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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제헌헌법이 지향했던‘민주공화국’은 어디에…

등록 :2013-07-21 21:12수정 :2013-07-21 22:24

한 주를 여는 생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박찬승 지음
돌베개 펴냄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꾀하는 데 있다.”

최근 ‘경제민주화’ 논쟁 과정에서 나온 진보 성향 인사의 발언이 아니다. 1948년 제헌헌법 초안을 만든 헌법기초위원회 전문위원 유진오의 말이다. 제헌헌법은 ‘경제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조항들을 담고 있었다. “사기업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18조)고 선언했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84조)고 못박았다.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87조)는 규정도 있다.

이런 조항들은 이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 수차례의 개헌을 거치며 모두 삭제된다. 관련 조항이 간신히 다시 자리를 잡은 것은 1987년 개헌 때였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19조 2항)는 조항이 그것이다.

지난 대선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이에 반대하고 나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업 쪽에서는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세적으로 펼쳤다. 한 보수 인사는 “도대체 경제를 어떻게 민주화하겠다는 것이냐. (이 조항을 넣은) 김종인 박사가 국어공부나 제대로 하시고 포함시켰어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펴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보면 ‘경제민주화’의 뿌리는 1987년 개헌이 아니라, 제헌헌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된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민주공화국’ 이념의 정착 과정과 제헌헌법이 지향했던 민주공화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추적한다. 그 모습은 흔히 생각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많이 다르다. ‘형식적 자유와 평등’뿐 아니라 ‘경제 균등’을 통한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공공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공화주의’가 제헌헌법의 기본 이념이었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따르자면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아닐지도 모른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구성원. 맨 앞줄 왼쪽부터 이유필·신익희·윤현진·안창호·손정도·정인과, 둘쨋줄 맨 오른쪽 김구, 셋쨋줄 왼쪽에서 셋째 나용균, 맨 윗줄 왼쪽에서 첫째 여운형. 돌베개 제공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구성원. 맨 앞줄 왼쪽부터 이유필·신익희·윤현진·안창호·손정도·정인과, 둘쨋줄 맨 오른쪽 김구, 셋쨋줄 왼쪽에서 셋째 나용균, 맨 윗줄 왼쪽에서 첫째 여운형. 돌베개 제공

제헌헌법은 좌우의 날개를 함께 달았다

제헌헌법은 ‘경제적 균등’을 주요 이념으로 삼았다. 노동자가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까지 규정돼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요소와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함께 품었고, 이 둘의 충돌을 ‘공화주의’로 조정하려고 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시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현행 헌법 1조의 문구가 가사인 노래다.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헌법 1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사학과)도 그중의 한명이었다. 그 뒤 5년간의 연구를 거쳐 나온 책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이 책은 헌법 1조를 화두 삼아 19세기 후반 서양의 정치사상이 처음 소개되던 조선시대부터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 제정까지의 숨가쁜 역사를 훑어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제헌헌법에 담긴 이념과 가치를 분석한다. 지은이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제헌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현행 헌법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또는 이승만 세력이 만들었으니 ‘보수적’일 것이라는 짐작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얼마나 ‘지체된 역사’인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19세기 후반 유입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파격적이고 낯선 것이었지만, 한국인 사이에 확고한 이상으로 자리잡기까지는 반세기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미 1919년 4월 상하이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못박았다. 지은이는 “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 국가’ 표방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감하고 진보적인 것이었다”고 짚었다.

이제 문제는 ‘어떤 민주공화국인가’ 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와 정책을 통해 이를 구현할 것인가? 당시 임시정부와 민족주의 계열의 건국이념은 ‘삼균주의’였다. 삼균주의는 조소앙이 창안한 이념으로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강조한다. 지은이는 삼균주의를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이념,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적인 이념으로 해석한다. 삼균주의에 기초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1941)을 보면 “토지와 대(大)생산기관, 은행·운수·전신·교통 등 주요 공공부문 사업, 대규모 기업 등을 국유화·공영화하고 토지를 자경농민에게 분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의 무료 의료, 초·중등 교육의 국비 의무교육 등도 눈에 띈다. 삼균주의 정신은 제헌헌법으로 이어진다.

1945년 8월 해방이 찾아오지만 1948년 결국 남한만의 5·10 선거가 치러지고, 이를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에서 제헌헌법을 만들게 된다. 제헌국회에는 좌파 세력은 물론 김구 등 민족주의 우파, 임시정부 주요 세력도 참여하지 않았다. 지주, 자본가, 친일파 등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한국민주당,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 무소속 등으로만 이뤄져 있었다. ‘반쪽’ 제헌국회, 어찌 보면 당시 가장 보수적인 세력이 중심이 돼 만든 헌법이었지만, 제헌헌법의 내용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급진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은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5조),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15조), “사기업 근로자는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18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84조),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87조) 등이 그 예다.

“근로자는 이익 분배에 균점할 권리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

제헌헌법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해석이 많지만
만민균등과 공공성을 강조했다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은
오늘날의 용어로 공화주의였다

“사기업 근로자는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을 놓고 당시 헌법 독회에서 벌어진 토론을 보자. 이 조항을 제안한 문시환 제헌의원은 “정치적으로만 민주주의를 실행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실행하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한다. 조병한 의원은 “기업의 힘을 향상시키고 노동자에게도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를 지지한다. 장홍염 의원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호부조가 필요하다”며 찬성한다. 지은이는 “당시 반대의견은 거의 없었고, 다만 문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헌법기초위원장이었던 서상일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3000만, 그리고 자손만대가 균등한 사회를 이루자고 하는 뜻이 여기에 담겨 있다”며 “특히 경제에서는 만민균등의 원칙을 담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제헌헌법의 정신에 대해 지은이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규정하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등 정치적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제헌의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특히 자본가와 지주층에 의해 권력이 농단되는 금권정치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다”며 “따라서 그들은 헌법에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국가나 공공단체의 경제 개입을 강조하고 공공부문의 사회적 소유를 적시했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정치 측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사회경제 측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요소의 충돌을 조정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공화주의’였다고 지은이는 본다. 제헌헌법 5조, 84조 등에는 ‘공공의 복리’ 등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지은이 박찬승 교수는 18일 <한겨레>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제헌헌법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해석이 많지만, 실제 제헌헌법은 ‘만민 균등주의’와 ‘공공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훨씬 폭이 넓었다”며 “당시에는 국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서유럽 등에서 사회민주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 이런 정도의 헌법은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가 빈부격차, 양극화, 사익추구 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강조하는 제헌헌법의 공화주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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