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중국 학자들도 대부분 역사적·문화적 관점에서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가 옳다고 본다. 여러 나라가 공유하는 바다에 한 나라의 명칭만 붙이는 것은 그 지역 다른 나라들의 찬성을 얻기 어렵다. 만약 지중해를 ‘이탈리아해’ 또는 ‘프랑스해’라고 하면 지중해 연안국가들이 동의하겠는가?”

동해연구회 창립이사인 서정철(77)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원래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프랑스어·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인 한국외대에서 34년간 강단에 섰다. 대학원장을 거쳐 2013년 정년퇴임했다. 7년간의 프랑스 유학이 다 끝나가던 1966년 베르사이유궁의 루이14세 응접실 지구의에서 ‘메르 오리앙탈’(Mer Orientale·동해)라는 표기를 발견한 게 그의 인생항로를 바꿨다. 그 순간 그는 “그래, 바로 이거야!”를 외쳤다. 이후 그의 전공은 “낮에는 프랑스어문, 밤에는 동해 관련 고지도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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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아버지 고향인 흥남에 갔다가 작은 아버지 등 친척들과 함께 놀러간 동해 인상이 선하다. 해방 직후 초등학교 시절 교실 뒷면 벽에 걸려 있던 지도를 보고 동해 등 우리 산천과 바다를 익혔다. 6·25전쟁 때 서울에서 미군이 놓고 간 지도에 동해가 ‘시 오브 재팬’(일본해)으로 표기돼 있는 걸 보고 중학생이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유학에서 돌아온 지 이태 뒤인 68년, 파리 유학시절 만난 소르본대학 프랑스문학 박사 김인환(76)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결혼한 뒤에는 부부가 나란히 ‘동해’를 밤 전공으로 삼았다. 91년에 낸 <서양 고지도와 한국>은 김 교수 혼자 썼고, 이번에 나온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김영사)는 부부가 함께 썼다. 2010년에 낸 <지도 위의 전쟁>에 이은 두번째 공저다. 그렇지만 낮 전공을 한 번도 소홀히 한 적은 없다고 했다. “밤마다 동해 귀신에 붙잡혀 바다 속에 빠졌지만, 아침 일찍 전공 공부와 강의 준비를 했고 퇴근하면 2층에 올라가 고지도 한 두 장을 펼쳐 놓고 수백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새벽까지 만든 이의 마음 속에 들어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모교인 이대에서 재직하며 한국 불어불문학회 회장까지 지낸 아내 김 교수는 10여 년간 <한국방송>(KBS) 프랑스어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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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때 루이14세 응접실서 ‘동해’ 표기된 지구의 발견 계기로 낮엔 프랑스어 전공, 밤엔 동해 연구 부인 김인환 교수와 함께 책 출간 “국제적으로 표기 병기라도 확보를 공유바다에 특정나라 명칭은 안 돼”

“루이14세의 응접실 지구의를 본 직후 당시 파리에 유학와 있던 국학 전공자들에게 좀 알아보라고 얘기했지만 다들 침묵했다. 귀국 뒤 일간지 기자에게 루이14세 얘기를 했더니 바로 기사를 썼는데, 다른 신문 파리 특파원들이 그걸 확인하러 갔지만 보지 못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여름방학 때 파리로 날아가 문제의 지구의 사진까지 찍었다. 센 강변의 지도 전문 서점들을 뒤져 ‘메르 오리앙탈’, ‘메르 드 코레’(Mer de Coree·한국해) 표기 지도들도 찾아냈다.”

이후 그는 해마다 동해 표기 고지도를 찾아 유럽을 뒤졌고 관심영역은 한반도와 그 영토경계 등으로 확장됐다. 파리와 런던, 브뤼셀, 암스테르담, 헤이그, 리스본 등을 돌아다녔고, “시간을 아끼려고 프랑스·영국·네덜란드·벨기에 4개국 4개 도시를 단 하루에” 돈 적도 있다. 괜찮은 지도를 발견하면 서울의 아내에게 국제전화로 상의했다. 동해 관련 고지도들이 들어 있는 <라페루즈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발견하고 전화를 했을 땐 아내로부터 “한 사람의 1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값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니 예약을 해 놓고 후일 송금하겠다고 하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리하여 서 교수의 봉급은 거의 고지도 구입과 연구비로 들어갔고, 생활은 김 교수 봉급으로 꾸렸다. 1980년대초 서울 강남 테헤란로 개발 직전 그곳 알짜배기 땅 60평을 헐값에 사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요안 블라외의 세계적인 희귀지도 <새 지구지리수로 전도> 구입에 당시 돈 300만원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부부는 지금 갑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그렇게 사재를 털어 수집한 고지도들을 부부는 2004년 서울역사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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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의 에필로그 ‘나와 동해와의 인연’은 이런 흥미로운 에피소드들과 함께 그가 동해 귀신에 홀려 고지도 밤 전공자가 되어간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러면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

