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수집은 유년 시절에 넘나든 취미 가운데 하나다. 단순한 수집을 넘어 우표를 비롯한 우편제도, 우편요금, 소인, 배송경로 등을 심층 연구하는 행위를 ‘우취’(郵趣·philately)라고 한다. 우취는 연구 성격이 없는 우표수집(stamp collecting)보다 격이 높아 보이지만, 우취 또한 학문적 취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30년 넘게 우표를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약 20여권의 관련서를 낸 일본인 나이토 요스케는 우취 연구를 역사나 정치 영역에 응용하여 버젓한 학문을 만들었다.
그는 <우표, 역사를 부치다>(정은문고, 2012)에서 우편학이 가능한 근거를 제시한다. “근대 이후 국민국가에서 우편 관련 업무는 기본적으로 정부 당국이 담당해 왔다. 그런 만큼 거기에는 국가의 정치적 견해나 정책, 이데올로기 등이 자연스레 담겨 있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어느 지역에서 우표를 발행하거나 우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우표 발행국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영향 아래 있다는 증거다. 전쟁이나 혁명 등의 혼란기에 그 지역의 실제 지배자가 된 세력이 우표를 발행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면 소인(스탬프)이라도 새로 만들어 우편물에 찍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표의 품질은 발행국의 기술·경제 수준을 나타내주며, 우편요금은 물가 변화와 연관된다. 우표는 국가의 이념과 정책을 선전하는 미디어 역할도 한다. 때문에 가로×세로 3㎝ 내외에 불과한 우표는 외교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1954년 한국 정부가 3종의 독도 우표를 발행하자, 일본은 외무성 항의에 이어 독도 우표가 붙은 일본행 한국우편물을 반송시켰다. 또 2004년 통일부는 우표에 인쇄된 “조선의 섬, 독도”와 “주체”라는 용어가 “헌법상 영토조항과 북한의 체제 선전적 요소”를 포함한다는 이유로 북한이 만든 독도 우표의 반입을 불허했다.
나이토 요스케는 우표나 우편에 소용된 소인·봉투·엽서가 역사학·정치학·국제관계론·경제학 등 모든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라며, “우표, 곧 ‘우편 미디어’를 활용해 국가나 사회, 시대나 지역의 본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우편학의 기본구상”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우편학은 우편물이 존재하는 어떤 시대나 지역도 상관없지만, 평화롭고 안정된 국가보다는 격렬한 사회·정치적 변화나 분쟁이 있었던 국가에서 더 흥미롭고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북한이나 호메이니 시절의 이란이슬람공화국처럼 폐쇄된 국가일수록, 우표가 지닌 현황 분석 활용도는 높아진다.
‘우표로 본 반미의 세계사’가 훨씬 내용에 알맞은 이 책은 지은이의 포부가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은이는 해방 공간에서 한국전쟁까지의 남북한, 혁명 직후부터 냉전 초입에 이르는 시기의 소련, 프랑스·미국과 벌인 독립·통일전쟁기의 베트남, 스페인에 대한 독립투쟁을 마치자마자 미국의 위협에 대면해야 했던 쿠바, 미국과 애증으로 얽힌 일본의 근대사를 우표라는 ‘압축파일’을 통해 세밀하게 파헤친다.
장정일 소설가