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김동욱 지음/돌베개·2만3000원.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김동욱 지음/돌베개·2만3000원.

일반인들에게는 1천원권 뒷면 배경으로 더 친숙한 건물, 조선 전기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의 안동 도산서원(사진)이다.

한국 유학사의 성지인 도산서원 중심엔 도산서당이 있다. 건축사학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이 서당은 온돌방과 마루, 부엌만으로 이뤄진 세 칸짜리 집이다. 네모로 각진 투박한 기둥에, 흰 벽체를 세운 이 건물은 어떤 장식도 없는 단출한 얼개지만, 내력이 예사롭지 않다. 퇴계는 서당을 짓기 전까지 다섯번 거처를 옮겼으며, 다른 선학들의 서당과 거처의 건축물들을 수십년 동안 비교 연구했다.

퇴계가 61살 때 완공한 이 집은 16세기 이후 조선 서원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우리 고건축사의 ‘작은 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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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사 권위자인 김동욱 경기대 교수의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는 도산서당을 조선 초기 선비들의 성리학 인문정신이 만들어낸 총체적 결실로 평한다. 퇴계가 설계하고 건축을 감독했으며, 그 안에서 학문을 연마하며 후학들을 키워내며 이른바 퇴계학을 만들어낸 산실이 바로 이 건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학들이 이 엄격한 절대공간에 깃든 성리철학과 선비적 기상에 공감하며 감화받았다는 점에서 정신사적 의의를 지닌 인문 공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도산서당은 성리학 비조인 중국 송나라 사상가 주자의 거처이자 학당인 중국 푸젠성 무이정사를 모델로 삼았다. 정신을 집중해 학문을 닦는 ‘장수’(藏修) 공간과 심신을 풀고 쉬는 ‘유식’(遊息) 공간의 두 가지 기능을 합쳐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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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건축적으로 도산서당은 무이정사와 완전히 다르다. 온돌방과 마루방의 우리 전통 가옥 구조에다, 툇기둥 세우고 덧처마인 익첨을 덧대어 집 구조를 확장하지 않으면서 실내 공간은 넓히는 지혜를 냈다. 퇴계의 독창적 공간 미학은 조선 선비 건축의 새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뿐만 아니라 퇴계는 집 곁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꽃나무 화단을 만들었으며, 사립문을 내어 자연을 품에 안았다. 건축물과 원림(조경)을 아우르는 당대 통합 건축이자 제자들과의 학문적 토론과 교유로 사상과 시문을 만들어낸 요람으로서 이 명품 건축의 인문적 매력을 상세하게 길라잡이 해주는 책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돌베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