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는 한일사’
‘마주보는 한일사’

한국과 일본의 교사들이 함께 쓴 한일 공동 역사교재 <마주보는 한일사>(사계절) 3권이 완간됐다. 2001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을 계기로 만나 2002년 8월 출판에 합의한 뒤 12년 만에 이룬 성과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한일 역사 전쟁을 넘어 공동의 역사 쓰기는 불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완간 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책을 쓴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출판사가 공동기획한 강연회에서 집필 책임자인 박중현 교사(서울 잠일고)가 말했다.

“한일 ‘공동의 역사 쓰기’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상대를 있는 그대로 ‘마주보는’ 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88년 창립한 전국역사교사모임은 교사 2000명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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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필진이 속한 ‘역사교육자협의회’는 1949년 창립해 약 400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한국 12명, 일본 18명의 지은이들은 지난 12년 동안 직접 만나 회의를 하고, 원고를 번역해 검토하면서 한일 양국 학생들을 상대로 평화수업을 진행한 바 있다. 심포지엄을 열어 역사 교육에 대한 연구도 거듭했다. 박 교사는 “비용만 생각하면 책을 한 100만부는 팔아야 될 정도지만, 함께 미래를 설계한다는 데 의미를 뒀다”고 했다.

책을 쓰는 동안 교사들은 나이가 들었고, 아이들은 자랐다. 일본의 한 원로교사는 “내가 죽기 전에 책을 완간하자”고 독촉하기도 했다. 집필 초기엔 한국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줬지만, 몇년 뒤엔 그마저도 끊겼다. 일본 쪽 변화는 더 심각했다.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우익 교과서 채택 비율도 해마다 높아졌다. 아베 정권을 비호하는 극우파들이 득세하면서 일본의 지은이들은 책에 소속 학교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일본의 침략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서술 내용을 문제삼는 일본 우익의 테러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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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를 다룬 <마주보는 한일사 Ⅰ, Ⅱ>에 이어 이번에 나온 <마주보는 한일사 Ⅲ>은 문호 개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일 근현대사를 서술했다. 이전 책은 집필 기간이 4년이었지만, 이번엔 그 두배인 8년이 걸렸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사부터 ‘독도와 다케시마’까지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 양국 필진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양국 학생들이 함께 볼 공동 역사교재에서 이런 쟁점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박범희 교사(서울 중앙고)는 “요즘 논란이 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 교사들의 입장이 같았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사 또한 일본 선생님들도 강조하자고 해 쓰기에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도 문제는 달랐다. 양국의 교사들이 공동 원고를 쓰기로 한 부분이라 더욱 예민했다. 3년 동안 일본 학생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한일 역사교육 전문가 이경훈 교사(경기 용인 서천고)는 “40번이나 이메일을 주고받을 만큼 논쟁이 심했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 침략 전쟁의 맥락 속에서 독도의 역사적인 문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일본은 어업 문제 등을 강조하며 영토 문제로 보고 싶어하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서술은 양국의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절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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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교사들은 또 두 나라의 시민운동과 어린이·여성 등 역사서에서 배제돼온 소수자들의 인권과 평화 문제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책에는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일했지만 한국인들의 편에 섰던 아사카와 다쿠미, 2·8독립선언 재판 때 한국인 유학생들의 항소심을 맡은 변호사 후세 다쓰지 등도 거론했다. 원폭 투하 피해자의 10%에 달하는 한국인들의 피폭 문제도 다뤘다. 박중현 교사는 “정교하게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검증하려 노력했지만, 일본 침략사나 수탈 상황을 더 강조했어야 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한 시민으로 사회변혁을 하려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룬다. 갈등을 겪는 서로가 마주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양국 학생들이 국가폭력과 폭압에 저항했던 앞 세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