부부의 결론은, 그 누구의 바다도 아니다. 지중해가 프랑스해, 북해가 영국해, 발트해가 폴란드해나 스웨덴해 또는 핀란드해가 돼선 안 되듯이 동해가 ‘일본해’가 돼선 안 된다. 안 되는 이유들 중 핵심적인 두 가지 사실을 서 교수는 이렇게 요약했다. 하나는 2000여 년 전부터 한반도와 만주 주민들이 모두 동해를 ‘동해’로 말하고 표기해 왔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해’라는 말은 일본에서도 쓰지 않았고 국제수로기구(IHO)에 일본해를 등재할 때 일제 식민지배하의 한국은 발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름 역사만으로 동해가 2천년을 넘는다면 일본해는 불과 100년에 불과한 셈이다.

“기원전(BC) 59년에 해당하는 <삼국사기> 동명성왕조에 동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중국 <후한서>, <산해경> 등의 고전에도 읍루·숙신·말갈·여진 등 만주지역 종족들이 동해를 동해로 불렀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따라서 동해는 동쪽에 바다를 둔 세계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 통칭되는 동쪽 바다로서의 동해가 아니라 수천 년 전부터 한자 동해(東海)로 표기돼 온 동북아시아 특정바다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신증 동국여지승람> ‘팔도총도’에도 그렇게 돼 있고, 만주에 직접 간 청나라 성조 강희제도 ‘저쪽이 동해지’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이 일본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05년 러일전쟁 이후라고 서 교수는 말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에선 동해를 ‘북해’라고 불렀다. 1632년 중국에 간 서양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그린 <곤여만국전도>에 처음으로 일본해란 명칭이 등장하고, 일본은 이를 일본해 명칭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지만 정작 일본에서 일본해란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프랑스·네덜란드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이는 1802년 이네 다카고의 고지도에서다. 교토대 출신 학자들이 일본해 옹호를 위해 쓴 <지명의 발생과 기능> 등 일본 쪽 논문들은 동해 또는 조선해와 일본해가 등장하는 서양 고지도들을 잔뜩 수집해 양쪽 사용례들을 양적으로 거의 절반씩 추려낸 뒤 19세기 이후 점점 일본해 쪽이 많아지는 추세를 지적하는 수법을 쓰지만, 그 이전에 일본해보다 훨씬 더 많았던 동해 또는 조선해 표기 고지도들은 중요한 것일지라도 의도적으로 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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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가 “도둑맞은 거나 다름없다”고 표현한 동해라는 명칭은 독도 문제와도 깊숙이 얽혀 있다. “지금 대다수 일본인들이 독도를 다케시마라며 자국 영토로 인식하는 데는 물론 일본 정부의 의도가 개입돼 있지만, 동해가 일본해로 불려온 현실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사람들은 다케시마가 일본해에 떠 있는 섬인데 왜 한국 섬이냐라며, 당연히 일본영토라고 생각한다.”

동해·일본해 병기를 주장해 온 서 교수에게 그 둘을 병기하더라도 세계의 외부인들은 보통명사에 가까운 동해보다는 일본해 쪽만 기억하지 않겠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국제수로기구는 바다 명칭을 놓고 쌍방이 대립할 땐, 그 1단계로 우선 양쪽 명칭을 병기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일단 그렇게 한 뒤에도 문제가 계속되면 당사국들이 합의해서 제3의 명칭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병기라도 우선 확보하는 게 먼저다.” 그는 최근 동해를 병기하는 국가·지역이 늘고는 있지만 낙관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일본은 국제수로기구 창설 이사국이고 예산도 많이 지원해 발언권이 강하다. 주요국들이 모두 일본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경영 체험국이라는 점도 우리에겐 불리하다. 한국도 최근 수로기구에 12번째로 많은 돈을 내는 회원국이 됐지만, 훨씬 더 많은 돈과 자료, 전문인력을 활용해 목적의식 뚜렷한 국가 프로젝트로 집요하게 체계적으로 대처해온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한참 멀었다.”

서 교수는 말했다. “처음에는 충격과 분노로 출발했지만 연구하다 보니 일방적·무조건적 두둔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고지도 연구목적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보다 큰 틀에서 화평을 실연하는 것이다.” 김 교수도 “고지도 연구의 최종 목표는 균형의 추구이며, 일방적인 논리를 지양하고 상반되는 주장을 조화롭게 수용해서 화평과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창부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