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착취 구조 벗어나려아내·딸 버리고 가출한 주인공이타성 기반 ‘대안 가족’ 일궈 “애비의 비애 다룬 소설정작 젊은이들 싫어할까 고민”

작가 박범신(67)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그가 40번째 장편소설 <소금>(한겨레출판)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그는 단편소설과 산문, 시집 등을 제하고도 등단 이후 한 해 평균 한 편씩 장편을 쓴 셈이다.

지난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소금>은 2011년 11월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고향 충남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그곳에서 쓴 첫 번째 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선명우의 강경 옥녀봉 집과 젓갈상회, 염천리 복국집, 윤증 고택 등 논산 일대가 소설 무대로 등장하는 것이 그의 생활 및 집필 공간 이동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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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몸속 염분이 부족해 실신해 쓰러졌던 거예요. 만들기만 하면 뭐해요, 자기 몸속의 소금은 챙기지도 못하면서!”

<소금>의 프롤로그에서 땡볕 아래 소금 거두는 노동을 하다가 탈진해 쓰러져 죽은 익명의 ‘염부1’을 두고 사복형사가 하는 말이다. 소설 <소금>의 주제의식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 소금을 만들기만 할 뿐 정작 제 몸에 필요한 소금을 챙기는 데에는 소홀하거나 무능했던 염부1은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대표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는 염부1이 주인공 선명우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었던 선명우가 어느 날 문득 아내와 딸 셋을 버려둔 채 집을 나와 새로운 인물로서 전혀 엉뚱한 삶을 산다는 이 소설의 핵심 사건 뒤에는 아버지의 그런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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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 없으나 한, 흐릿한 사람이 아버지였다. (…) 일종의 그림자, 유령 같은 존재가 바로 아버지였다.”

“젊은이들이 화려한 문화의 중심에서 만 원씩 하는 커피를 마실 때, 늙은 아버지들은 첨단을 등진 변두리 어두컴컴한 작업장 뒤편에서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있는 게 우리네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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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들 중 앞엣것은 선명우의 딸 시우가 집안 내에서 아버지의 위치를 새삼 돌이켜 본 대목이고, 뒤엣것은 소설 화자인 ‘나’가 이 시대 젊은 자식들과 늙은 아버지들의 처지를 대비시켜 본 상념의 일부다. 서른아홉 살 시인인 이혼남 ‘나’와 스물아홉 살 연극배우 시우는 선명우가 다녔던 논산의 폐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이 계기가 되어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나’는 안타깝게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시우와 만나는 한편 신분을 바꾼 채 살아가는 선명우의 옥녀봉 집을 드나드는데, 서로에게 상대방의 존재를 감춤으로써 소설에 추리적 긴장을 부여한다.

선명우가 뿌리치고 나온 것이 아버지 또는 가장의 등에 빨대를 꽂고 끝없이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폭력적 메커니즘을 대행하는 가족이었다면, 가출한 뒤 그가 새롭게 일군 ‘가족’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전신 마비 남자와 다리를 저는 함열댁, 척추장애인인 큰딸 신애, 시각장애인인 둘째딸 지애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혈연이라는 이름의 무한 착취 구조가 아닌, 우애와 이타성에 기반한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아주 이상한 가족”은 선명우의 어릴 적 첫사랑 세희 누나와 함께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자유로운 순수하고 이상적인 인간 관계를 대표한다.

“저로서는 전작들인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함께 자본의 폭력성에 대해 발언한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에 해당합니다. 자본의 메커니즘에 자식들을 빼앗기고 방치할 수밖에 없는 애비의 비애를 다룬 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죠.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은데, 정작 젊은이들은 싫어하지 않을까 고민이네요.”

15일 낮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다시 태어난다면 아버지 노릇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는 30일 오후 4시 논산 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는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소금> 출간 기념회가 열린다. 또 28일부터 새달 2일까지는 작가가 독자들과 함께 논산 땅 곳곳을 걷는 행사 역시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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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손홍주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