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평전최열 지음돌베개·4만8000원
우리는 이중섭(1916~1956)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그림을 사랑한다(고 느낀다). 화가 이중섭을 향한 우리의 애정은 언제부터 비롯한 것일까. 미술평론가 최열의 <이중섭 평전>은 그 기원을 찾아 떠난다.
40여년에 불과한 이중섭의 일생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역동적이다. 평안북도 평원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영재였고, 일본 유학 시절 만난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한국이름 이남덕)에게 매일같이 그림엽서를 보낸 끝에 극적인 결혼에 성공한 국제연애의 주인공. 전쟁을 거치면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평생을 미치도록 그리워했으나 끝내 함께 하지 못한 순애보의 사내, 처절한 가난에 시달리며 거식증과 정신분열증을 앓다가 ‘무연고자’ 신세가 되어 간염으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였다.
살아있을 때 기껏해야 “화단의 이채” 정도였던 언론의 평가는, 그의 서러운 삶이 다하고서야 “우리 화단의 귀재”, “요절 천재”로 뛰어올랐다. 망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대함과 드라마틱한 인생유전이 이중섭의 신화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자 그가 과대평가되었다며 격하 운동이 일부 있었으나 워낙 압도적인 여론 탓에 쏙 들어가 버렸다. 지은이는 찬사뿐 아니라 일방적 험담에 가까운 글들까지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서문에서 “최초의 목적은 ‘사실로 가득 찬 일대기’였다. (…) 전기작가들이 꿈꾸는 평전 그 이상에 도전했다. 정전(正典), 다시 말해 ‘이중섭 실록’을 완성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였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약 500종에 이르는 이중섭 관련 문헌 가운데 150여종을 선별해 검증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그림 세 점이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 전시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중섭이 “내 그림 비행기 탔겠네”라며 특유의 활달함을 과시했다는 증언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지은이는 밝힌다. 이중섭의 작품을 소장하기로 했다는 미술관 쪽의 인증서가 기증자인 아서 맥타가트(당시 대구 미국문화공보원 원장)에게 전달된 것은 이중섭이 세상을 뜬 이후라는 것이다. 이 그림들은 평생을 그림 재료 부족에 시달린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이른바 ‘은지화’였다.
평북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오산고보) 재학 시절 이중섭과 친구들이 저질렀다는 방화사건을 추적하는 지은이의 자세는 거의 탐정 수준이다. 관련 저술뿐 아니라 당시 일간지 기사까지 뒤져 정말 이중섭 등이 불을 낸 것이 맞는지 따져 묻는다. 이중섭을 다룬 대표 저작인 시인 고은의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민음사, 1973)도 주요 반박 대상이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폄하하려는 건 전혀 아니다. 굳이 말하면 그는 이중섭의 성취를 높게 평가하는 쪽이다. 그는 “실체는 사라졌고 환상만 남았다. 그렇게 퍼져나간 인간 이중섭의 얼굴은 천 개의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했고, 화가 이중섭의 예술 세계에 대한 평가는 찬사와 비난을 오갔다. 이처럼 혼란스러울 때마다 미술계 사람들은 신화의 늪에 빠진 이중섭을 구출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나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처음 보는 자료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지은이에게 들어왔다. 1953년 7월 이중섭이 부산에 머물 때 가까이 지낸 화가 문우식의 딸 문소연은 이중섭에 관한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지은이에게 전했다. 같은 해 통영으로 이중섭을 초청한 공예가 유강렬의 유족들이 이중섭이 보낸 편지와 사진의 존재를 알려주기도 했다.
이중섭 신화에 덧씌워진 문학적 상상력이나 주관적 기억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책과 같은 제목으로 같은 출판사가 낸 최석태의 <이중섭 평전>(돌베개, 2000, 절판)이 그런 구실을 상당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번 평전이 전보다 진전된 사실을 얼마나 많이 캐냈는지, 그게 일반 독자들이 이중섭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일이 밝히는 건 부질없다. 다만 탐정처럼 사실을 추구하는 책이다 보니 다소 논쟁적인데, 그 논쟁적인 어조가 큰 흥미를 자아낸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이중섭이 살아낸 시절,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의 대한민국을, 그의 발자취를 좇아 카메라를 들이대듯 재현하기 때문에 마치 ‘살아있는 현대사’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낭만과 기행을 멈추지 않았던 문화예술인들을 그린 한편의 세밀화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930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에는 이중섭 주요 작품의 도판과 평론도 실려 있다. 책이 언급한 주요 인물들을 별도 항목으로 정리한 배려도 친절하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