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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0.03%의 확률…‘신의 탑’ 쌓은 ‘신의 손’

등록 :2013-10-17 19:45수정 :2013-10-17 21:38

만화가 이종휘(28)  ‘시우(SIU)’
만화가 이종휘(28) ‘시우(SIU)’
필명 ‘시우’ 만화가 이종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서 첫 사인회
만화팬 수백명 몰려와 인기 실감
웹툰 1회 댓글 66만개 기록 흥행
“군에서 그린 연습장 10권이 뼈대”
만화가 이종휘(28)의 이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그는 ‘시우(SIU)’라는 필명으로 포털사이트에 매주 월요일 연재 중인 <신의 탑>이란 웹툰으로 ‘한 회 댓글 66만개’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팬들과의 만남도, 언론 인터뷰도 손사래 치며, 연재를 시작한 2010년 6월 이후 작품 활동에만 매진해왔던 그가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첫 사인회를 열었다.

“첫 사인회인데 아무도 안 오면 어쩌죠.”

불안해하는 그를 비웃듯 지난 12일 오후 2시(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공동관에 차려진 웹툰관에는 그를 보러 유럽 만화팬 수백명이 몰려들었다. 두 시간 동안 사인을 했지만 길게 늘어선 줄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 다음날 이어진 사인회에서는 아예 번호표를 나눠줬다. 베를린에 산다는 현지인 오무트(26)는 “<신의 탑> 작가가 온다기에 프랑크푸르트까지 달려왔다”며 만화 속 캐릭터 이미지를 전부 출력해 와 시우 작가에게 건네며 사인을 부탁했다. 한국,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팬들은 자발적 번역과 해적판 만화책으로 한국 웹툰에 익숙한 이들이 많았다.

<신의 탑>의 시우 작가(바깥쪽)와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용제 작가(안쪽)가 지난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전세계에서 온 팬 수백명이 줄을 서고 있다. 네이버 제공
<신의 탑>의 시우 작가(바깥쪽)와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용제 작가(안쪽)가 지난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전세계에서 온 팬 수백명이 줄을 서고 있다. 네이버 제공

<신의 탑>은 시우 작가의 첫 작품이다.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다가 군에 입대했는데 만화를 좋아하는 선임을 만나 함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스프링 달린 연습장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캐릭터를 그려나갔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소녀를 쫓아 탑에 들어온 소년, 그리고 그런 소년을 시험하는 탑’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대할 무렵 연습장은 10여권이 됐다. 그 내용이 <신의 탑>의 뼈대가 됐다.

웹툰 ‘신의탑’ 이미지컷
웹툰 ‘신의탑’ 이미지컷

대학 3학년에 복학한 뒤 그는 네이버의 ‘도전 만화’ 코너에 연재를 시작했다. ‘도전 만화’는 누구나 자기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경쟁은 치열하고 금전적 대가는 없다. 이곳엔 12만명의 작가 지망생이 매달 8만편 넘는 웹툰을 게재한다. 이 중 정식 작가로 데뷔할 확률은 0.03%에 그친다. 시우 작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신의 탑> 연재 전에 시험 삼아 올려본 습작 수준 작품 2~3편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6개월 넘게 ‘자신만의 연재’를 하고 있을 때 네이버로부터 “정식 연재를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누가 사기 치는 줄 알았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그렇게 그는 정식 데뷔를 했다. <신의 탑>은 놀라운 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웹툰 ‘신의탑’ 이미지컷
웹툰 ‘신의탑’ 이미지컷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는 시우 작가뿐만 아니라 <노블레스>의 손제호·이광수 작가,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용제 작가가 함께했는데 이들 모두 ‘도전 만화’ 출신이다. 손제호 작가는 소설을 쓰다가, 이광수 작가는 야식집 배달, 대리운전 등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박용제 작가는 2년 반동안 무명의 설움을 견디다가 ‘도전 만화’ 게시판에 올린 작품이 누리꾼의 사랑을 받게 돼 정식 연재를 시작했다. 만화가 데뷔의 새로운, 동시에 치열한 통로인 셈이다.

만화를 그릴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모이는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는데 학생들에게 선을 하나 그어놓고 지금 자신의 상황을 표현해보라 했더니 대부분 자신을 선 아래, 다른 이들을 위에 그리는 겁니다.” 경쟁에 찌든 세상, 위와 아래로 나뉘어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만화가는 돈이 없어도 펜과 종이만 있으면 커다란 성도, 화려한 배도 그릴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군대에서 처음 습작할 때보다 날이 갈수록 더 만화가 좋아진다”는 그의 만화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프랑크푸르트/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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