 나눠주는 디자이너 윤호섭 선생은 ‘인사동 티셔츠 할아버지’로 통한다. ‘생명평화’를 갈구하며 5년 동안 탁발순례를 한 도법 스님, 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있는 곳이면 어디건 나타나는 문규현 신부 등도 ‘더불어 함께’를 실천하는 참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허한 상찬이 아닌 솔직한 감상과 담담한 서술이 어른들과의 만남에 진정성을 더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